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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숨겨진 저글링의 비밀

공의 길, 수열과 네트워크가 정한다

저글링의 비밀 


명절이 되면 방송되는 TV의 단골 오락 프로그램 중 하나가 각 나라의 서커스다. 서커스에서도 특히 많이 등장하는 묘기 중에 여러 개의 공이나 곤봉, 모자, 링 같은 것들을 떨어뜨리지 않고 공중에서 던지고 받기를 계속하는 저글링이 있다. 외발 자전거를 타면서 저글링을 하는 기인이 출연하는가 하면 달리면서 저글링을 하는 ‘조글링’을 즐기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아마 신기에 가까운 저글링 재주꾼들의 묘기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뭔가를 들고 직접 저글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저글링 기술을 익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대번에 알았을 것이다. 한 가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저글링 재주꾼들은 오랜 시간 비지땀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손에 공 한번 대 보지 않고’ 새로운 저글링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도 있다. 바로 공 대신 숫자와 씨름해 저글링의 비밀을 푼 수학자들이다.

저글링은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됐다. 고대 이집트 유적지인 베니하산의 묘에는 저글링을 하는 약 4000년 전 여인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 유럽, 아시아 등 서로 다른 지역에서도 저글링을 했던 증거가 발견됐다고 한다.

 

주기적 저글링은 일종의 유한수열로 표시할 수 있으며 이 때 공의 주기에 해당하는 것이 자리 바꿈 기호다. 자리 바꿈 기호가 531인 공 3개 저글링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자리 바꿈 기호


박자마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공을 던지면 왼손을 떠난 공은 항상 오른손에, 오른손을 떠난 공은 항상 왼손에 떨어진다.
박자마다 공의 위치를 자세히 나타낸 그림. 소나기형과 캐스케이드가 섞인 형태가 된다. www.siteswap.net에서는 주기적 저글링의 다양한 유형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박자 잘 맞추면 저글링도 잘한다?

하지만 저글링을 수학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 이었다. 1985년 몇몇 수학자들은 ‘사이트 스웝 노테이션’(site swap notation) 즉 ‘자리 바꿈 기호’를 이용해 저글링의 유형을 표현하는 수학적 체계를 발명했다. 이는 1980년대 저글링을 즐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들 가운데 수학자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리 바꿈 기호는 쉽게 말해 저글링의 유형을 일종의 유한수열로 나타낸 것이다. 유한수열을 찾기 위해서는 노래를 부를 때처럼 간단한 박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저글링을 노래로 생각하면 악보의 음표에 해당하는 것이 공인 셈이다. 박치만 아니면 누구든 저글링을 쉽게 자리 바꿈 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장 간단한 저글링 중 하나인 공 3개를 오른손과 왼손으로 번갈아 받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왼손으로 던진 공은 3박자 후 오른손에 떨어지고, 오른손으로 던진 공은 다시 3박자 후 왼손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공들은 무한대 기호 모양(∞)을 그린다. 쿵딱딱, 쿵딱딱 3박자에 맞춰 각 공은 공중에 3박자씩 머문 후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공부터 세 번째 공까지 반복되는 박자 주기를 숫자로 나타내면 ‘3, 3, 3, 3, 3, 3,··· 의 수열이 되므로 자리 바꿈 기호는 3이 된다.

공 3개로 가능한 또 다른 저글링의 유형도 있다. 만약 공 3개가 원 모양을 그리도록 저글링을 할 때는 첫 번째 공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던져 5박자만큼 공중에 머무는 동안 두 번째 공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1박자 간격으로 옮기고, 다시 세 번째 공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던져 5박자만큼 공중에 머물도록 던지기를 반복할 수 있다. 이 때는 공이 공중에 머무는 박자 주기가 ‘5, 1, 5, 1, 5, 1, …’과 같이 되므로 자리 바꿈 기호는 51이 된다.

이처럼 주기를 가진 저글링이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본 유형이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예 중 전자를 캐스케이드, 후자를 소나기형으로 부르며, 공을 같은 손으로 던지고 받는 분수형도 있다.

수학자들이 자리 바꿈 기호를 만들기 전에는 저글러들이 주로 이 세 가지 유형으로 묘기를 부렸다. 하지만 자리 바꿈 기호 덕분에 저글러들은 더 많은 기술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자리 바꿈 기호 531은 세 공 저글링이지만 캐스케이드와 소나기형을 섞어 놓았다. 첫번째 공은 캐스케이드처럼 던지고 나머지 두 공은 소나기형처럼 서로 반대방향으로 던진다. 또 744는 공 5개 저글링인데, 세번째 던진 공이 나머지 공 4개보다 항상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 된다.

그렇다면 자리 바꿈 기호로 만들 수 있는 저글링의 수는 얼마나 될까? 1994년 미국 리드칼리지의 조 불러 박사는 공의 개수가 b, 공의 주기가 n (단 n<b)일 때 가능한 저글링의 유형은 모두 ${b}^{n}$가지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저글러가 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주기적인 저글링의 유형은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때 그때 달라요

최근에 수학자들은 주기성이 없는 무작위 저글링에 관심을 갖고 있다. 무작위 저글링이란 손에서 던진 공을 공중에서 몇 박자 동안 머물게 할 것인지 던질 때마다 저글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유행어처럼 ‘그때 그때 다른’ 저글링이 무작위 저글링이라고 할 수 있다.

캐스케이드와 같은 주기적 저글링에서는 공의 순서에 따라 다음 공을 어떻게 던져야하는지가 미리 정해져있다. 하지만 무작위 저글링에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 순간 저글러가 어떤 식으로 공을 던지는지에 따라 매번 저글링 유형이 달라진다. 따라서 무작위 저글링은 주기적 저글링처럼 자리 바꿈 기호로 나타낼 수 없다.

하지만 무작위 저글링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수학과 그레고리 워링턴 교수는 지난해 최초로 무작위 저글링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무작위 저글링은 유한수열의 형태보다는 마치 월드 와이드 웹과 같은 네트워크로 나타난다고 한다.


저글링은 서커스의 단골 묘기다. 공 뿐만 아니라 곤봉, 모자, 링 등으로도 저글링이 가능하다.


공을 한번 던질 때 공중에서 머물 수 있는 최대 박자가 있고, 공의 개수도 정해져있다면 그 공으로 한번 저글링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유한개다. 만약 한번 저글링 할 때마다 이를 사진기로 찍어 현상한다고 하면 무작위 저글링은 현상한 사진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워링턴 교수는 이런 방법을 통해 전체 저글링 중에서 각 사진이 차지하는 시간비를 계산하는 공식을 구했다. 예를 들어 공 3개를 5박자 간격으로 던질 때 연속으로 세 공을 받은 후 2박자 동안 쉬는 상태가 처음 2박자 동안 쉰 후 연달아 세 공을 던지는 상태보다 27배나 많았다.

이처럼 무작위 저글링은 주기적 저글링에 비해 수학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저글러가 무작위 저글링을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무작위 저글링을 할 수 있는 저글러는 없다. 무작위 저글링은 글자 그대로 저글러가 공을 ‘무작위’로 던지면서 저글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유형이 너무 많아 모두 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 버클리대 수학과 알렌 넛슨 교수는 워링턴 교수, 매튜 레빈 교수와 함께 무작위 저글링을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수학적으로 복잡해 스릴이 넘칠 것 같았던 무작위 저글링은 의외로 수학적으로 단순한 주기적 저글링보다 따분해 이들은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넛슨 교수는 이 문제 역시 수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공을 높이 던지는 횟수가 너무 적으면 케스케이드와 비슷한 유형이 되고, 지나치게 자주 공을 높이 던져도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돼 무작위 저글링의 재미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유형이 너무 반복돼도, 다른 유형만 너무 계속돼도 무작위 저글링만의 ‘맛’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 발달도 도와

요즘 넛슨 교수는 이 중간에 해당되는 아주 흥미로운 무작위 저글링을 볼 수 있는 수, 즉 공을 높이 던져야 하는 적당한 빈도수를 찾는 중이다. 마치 얼음에서 물로, 물에서 수증기로 바뀌는 특정한 온도가 있는 것처럼 넛슨 교수는 무작위 저글링에서 공을 높이 던지는 ‘마술의 수’를 찾는 것이다.

저글링에 관한 수학적인 ‘상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저글러의 손이 두개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어떻게 될까? 또 손이 충분히 커서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받고 던질 수 있다면? 저글러가 괴력을 가져 얼마든지 공을 높이 던질 수 있어서 지금 던진 공을 내일이나 모레 쯤 받거나 아니면 언제 받을지 알 수 없다면 어떨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 새 수학의 달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글링이 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1월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는 유럽 연구자들이 21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두 집단 중 한 집단은 세달 동안 공 3개로 적어도 1분 동안 저글링을 하도록 했고, 다른 집단은 저글링을 하지 않았을 때 뇌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가 실렸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저글링을 한 집단에서는 물체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예측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뇌의 두 영역에서 구조의 변화가 생겼고, 무게도 3~4%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정도면 저글링의 매력에 빠져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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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자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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