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방선거는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선거죠. 특히 이번 선거는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예정일 다음 날이고, 개헌, 후보 단일화 등 각종 대형 이슈들과 얽혀 있습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봤습니다.
[D-30] 여론조사, 어디까지 믿을까
지방선거를 한 달 남긴 시기가 되면 각종 조사기관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냅니다. 한 집단 내 다수의 의견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에게 ‘다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해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재밌는 사실은 선거가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는 감수성이 다르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연구팀은 2012년 한 가지 실험을 기획했습니다. 재학생 67명에게 ‘야간에 자전거 후방 조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승인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읽게 했습니다. 기사에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재학생의 78%가 이 같은 정책을 지지한다(또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담았습니다.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는 이 정책이 비교적 가까운 미래인 다음 달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내년 시행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는 정책에 대한 참가자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여론조사의 영향력은 정책이 시행되는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정책이 내년에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학생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당장 다음 달에 시행된다고 믿는 학생들은 여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꿋꿋이 개인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혹자는 사람들이 당장에 닥친 사안보다 먼 미래의 사안에 신경을 덜 쓴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연구를 이끈 앨리슨 레저우드 UC데이비스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이 사회적 생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튜닝’하는 것은 사회적 생물이 잘 지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거죠. 그는 “먼 미래의 선거를 생각할 때나, 부재자 투표로 투표할 경우 개인은 과반수가 지지하는 의견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doi:10.1177/0956797611435920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얼마나 정확할까요. 최근에는 유권자의 행동 패턴이 바뀌고 응답률도 떨어져서 여론조사가 정확도와 예측력이 낮다는 비판도 많은데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정치및국제관계학과 연구팀이 1942년부터 75년간 전 세계 45개국의 선거 결과와 사전 여론조사 데이터(대선과 총선 총 351건에 대한 여론조사 3만여 건)를 분석한 결과, 선거 200일 전부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의 평균 절대오차는 4%p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D-50에는 3%p, D-1에는 2%p로 점점 떨어지며 기대치를 만족시켰습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인간행동’ 2018년 3월 12일자에 실렸습니다. doi:10.1038/s41562-018-0315-6
[D-19] 투표용지 디자인, 어떻게 할까
6·13 지방선거 19일 전인 5월 25일은 후보자등록 신청이 마감되는 날입니다. 그러면 이틀 뒤인 27일부터 투표용지 인쇄를 할 수 있습니다. 후보 단일화가 필요한 정당, 지역구에서는 마음이 급해지죠. 후보 단일화가 인쇄 이후에 이뤄져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찍혀 나오면 심각한 오류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는 기본적으로 7장입니다. 광역자치단체장(광역 시·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구·시·군의 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광역비례대표의원, 기초비례대표의원과 함께 교육감까지 뽑아야 합니다. 혹시 이번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사실상 가능성이 없지만 개헌투표까지 치러야 한다면 유권자들은 총 9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혼선이 없도록 1차로 투표용지를 3장 주고, 투표를 마치면 2차로 4장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투표용지를 연두색, 노란색, 하늘색 청회색, 연미색 등색상이 다르게 제작합니다. 색을 분류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보편적으로 지니는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서식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4~6개월 된 아기 179명을 대상으로 색상을 얼마나 구분할 수 있는지 실험했더니, 문화나 언어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등 다섯 가지 색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doi:10.1073/pnas.1612881114
한편 교육감 선거의 투표용지는 기초의원 선거구별로 유형이 다릅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게 아니므로 투표용지에 기호가 없습니다. 추첨으로 투표용지 게재순위를 결정한 뒤, 각각의 후보자가 차례대로 번갈아 맨 앞에 나오도록 순환배열 하죠. 후보가 A, B, C 세 명이라고 할때 ABC, BCA, CAB 순으로 적힌 3가지 유형의 투표용지를 배부합니다.
모든 투표용지의 한 귀퉁이에는 일련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올해는 일련번호가 찍힌 위치와 절취하는 절취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투표지 분류기의 종이 걸림현상(잼)을 줄이기 위해서랍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1분에 340매의 투표용지를 분류하는(후보자 6인 기준) 분류기 총 2558대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D-day] 개표방송 반전은 필연일까
오후 6시, 투표가 끝나면 각 방송사들은 본격적으로 개표방송을 시작합니다. 화려한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개성을 살린 개표방송은 스포츠 경기, 드라마보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요. 늘 반전이 있다는 점도 시청률(?)의 비결입니다. 개표방송 내내 이기고 있던 후보가 역전당해 떨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유는 ‘베르트랑의 투표용지 정리’라는 수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878년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워트워드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최종 득표수 p)가 패배한 후보(최종 득표수 q)를 개표 기간 내내 앞설 확률이 (p-q)/(p+q)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p가 1만(10000), q가 5000으로 득표수가 압도적인 차이가 났더라도 개표방송을 하는 동안 이기고 있을 확률은 0.33 즉 33%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방송사 개표방송은 개표율이 3%만 돼도 후보자 이름 옆에 ‘당선 유력’ ‘당선 확실’ 등의 스티커를 붙입니다. 선관위의 개표 데이터를 표본으로 당선 확률과 예상 득표율을 예측하기 때문인데요. 출구조사와 같은 방식입니다.
출구조사는 전국 투표소 중 무작위로 몇 곳을 골라 전체 유권자의 12% 내외(500여 만 명)의 표본으로 조사합니다. 마찬가지로 방송사의 예측 시스템도 전국의 투표소 중 무작위로 몇 곳을 골라서 그 투표소의 투표결과를 바탕으로 ‘유력’과 ‘확실’을 판정합니다.
당선확률은 분 단위로 계속 변동하는데, A라는 후보가 95%의 신뢰수준에서 당선권이면 ‘유력’, 99%의 신뢰수준에서 당선권이면 ‘확실’로 판정하는 식입니다. 구체적인 판정 방식은 방송사마다 조금씩 달라 ‘유력’ ‘확실’ 시점도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한편 개표가 상당 부분 진행 돼 아직 개표하지 않은 표를 2위 후보자가 모두 가져가도 1위를 따라잡지 못하면 ‘당선’이라고 알립니다.
[D+7] 결과 스트레스 이겨내야
선거가 끝나면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게 됩니다. ‘내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뇌에는 완충 기능이 있습니다.
아드리아나 갈반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심리학과 교수팀은 2016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실망감을 느꼈다는 시민 60명을 면담하고 이들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촬영했습니다. 면담 결과, 40명은 대선 결과가 개인적인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20명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때 재밌는 건 부정적으로 답했던 40명 중에도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는 점입니다. 23%는 불면증, 식욕 감퇴 같은 우울증 증상을 보였지만 나머지 77%는 그와 같은 신체적 증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이 77%의 사람들이 가족으로부터 위로를 받았거나, 뇌에서 측좌핵이나 내측 전두엽이 활성화됐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측좌핵은 뇌의 보상회로 중 하나로, 돈을 벌거나, 디저트를 먹는 등의 보상에 반응합니다. 내측 전두엽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활성화됩니다.
갈반 교수는 “뇌의 특정 영역을 어떻게 하면 촉진시킬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정치적 사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두뇌가 완충 효과를 보여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