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여풍(女風)이 거센 가운데 2007년 12월 6일 제7회‘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수상자가 발표됐다. 주인공은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 연세대 손소영 교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정희선 박사. 이학·공학·진흥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거둔 여성과학기술자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한국과학재단과 동아사이언스 주관으로 지난 2001년 만들어졌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이 후원하고 포상금은 1000만원이다.
RNA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학 분야 수상자인 김빛내리 교수는 마이크로RNA를 연구해 분자세 포생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DNA를 모든 생명현 상의 중심으로 여겼지만 몇 년 전부터 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중요인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매우 작은 크기의 RNA를 뜻하는 마이크로RNA는 세포의 분화와 발생,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세포 안에서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용하는 지 메커니즘을 발견해 세계유명저널인 ‘네이처’ ‘셀’ 등에 발표했다. 마이크로RNA로 세포의 기능을 조절하고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RNA간섭기술’에 김 교수의 연구성과가 활용될 수 있다.
2007년은 김 교수에게‘젊은 과학자상 ’‘로레알 유네스코 세계여성 과학자상’등 유난히 상복이 많았던 한해다. 김 교수는 “긍정적인 마음 가짐 덕분에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이공계 학생들에게“두려워말고 처음에는 폭넓게 공부하고 점차 자신의 관심분야를 좁혀 파고 들라”고 조언했다.
수많은 정보 가공해 ‘보석’ 만든다
공학 분야에서 수상한 손소영 교수는‘데이터마이닝’(data mining) 전문가다. ‘정보를 캔다’라는 이름 그대로 데이터마이닝은 많은 양의 자료 가운데 일정한 패턴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뽑아내는 기술을 뜻한다. 2004년 손 교수는 중소기업의 특정기술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해 그 기업에게 대출을 해줄지 결정할 수 있는 모형을 개발했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평가모형은 단순한 설문형식이어서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손 교수는 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수명과 시장점유율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통계적 알고리듬을 모형에 추가했다.
손 교수는 1981년 KAIST 산업공학대학원에 진학한 최초의 여학생이었다. 여자 동기 한 명 없이 외롭게 공부해서일까. 그는 유난히 여자 후배들을 챙긴다. 2003년 산업공학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소년들을 자신의 연구실에 초대했고 연세대 공대에‘여성과 산업 공학’이란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2005년 부터는 와이즈 멘토링(WISE Mentoring)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후배 여성과학자에게 자상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이미 과학수사 뿌리내리다
“C.S.I.시리즈가 인기를 끌며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 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0년 전부터 과학수사를 시작했죠.”
진흥 분야의 수상자인 정희선 박사의 말이다. 1980년대 초 국내의 필로폰 복용률은 매우 낮았고 필로폰 검출법도 전무했다. 하지만 정 박사는 소변에서 필로폰 성분을 검출하는 시험법을 미리 개발했다. 몇 년이 지나자 필로폰 사범이 급증했고 검출시험법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을 펼쳤다.
그는 1주일 정도 지나면 소변에서 마약성분이 사라지는 단점을 보완해 모발에서 필로폰 성분을 검출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언제 마약을 복용했는지 구체적인 시점까지 알 수 있다.
2002년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초의 여성부장으로 임용됐다.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몰입한 결과였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앞서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수사기법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불량식품 속에 잔류하는 농약과 토양성분을 검출해 원산지를 찾아내거나 폭발현장의 잔류물에서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해 어디에서 제조됐는지 밝힐 수 있다. 정박사는 “영원히 미제로 남는 범죄처럼 풀기 어려운 과제도 많지만 끈기를 갖고 덤비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