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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단백질의 입체구조에 맞는 열쇠 찾는다

몸속 괴물 잡는 최첨단장비 MRI와 NMR

세포사멸 메커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Mst1의 일부인 사라가 똑같은 Mst1 짝과 쌍으로 결합했다가 파트너를 바꿔 암 억제 단백질(라스프)과 결합한 상상도.


한강 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괴물이 물속으로 풍덩 빠져 헤엄치자 주인공 강두(송강호 분)를 비롯한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이것저것 던지며 괴물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가 갑자기 괴물은 한강변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충북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있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기초연) 첨단자기공명연구동을 방문한 기자에게 자기공명연구단 전영호 단장은 영화 ‘괴물’을 보여줬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던지면서 막연하게 괴물을 관찰합니다. 하지만 수중 탐사용 장비가 있었다면 미리 괴물을 찾아내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연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전 단장은 장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면서 “우리 몸속에 사는 ‘괴물’인 암은 원통형 자석으로 된 자기공명촬영장치(MRI)로 관찰할 수 있고, 자석을 이용한 핵자기공명장치(NMR)로는 세포보다 작은 암세포 전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공명연구단은 지난해 1월 바이오-MR 전문연구사업을 시작해 동물 대상 연구용 MRI와 고해상도 NMR로 질병을 정복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NMR과 MRI로 질병을 정복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기초연 자기공명연구단의 전영호 단장.


“세계 최고 해상도로 세포분화 관찰”

자석을 이용한 장비인 MRI와 NMR이 연구단의 무기다. 지구 자기장의 세기를 1이라고 하면 인체의 심장은 100만분의 1, 뇌는 1억분의 1의 자성을 띠고 있다. 특히 몸을 구성하는 물의 수소원자핵은 고유한 진동수로 회전(스핀)운동을 하고 있어 자그만 자석과 같다. 이런 특성을 이용한 것이 MRI다. 원통형 자석 안에 들어가면 인체의 수소핵이 약하게 자성을 띠기 때문에 고주파전류(에너지)를 가했다 뺄 때 수소핵에서 나오는 신호를 이용해 체내 물 분자의 분포를 영상으로 얻을 수 있다.

보통 MRI로는 커다란 인체 조직을 살펴보는데, 얼마 전 연구단은 최첨단 MRI를 이용해 작은 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주도한 연구단의 홍관수 박사는 “개구리 알이 분화하는 생생한 과정을 자체 개발한 특수탐침을 장착한 MRI로 들여다봤다”며 “이는 세계 최고 해상도로 세포를 관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1월 세포생물학 분야 저널 ‘분화’(Differentiation)의 표지를 장식했다.

연구단의 MRI는 주로 질환모델 동물을 관찰하는 데 쓰이고 있다. 현재 아산병원과 함께 MRI로 고형암과 골다공증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그는 “앞으로 MRI를 이용하면 치료제의 효과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펴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치매나 뇌졸중의 치료제 효과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RI로는 실험동물의 영상을 찍어 질환을 연구하는 데 비해 연구단의 NMR로는 단백질, 특히 질환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히고 있다. 단백질 분자는 수소, 질소, 탄소 같은 원자가 주성분이고 이들 원자핵이 자석 안에 들어가면 약하게 자성을 띠어 NMR로 관찰할 수 있다. NMR에서 나온 신호는 원자의 종류, 원자 간의 거리, 결합각도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 골격 구조가 어떤지, 표면에서 어느 부위가 올록볼록한지 알 수 있다.
 

연구단에서 NMR을 동원해 밝혀낸 암 표지 단백질 ‘CDT1’(1)과 암 전이 단백질 ‘PRL3’(2)의 입체구조.


암 전이에서 세포 사멸까지 비밀 풀다

단백질은 종류에 따라 생긴 모양이 천차만별이고 모양과 성질에 따라 기능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적혈구 속에 있는 색소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운반하기 좋은 모양이고, 소장에서 활동하는 소화효소인 트립신은 동물의 입 모양 구조를 가져 단백질을 분해하기 좋다.

또 질환 단백질은 표면에 특정 분자가 결합해 반응이 일어나는 구멍(활성부위)이 있는데, 여기에 다른 물질을 집어넣어 반응을 못하게 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전 단장은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은 질환 단백질의 입체구조 구멍에 맞는 열쇠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골수암 치료제인 글리벡은 암세포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인산화효소 활성부위를 표적으로 삼는다.

2004년 연구단은 암 전이 단백질 ‘PRL3’의 3차원구조를 알아내 유럽 생화학분야 저널인 ‘FEBS 레터’에 발표했다. 암은 한번 치료한 뒤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다른 부위에 전이되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이 전이 과정에서 작용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한 것.

지난해 5월에는 비정상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는 메커니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일부(단백질상호작용 도메인)인 ‘사라’(SARAH)의 3차원구조를 밝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사라는 무도회에서 파트너를 바꿀 때 뻗는 팔에 해당한다. 세포사멸 촉진 단백질인 ‘Mst1’은 사라와 쌍으로 결합했다가 헤어진 뒤 팔(사라) 하나를 뻗어 사라와 비슷한 팔을 가진 암 억제 단백질인 라스프(RASSF)와 결합하면 세포사멸이 진행된다. 전 단장은 “이 연구결과는 세포사멸과 관련된 질환인 뇌졸중, 치매, 심근경색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사라의 입체구조를 규명하는 데 세계 최고 수준의 900MHz NMR을 동원했다. 900MHz는 수소핵이 고주파전류와 공명하는 진동수가 1초에 9억 회 정도가 되는 자석 세기를 나타내는데, 자기장이 셀수록 NMR의 분해능과 감도가 좋아진다. 2006년 4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연구단의 900MHz NMR은 특수장치를 장착한 덕분에 일반 800MHz NMR에 비해 분해능과 감도가 각각 12%, 400% 이상 향상된 성능을 보인다.

최근에는 900MHz NMR을 이용해 신약의 타깃이 되는 막단백질(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현재 시판 중인 약 가운데 50%가 막단백질에 작용한다”며 “막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알면 부작용을 제거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단백질은 물에 잘 녹지 않아 생산하기 힘들고 비누성분으로 녹이면 일반 단백질보다 크기도 커진다. 단백질이 커질수록 신호가 복잡해지고 약해져 900MHz NMR 같은 고해상도 장비로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 단장은 생명공학벤처기업인 크리스탈지노믹스에 몸담고 있던 시절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3차원 결합구조와 그 작용 메커니즘을 밝혀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는 “질환 단백질 연구 같은 기초 연구를 하기 위해 기초연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앞으로 암뿐만 아니라 천식과 아토피 같은 면역성 질환, 당뇨나 비만 같은 대사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최첨단장비를 이용해 몸속 괴물을 잡는 연구단의 눈부신 활약이 기대된다.
 

연구단은 MRI로 실험동물(쥐)의 영상을 찍어 고형암이나 골다공증 같은 질환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노벨상 휩쓴 물리학과 생물학의 융합분야 MR

노벨물리학상(1944년, 1952년, 1966년), 노벨화학상(1991년, 2002년), 노벨생리의학상(2003년)을 모두 휩쓴 연구분야가 바로 MRI와 NMR의 기반인 자기공명(MR) 분야다. 자기공명의 원리를 발견한 기초연구부터 MRI와 NMR을 개발한 응용연구까지 노벨상을 싹쓸이했다. 첨단장비를 개발하고 연구하면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초연 자기공명연구단(바이오-MR 전문연구사업단)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900MHz NMR이 설치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여 대밖에 없는 최첨단장비다. 또한 연구단의 900MHz NMR은 특별하다. 시료를 집어넣는 코일부분의 온도를 영하 250℃로 낮추는 특별한 장비(cryoprobe)를 장착해 감도를 상당히 높인 덕분에 거대 단백질의 입체구조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단에는 NMR에 넣을 시료인 질환 단백질을 대량 생산해 정제할 수 있는 다양한 설비도 갖추고 있다. 암 전이 단백질이나 천식 유발 단백질 같은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설계도인 인간 유전자를 대장균에 심은 뒤 대장균을 대량으로 키워 관련 단백질을 많이 생산하도록 하고, 대장균에서 이 단백질을 추출하고 순수하게 정제한 다음 NMR에 넣어 입체구조를 규명한다. 각종 질환 단백질의 3차원구조를 샅샅이 밝혀내 질병 정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 연구단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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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고승범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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