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들은 물질에 포함된 입자의 개수를 셀 때 일정한 수의 입자를 한 묶음으로 파악한다. 이 묶음이 바로 몰(mol)이다.
우리는 아주 많은 수를 나타낼 때 '모래알만큼 많다'든가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면 모래알을 세본 사람은 과연 몇명이나 될까? 이러한 질문은 다소 어리석어 보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래알을 셀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축용으로 사용할 경우 모래는 차에 퍼 담은 양으로 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파트 건설업자는 덤프 트럭으로 몇 대 분의 모래를 주문할 뿐이며, 모래의 개수를 일일이 세는 일은 없다. 그러나 심심풀이로 8t(=8×${10}^{6}$g) 덤프트럭 속에 있는 모래알의 대략적인 개수를 세어보면 그 숫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얻어진다. 즉, 모래알 1개의 질량이 0.001g이고, 모든 모래알의 질량이 같다고 가정하면 덤프트럭 속의 모래알의 개수는 8×${10}^{9}$개쯤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래8×${10}^{9}$개씩을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 셈이다.
물질을 취급하는 화학자들도 물질 속에 포함돼 있는 입자의 개수를 셀 때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정한 수의 입자를 한 묶음으로 취급한다.
화학자들은 약 6.02×${10}^{23}$개의 입자를 한 묶음으로 취급하고 이 묶음의 단위를 몰(mol)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몰은 물질의 입자수를 세는 단위인 것이다.
몰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두더지, 혹은 방파제의 의미로 쓰이는데 두더지가 많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양이나 방파제의 구조물이 수없이 모여서 하나의 방파제를 이루는 모습에서부터 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듯하다.
입자를 양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
신학기가 되면 귀여운 신입생들이 학교로 몰려 온다. 학교에서는 이 학생들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가르칠 수 없다. 학생수, 학교의 교실 형편, 교사수 등을 고려해 학급당 인원을 정하고 몇 개의 반으로 편성해야 한다. 전체 학생수가 1천명이고 20학급으로 나누면 학급당 인원수는 50명이 된다. 즉, 이 경우는 50명의 학생을 한 단위로 취급하는 셈이다. 트럭 속 모래알의 개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이지만 학급당 인원은 학교교육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숫자다. 마찬가지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인 원자, 분자, 이온을 세는 단위인 6×${10}^{23}$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숫자다.
입자를 세는 단위인 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궁금한 점이 있다.
첫째, 모래처럼 양으로 취급하지 않고 굳이 입자수를 세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원자나 분자를 셀 때 왜 하필이면 6×${10}^{23}$을 한 묶음으로 하여 세어야 하나?
우선 왜 원자나 분자, 혹은 이온을 몇 g이나 몇 mL와 같이 양으로 취급하지 않고 굳이 수를 세야 하는지 알아보자. 소금과 같이 염이 녹아 잇는 용액은 순수한 물에 비해 어는 점이 더 낮고 끓는 점은 높다. 겨울에 도로에 소금이나 염화칼슘을 뿌리면 눈이 녹는 것은 염이 물의 어는 점을 낮추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에 똑같은 질량의 소금과 염화칼슘을 용해시키면 어는 점을 낮추는 능력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만약 똑같은 양의 물속에 입자의 수를 정확히 세어서 같은 수만큼 넣어주면 물이 어는점을 낮추는 능력은 같아진다. 이처럼 질량 측정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입자수를 셈으로써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이제는 왜 6×${10}^{23}$개를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원자마다 질량이 다른 이유는 오래 전에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다른 종류 원소의 원자 사이에 일정한 질량비가 성립하는 것을 근거로 원자들의 상대적인 질량을 결정했다. 탄소 원자의 질량을 12라고 하고 이 원자의 질량을 기준으로 다른 원자의 상대적인 질량을 구한 것이다.
수소 원자 1개의 질량은 약 1.7×${10}^{-24}$g이지만 수소원자의 상대적인 질량, 즉 원자량은 1.0이다. 수소 원자는 모두 질량이 같기 때문에 2개의 질량은 1개 질량의 2배이고 수소 원자 3개의 질량은 1개 질량의 3배이며..., 10개의 질량은 1개 질량의 10배,...1천개의 질량은 1개 질량의 1천배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해보면 6×${10}^{23}$개의 질량은 1개 질량의 6×${10}^{23}$배, 즉(1.7×${10}^{-24}$g/개)×(6×${10}^{23}$개)=1.0g이 된다. 이와 같이 수소 원자 6×${10}^{23}$개의 질량은 수소의 원자량에 g 단위를 붙인 양과 같아진다.
이러한 관계는 다른 원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산소의 원자량이 16이므로 산호 1몰(6×${10}^{23}$개)의 질량은 16g이고, 질소의 원자량이 14이므로 질소 1몰의 원자량은 14g이다. 이는 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물분자량이 18이므로 물분자 1몰의 질량은 18g이 된다.
이렇듯이 원자나 분자를 6×${10}^{23}$개씩 묶어서 취급하면 원자량과 원자수, 분자량과 분자수를 관련지을 수 있으므로 매우 편리하다.
저울로 원자나 분자수를 셀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자량은 원자의 상대적인 질량을 나타낼 뿐, 측정 가능한 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자를 1몰씩 묶어서 취급하면 원자량에 g 단위를 붙인 양에 해당되므로 저울로 일정한 수의 원자를 달 수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원자량이 적혀 있는 표를 하나 들고 다니면서 저울로 물질의 질량을 측정하기만 하면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의 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6g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컵에 들어 있는 1백80g의 물 속에 포함된 탄소 원자수와 물분자수도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원자량표를 이용하면 탄소의 원자량은 12이고 물 분자량은 18이라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므로 탄소는 12g속에 탄소 원자가 1몰(6×${10}^{23}$개)이 있는 셈이며, 물은 18g의 물속에 물분자 1몰(6×${10}^{23}$개)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0.5몰(3×${10}^{23}$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180g의 물속에는 10몰(6×${10}^{24}$개)의 물분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저울로 원자나 분자수를 손쉽게 셀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흔히 취급하는 물건의 개수를 세듯이 원자나 분자수를 센다면 1몰을 세는데 50억의 인구가 모두 1분에 1백개씩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센다고 해도 약 7백만년이 걸려야 모두 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다.
우주는 엄청나게 크고 무한하다. 또한 미시적인 원자의 세계도 무한하다. 그런데 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원자나 분자수를 저울 하나 가지고 셀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참으로 지혜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좀더 1몰 크기를 실감나게 느끼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만일 쌀 1몰을 우리나라 전국토에 균일한 두께로 깔 경우 어느 정도의 높이가 될까?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쌀을 2mm의 정육면체로 가정하자. 국토의 면적이 24만㎢라고 한다면 쌀 1몰을 쌓았을 경우 그 높이는 대략 얼마나 될까?
식은 다음과 같이 세울 수 있다.
(국토를 한층으로 까는 데 필요한 입자수)×(층수)=(총입자수)
우선 국토를 한층으로 까는데 필요한 입자수를 계산해 보자. 한반도의 면적을 ㎟ 단위로 환산하면 2.4×${10}^{17}$㎟다. 이를 쌀알 1개당 단면적4㎟/개로 나누면 6×${10}^{16}$개다. 이제 쌀알을 몇층으로 쌓을 수 있는지 계산해보자. 층수는 1몰(6×${10}^{23}$)÷(국토를 한층으로 까는데 필요한 쌀알 수)=6×${10}^{23}$개÷6×${10}^{16}$개/층=107층이다. 따라서 층의 높이는 ${10}^{7}$×2㎜/층=2×${10}^{7}$㎜=20km다. 이는 놀라운 양이 아닐 수 없다. 그 작은 쌀알을 한반도의 전체에 수직으로 20km나 쌓아 올려야 1몰이 된다니!
국민학교 1-2학년에 다니는 어린이의 손에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물속에 들어 있는 물 분자의 갯수가 이와같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미시적인 세계를 취급하는 화학이 협소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화학은 이와 같이 엄청난 양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에 맞춰 원료확보하기
질산 암모늄은 대표적인 질소 비료다. 비교공장의 고객이 8천t의 비료를 주문하였다고 하자. 주문된 양의 비료를 만들기 위해서 비료 공장에서는 원료를 사들여야 한다. 이 비료의 원료로는 암모니아와 질산이 사용된다. 주문량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원료가 사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선 반응식을 쓴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NH₃ + HNO₃ - - - >; NH₄NO₃
└ 원료 ┘ 비료
위와 같은 반응식은 '암모니아 1몰과 질산 1몰이 반응하면 질산암모늄 1몰이 발생한다' 뜻을 지니고 있다. 이제 8천t의 질산암모늄을 몰로 바꾸자. 먼저 원자량표를 이용해 반응에 사용된 암모니아, 질산, 질산암모늄 1몰의 질량을 구하면 이는 각각 17g, 63g, 80g인 것을 계산할 수 있다.
질산암모늄의 주문량을 몰로 바꾸면 ${10}^{8}$몰에 해당된다. 따라서 암모니아와 질산과 질산 암모늄의 반응 몰비가 1:1:1이므로 원료로 사용된 암모니아와 질산의 몰수는 각각 ${10}^{8}$몰 씩이다. 이는 질량으로 환산하면 각각 1천7백t, 6천3백t이다. 이와같이 비료 공장측에서는 몰비를 이용해 주문된 비료를 만들기 위한 일정량의 원료를 확보한다.
앞에서 언급한 물속에 용해된 용질에 의해 물의 어는 점이 내려가는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몰은 문제해결사 노릇을 한다. 수용액에서 용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일정량의 수용액에 녹아 있는 용질의 몰수에 정비례해서 물의 어는 점이 내려간다. 1kg의 용액에 1몰의 용질이 용해되어 있을 때 수용액의 어는 점은 1.86℃씩 내려간다. 가령 1kg의 수용액에 설탕이 3백42g 용해돼 있으면 어는점은 -1.86℃가 된다. 설탕 1몰의 질량이 3백42g이 된다는 것은 원자량 표를 이용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화학 현상은 몰 개념을 도입해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지구의 대기 중에는 질소와 산소가 4:1의 몰비로 섞여 있다. 만일 일시에 질소가 사라지면 대기압은 1기압에서 5분의 1기압으로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산소가 일시에 사라지면 대기압은 5분의 4기압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는 기체의 압력이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몰수에 의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함께 생각합시다
미국 우주선의 로켓은 암모니아, 알루미늄과 과염소산암모늄인 NH₄ClO₄의 혼합물을 연료로 사용한다. 이 물질들 사이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3Al+3NH₄ClO₄---→ Al₂O₃+AlCl₃+3NO+6H₂O
아래의 원자량표를 이용해 혼합연료에서 알루미늄 1kg당 필요한 과염소산 암모늄의 양을 계산하라.
해설
화학반응식에서 알루미늄과 과염소산 암모늄의 몰비는 1:1이다. 그리고 원자량표를 이용해 이 두 연료의 각 1몰의 질량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Al 1몰의 질량 = 27g
NH₄ClO₄ 1몰의 질량 = 14×1+1×4+35.5×1+16.0×4 = 117.5g
따라서 과염소산암모늄 1kg은 약 8.5몰에 해당한다. 몰비가 1:1이므로 알루미늄의 필요한 몰수도 8.5몰이다. 이 양은 알루미늄 229.5g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