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숭례문 복원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옛 건축기술이나 설계도면이 아니라 놀랍게도 소나무다.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기둥과 들보감이 될 만한 굵고 큰 소나무를 우리 땅에서 쉬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경복궁, 광화문, 숭례문 등 궁궐 복원에 필요한 건축재로 굳이 소나무를 사용하는 까닭을 알아보고, 소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함께 살펴보자.
한반도 대표 나무, 소나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소나무 속(Pinus)은 100여 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소나무 속에는 소나무(Pinus densiflora), 곰솔(P. thunbergii), 잣나무(P. koraiensis), 섬잣나무(P. parviflora), 눈잣나무(P. pumila)가 있다. 이들 수종 가운데 소나무의 분포영역이 가장 넓다. 수평적으로는 한국, 중국 동북지방의 압록강 연안, 산둥반도, 일본의 시코쿠, 규슈, 혼슈에서 자라며, 러시아 연해주의 동해안에도 자란다. 수직적 분포는 해발 최저 1m에서 최고 1500m까지 자란다.
곰솔은 서해안의 남양만에서부터 남해안 전역과 동해안의 강원도 강릉까지 온난한 해안가를 따라 자라 해송(海松)으로도 불린다. 잣나무는 중부 이북지역에 주로 자라며, 눈잣나무는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일대에서 자란다. 섬잣나무는 울릉도에 자생한다.
소나무는 자라는 지역의 기후와 지질에 따라서 금강형, 동북형, 중남부평지형, 중남부고지형, 위봉형, 안강형 등의 6가지 지역형으로 분류한다.
특히 문화재 복원용 목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금강소나무(강송 또는 춘양목)는 강원도 금강군에서 경상북도 울진, 봉화, 청송에 이르는 산악지역과 동해안에 자라는 소나무를 일컫는 이름이다. 춘양목이라는 이름은 봉화인근의 춘양역에서 울진, 봉화, 태백 등 주변 지역의 질 좋은 금강소나무들을 수집해 철도편으로 대도시로 실어낸 것에서 유래한다.
금강소나무의 생육특성은 줄기가 곧게 뻗고, 수관이 비교적 좁고, 재질이 치밀하고, 나이테 폭이 좁게 자라는 것으로, 특히 변재(邊材, 나무의 2차 물관부 중 바깥쪽의 살아 있는 목재)에 비해 심재(心材, 나무줄기의 중심부에 있는 죽은 세포로 구성된 단단한 재목)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건축재로서 우수한 재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금강소나무는 하나의 품종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고정된 유전형질을 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태백산맥과 영동지방의 생육환경이 금강소나무의 우수한 형질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궁궐 건축재로 애용된 이유
소나무는 고려시대부터 건축재나 조선재로 널리 사용됐다. ‘고려사’ ‘동국여지지’ ‘증보문헌비고’ 등의 옛 문헌에는 소나무가 궁실의 건축재, 우리 재래식 배(조운선)의 조선재로 널리 사용됐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부터 140여 년 전 고종 때 시행된 경복궁 중건 공사의 기록에도 전국의 소나무가 사용됐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1992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사업에도 여전히 소나무는 주 건축재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 초인 1398년에 완공된 숭례문도 소나무로 축조됐기 때문에, 그 숭례문을 소나무로 복원해야 함은 자명한 이치다.
조상들이 소나무를 건축재나 조선재로 선호한 이유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토양이 좋지 못한 곳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며, 다른 나무와 비교해서 건축재나 조선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강도를 지니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난방과 조리에 필요한 땔감과 농사에 필요한 퇴비는 모두 주변 산림에서 얻었다. 수백 년 동안 숲 바닥의 낙엽을 긁어 땔감을 채취한 방식이나 활엽수의 어린 줄기와 잎을 채취해 퇴비를 만들던 산림이용방식은 인가 주변의 산림토양을 점진적으로 악화시켰다. 그 결과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활엽수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한편 토양이 좋지 못한 곳에서도 비교적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류였고, 따라서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 인구가 많이 모여 살던 곳 주변에서는 소나무 숲이 무성해졌다.
금강소나무는 다른 용재수(건축자재로 쓰는 나무)와 비교해 재질이 강한 목재다. 궁궐이나 한옥 또는 사찰의 구조를 보면 대부분 수직부재인 기둥과 수평부재인 보와 도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통 목조건물을 짓는 기본 형식은 먼저 굵은 기둥을 세우고, 도리와 보를 걸어서 칸을 늘려 가는 것이다.
따라서 건물의 각 모서리에 수직으로 설치되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이어주는 보와 도리로 사용되는 목재는 지붕을 비롯한 건축물의 하중을 충분히 이겨낼 만큼 강해야 한다. 따라서 목재의 압축강도(위에서 누르는 힘을 견뎌내는 강도)는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감의 크기와 강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며, 휨강도는 도리와 보의 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국내의 일반 소나무는 해송이나 잣나무보다 강도가 낮은 반면 금강소나무는 휨강도나 압축강도가 다른 수종에 비해 비교적 강하다. 소나무류 중에서 휨강도가 강한 수종은 해송(곰솔)과 금강소나무다. 한편 종압축강도는 금강소나무가 가장 강했다.
금강소나무를 일본, 뉴질랜드, 미국의 대표적 용재수종인 편백, 라디아타소나무, 미송과 비교하니 금강소나무는 휨강도에서 미송보다는 10%, 편백보다는 7% 정도 더 강하며, 압축강도도 15~40% 더 강했다. 따라서 척박한 곳에서 천천히 자란 금강소나무는 다른 나라의 어떤 용재수 못지않게 강한 목재인 셈이다.
숭례문 복원에 큰 소나무 17그루 필요
전문가들이 추정한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나무의 규격은 다음과 같다. 상층의 기둥용 목재로 지름 60cm, 길이 3.1m짜리 5개, 대들보용 목재로 지름 68cm, 길이 5m짜리 목재 10개, 창방(기둥을 가로로 연결시켜주는 목재)용으로는 지름 60cm, 길이 7.3m의 목재 2개가 필요하다. 이런 규격의 목재를 얻기 위해서는 높이 25m, 가슴높이지름 80cm의 거대한 소나무 17그루를 잘라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 40여 년 동안 형질이 나쁜 소나무를 제거하고 대신에 낙엽송이나 잣나무를 심거나, 병해충에 의한 피해 등으로 소나무 숲의 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했기 때문에 우리 산하에서 이만한 크기의 소나무들을 쉬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숭례문 복원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가 소나무 대형목재의 확보이듯이, 지금부터 140여 년 전 고종 때의 중건도 역시 그랬다.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소나무재는 전국 8도의 산지에서 조달했고, 대형목재의 확보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낭림산맥의 강계 적유령과 영변의 묘향산 소나무까지 이용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소나무 대형목재의 부족을 보충하고자 경복궁 중건을 책임졌던 대원군은 김포의 장릉(章陵), 파주의 장릉(長陵), 고양의 효릉(孝陵), 남양주의 광릉(光陵), 개성의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에서도 소나무 대형목재를 확보했다. 왕과 왕족의 무덤 주변의 솔숲 역시 비상시에 국용재의 조달을 위한 비축기지였던 셈이다.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대형목재의 확보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다 보니,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무덤인 삼척 준경묘 주변의 소나무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화재로 지정된 묘역의 소나무라고 벌채를 반대하기도 하지만, 고종 때의 역사적 사례를 되새겨보면 삼척 준경묘의 소나무를 숭례문 복원에 사용할 여지는 있는 셈이다. 문제는 준경묘의 아름다운 경관도 살리면서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대형 목재도 적절하게 충당할 수 있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