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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평점 ★★★★★ 민영 의료보험의 폐해를 파헤친 영화판 PD수첩

영화 줄거리

애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5000만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다. 애덤은 허벅지의 상처를 가정용 바늘로 직접 꿰맨다. 그는 왜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일까?

릭은 집에서 전기톱을 다루다가 손가락 2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지만 보험회사로부터 의료보험 적용이 안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 와중에 의사는 릭에게 중지를 접합하는 데 6만 달러(약 6000만 원), 약지에는 1만 2000달러(약 1200만 원)가 드니 어떤 손가락을 붙일 지 결정하라고 말하는데….

▒ 영화 ‘식코’는 ‘슈퍼 사이즈 미’ ‘화씨 911’ 등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미국마이클 무어 감독의 최신작이다. 무어 감독은 영화 내내 미국 의료제도를 통렬히 비판한다.

미국은 우리 건강보험 같은 공적 보험이 아닌 민영 의료보험이 의료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험회사에 낼 돈이 충분히 있는 미국인 2억5000만 명은 의료보험에 가입돼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5000만 명은 의료보험 혜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79세의 프랭크 카릴 씨는 은퇴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슈퍼마켓에서 청소 일을 한다. 그가 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직장이 있어야 의료보험료를 낼 수 있고, 그래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손가락은 6만 달러, 넷째 손가락은 1만 2000달러? 공적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국인은 손가락 접지 수술에 어마어마한 돈을 내야 한다.


민영 vs 공적 의료보험

원래 보험은 질병 같은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조합원들끼리 돈을 모아 운영하는 일종의 자구책이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그럴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보험을 든다.

하지만 미국 같은 민영 의료보험 시스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영화에서 제이슨은 H보험회사에 가입하려고 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보험가입 거절 사유는 그가 너무 말랐다는 것. 제이슨은 키 180cm, 몸무게 55kg이다. B보험회사에 가입하려던 한 여성은 과체중으로 거절당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공적 의료보험인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의료비는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보험금을 합해 산출한다. 국가가 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부담금이 있기 때문에 일종의 ‘부분 보험제도’라 할 수 있다.

보험금 역시 직장인의 경우 직장과 본인이 절반씩 나눠 부담하고, 자영업자나 직장이 없는 경우에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의 80%를 낸다.

영화에는 민간보험회사에서 의학자문을 맡았던 의사나 환자의 옛 의료기록을 뒤지는 조사관이 등장해 환자들의 의료비 지급 요청을 묵살하는 일이 자신들의 임무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리 아이엄(보험조사관) 씨는 “환자가 보험가입양식에서 미처 숙지하지 못한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린다 피노 박사(민간보험회사 의학자문)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보험급 지급 요청을 거절했고, 이 때문에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며 울먹였다.

무어 감독은 이런 사례를 통해 민영 의료보험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회사는 대규모 소송에 걸려있어 이에 대한 법적 비용이 매우 크다. 보험료를 비싸게 받고 ‘짜게’ 지급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소송에 휘말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험료를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민영 의료보험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이 환자의 보험금 지급에 전권을 행사한다. 즉 건강보험공단 소속의 의학자문 의사와 조사관이 보험금 지급 평가를 한다.

예를 들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에게 백혈병 치료제로 A라는 신약을 투여했다고 하자. 보험에서 신약 사용을 7일간 인정한다고 할 때, 의사가 환자에게 신약 A를 10일간 투여하면 나머지 3일치에 해당하는 약값은 삭감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만약 건강보험공단이 신약 A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본인부담금으로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3일치만 삭감한 건강보험공단에 야속한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부분 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어느 한계 이상이면 그때부터 본인부담금이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민간 보험회사의 암보험이 성행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영화 중반, 한 캐나다인이 손가락 5개가 모두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 시간만 24시간이 넘었고, 외과의사 4명과 마취과의사, 수술 간호사 등 의료진이 총동원됐다. 대개 24시간 수술을 하려면 외과의사 외에도 최소한 마취과의사 3명과 수술 간호사 3명이 필요하고, 여기에 수술보조 의사, 보조 간호사, 방사선 기사, 수술 기구, 약품 등이 있어야 한다.
 

비싼 보험료를 내도 혜택은 제대로 못 받는다. 그러면서도 민간보험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사각형 안의 숫자는 정치인이 민간보험회사에서 받은 정치 기부금 액수다.


미국 6000만 원, 한국 80만 원, 캐나다 0원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국가의료보험으로 이 비용을 전액 지급한다. 그는 무료로 수술을 받았고, 손가락은 아직까지 잘 붙어있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30대 여성인 애드리안 캠블 씨는 아플 때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간다. 캐나다인 행세를 하며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서다. 그녀의 걱정거리는 치료받는 동안 경찰에 적발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절단된 손가락 하나를 잇는 데 보통 4시간이 걸린다. 이때 수술에는 외과의사 2명, 마취과의사, 수술 간호사가 동원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지접합 수술비를 약 80만 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6만 달러(약 6000만 원)가 드니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은 수술비용만으로는 수술에 투입된 의료진의 인건비도 보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외과의사들이 수술비 현실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의대에서 외과의사 지원자가 줄어드는 이유도 상당 부분 여기에 있다.

그나마 수술비도 건강보험심사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지급된다. 손가락 접합 수술의 성공률은 약 80%다. 의사도 신이 아닌 이상 100% 수술 성공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일부 평가자는 수술이 실패하면 수술비를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삭감한다.
 

육아 걱정 없어요~’. 2세를 안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프랑스 부부. 프랑스는 출산 3개월까지 보육여성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마이클 무어가 모르는(?) 이야기

영화에서 미국인 에릭 씨는 영국 여행 도중 어깨 골절상을 당한다. 그는 영국의 국영병원에 입원해 무료로 치료 받고 퇴원할 때 10달러(약 1만원)의 약값만 냈다. 영국은 1948년부터 국민건강보험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주재하는 미국인들의 인터뷰는 더욱 놀랍다. 국가가 출산 3개월까지는 보육여성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보육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대는 것이다. 프랑스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의료제도에는 다른 문제점들이 숨어있다. 영국의 경우 의사들의 수준이 낮아지고, 외국 의사들이 역수입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자국 의사들이 영어권인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례가 늘면서 영국 정부는 의사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등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또 좋은 의료시스템을 찾아 이주하는 불법 이민자도 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다.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와 비슷하지만 본인부담금이 필요하다거나 쌍꺼풀 수술처럼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보험비(非)급여 항목이 있는 점은 미국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적이지 못한 의료비 책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국민건강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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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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