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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생쥐로 뇌 신비 밝힌다

유전자 기능 밝혀 신양 개발 토대 마련

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

▒ 1350 : 1.

사람과 생쥐의 뇌 무게(g)를 비교한 값이다.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사람 뇌와 콩알만 한 생쥐 뇌를 놓고 보면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사람과 생쥐의 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비슷한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를 이끌고 있는 신희섭 박사는 생쥐를 모델로 해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생쥐의 뇌에 변화를 줌으로써 일어나는 행동, 정서, 인지 변화를 관찰해 뇌의 기능을 밝힌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다양한 뇌질환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실마리가 된다.
 

신경과학센터를 이끌고 있는 신희섭 박사는“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밝히는 일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수염 안 다듬는 쥐는 정신분열증

‘유전자에서 행동으로’.

신경과학센터에서 하는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이곳에서의 연구는 주로 뇌에서 발현되는 특정 유전자를 없앤 생쥐, 즉 변이 생쥐를 만드는 일에서 출발한다. 유전자 하나가 없어지면 신경세포의 기능이 바뀌고 그 결과 뇌의 회로가 바뀌어 궁극적으로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한편 이런 행동 변화를 토대로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다.

변이 생쥐 한 종류를 만드는 데는 1년 반에서 2년이 걸리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따라서 어떤 유전자를 없앨 것인지 결정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 박사는 특히 뇌의 시상(thalamus)에서 발현하는 유전자에 관심이 많다. 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시상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대뇌피질에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신 박사팀은 시상이 단순히 신경정보가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 아니라 대뇌피질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의식작용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 왔다.

지금까지 신 박사팀에서 탄생한 변이 생쥐의 계보를 보자. 간질 증상을 보이는 생쥐(1997년), 비틀대는 생쥐(1999년), 아픔을 모르는 생쥐(2001년), 겁쟁이 생쥐(2002년),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는 생쥐(2003년), 똑똑한 생쥐(2003년) 등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 대부분이 겉모습만 보면 보통 생쥐와 별 차이가 없다.

“변이 생쥐가 보통 생쥐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조건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대충 보고 차이가 없다고 지나치지 말고 인내를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죠.”

예를 들어 생쥐는 서로 수염을 다듬어주는 습성이 있다. 사람처럼 면도기를 쓸 수도 없고 이빨로 자기 수염을 자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PLCβ1이라는 유전자가 없는 생쥐들끼리 모아두면 수염이 덥수룩하다. 상대방의 수염을 다듬을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변이 생쥐 한 마리와 보통 생쥐 한 마리를 같이 키우면 어떻게 될까? 변이 생쥐는 말쑥해지고 보통 생쥐는 지저분해진다.

상대의 수염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사회성 결여를 의미한다. 이 변이 생쥐의 행동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한 결과 보통 생쥐에 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반면, 사회활동에는 무관심하고 기억 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변이 생쥐는 사람으로 치면 정신분열증에 걸린 상태였던 것. 그런데 실제 정신분열증 환자의 뇌에서 이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이 보고된 적이 있다. 결국 연구팀의 실험결과가 인정돼 지난해 저널 ‘유전자, 뇌, 행동’에 논문이 실렸다.

PLCβ1은 지질을 분해해 신호전달물질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효소 단백질이다. 신 박사는 “PLCβ1이 결여된 생쥐가 간질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1997년 ‘네이처’에 보고한바 있다”며 “이단백질은 10년 만에 정신분열증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추가돼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뇌파의 변화를 측정해 변이 생쥐의 인지기능 변화를 연구하기도 한다. 생쥐 뇌에서 무슨 뇌파냐고 하겠지만 사람처럼 뇌의 상태에 따라 뇌파의 조성이 바뀐다. P/Q-타입 칼슘채널 유전자가 결여된 생쥐의 뇌파는 보통 생쥐에 비해 감마파가 감소돼 있다. 감마파는 인지와 지각 같은 뇌의 고등기능과 관련된 뇌파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P/Q-타입 칼슘채널이 감마파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인지 기능의 이상을 동반하는 치매나 파킨슨병 등 신경질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양한 변이 생쥐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시상과 대뇌피질을 연결하는 신경망 회로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상도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2016년 세계 10대 연구기관이 목표

신경과학센터의 연구결과들은 관련분야의 유수한 저널에 실리면서 우리나라 뇌과학 위상을 높이고 있다. 또 이곳에서 만들어진 변이 생쥐는 이를 필요로 하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그런데 2년이나 공을 들여 만든 변이 생쥐를 주는 게 아깝지 않을까.

“실험재료를 교환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오랜 전통입니다. 저희가 보낸 생쥐로 재미있는 연구를 해 논문이 나온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지요.”

그동안의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변이 생쥐를 토대로 역할이 규명된 유전자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그 결과 시상과 대뇌피질을 연결하는 신경망 회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연구가 축적돼 뇌의 의식 작용 조절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면 2016년까지 신경과학센터를 뇌연구 분야에서 세계 10대 연구센터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기초연구가 웬만큼 됐으면 응용연구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겨우 뇌를 이해하는 긴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물론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결과가 누군가에 의해 응용연구에 이용된다면 즐거운 일이겠죠.”

신희섭 박사에게 콩알만 한 생쥐 뇌야말로 의식의 신비를 간직한 보물창고인 셈이다.
 

보통 생쥐(1)와 달리 PLCβ1이라는 유전자를 없앤 생쥐(2)는 상대의 수염을 다듬어주지 않는 것처럼 정신분열증으로 해석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인다.


화학과 정보학의 융합, 케모인포매틱스

유전자의 기능이 행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는 신경과학센터의 연구결과들은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예를 들어 ‘T-타입 칼슘통로’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결여된 쥐는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 단백질의 경우 사람도 쥐와 비슷한 조직에서 발현된다. 따라서 그 기능도 유사할 것이다. 이 유전자가 결여돼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는 생쥐가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므로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물을 만든다면 통증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곳은 KIST의 케모인포매틱스연구단. 화학과 정보학의 지식을 융합해 연구하는 분야인 케모인포매틱스, 즉 화학정보학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연구분야다. 연구단의 최경일 박사팀은 T-타입 칼슘통로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분자들을 토대로 새로운 분자구조를 설계해 합성했다. 지금까지 수천 가지 분자를 만들어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최 박사는 “T-타입 칼슘통로 단백질에 달라붙어 통로가 열리지 못하게 하는 분자를 다수 찾아냈다”며 “현재 동물을 대상으로 실제 통증자극을 줬을 때 억제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선별된 분자가 최종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과하면 신약으로 탄생한다.

한편 간질이나 정신분열증, 운동장애 등 다양한 신경계 관련 증상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기능이 좀 더 명확히 밝혀짐에 따라 이를 토대로 한 신약개발도 뒤따를 전망이다.

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현진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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