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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

시간의 심리학


12월이 되면 1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든다.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뇌가 처리할 정보량이 적었다는 말이다.


12월. 2007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물끄러미 바라 보며 지난 열한 달 동안 무엇을 했나 생각한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1년이 덧없이 흘러간 것만 같은가? 안타깝게도 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3월의 하루도 24시간이고 12월의 하루도 24시간인데 유독 12월에 들어서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가 만들어 낸 시간
 

아인슈타인은 데이트할 때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상황을 상대성 이론에 빗대어 설명했다. 인간은 시간의 길이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낀다.


사람들은 시계와 달력을 기준으로 시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계와 달력은 시간을 재는 도구일 뿐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심리학자와 신경생리학자에 따르면 시간은 뇌가 만든다. 뇌에 있는 시계로 외부와 내부 변화를 감지해 그 차이를 시간으로 인식한다는 뜻.

뇌엔 두 종류의 시계가 있다. 24시간을 주기로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하루주기성 시계’(Circadian clock)와 사건이 얼마나 지속하는가를 재는 ‘시간간격 시계’(interval timer)가 그것이다.

‘하루주기성 시계’는 빛을 기준으로 삼는다. 눈의 망막이 빛의 변화를 감지하면, 그 정보가 시신경을 따라 뇌에 전달된다. 또한 망막의 내막에 있는 광수용체인 멜라놉신이 빛을 감지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교차상핵으로 전달하면 시신경 교차상핵이 하루 주기(24시간)에 맞춰 생체반응을 조절하는 뇌영역으로 정보를 보낸다.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하루주기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외국 여행을 할 때 처음엔 시차 때문에 고생해도 곧 적응해 현지의 하루 생활주기에 맞출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간격시계’는 어떤 사건에 뇌가 반응할 때, 대뇌피질 세포들이 반응하는 속도가 다른 것을 나타낸다. 미국 뇌과학자 워렌 메크는 “특정한 사건들은 다양한 길이로 머리에 저장된다”며 “뇌 속에 시간을 재는 수많은 시계(시간간격 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뇌의 보조운동영역과 전두엽, 소뇌 같은 영역엔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또는 메트로놈)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조합돼 리듬이 다양해진다. 결국 사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리듬의 변화로 시간의 변화를 인지한다.

평소에는 시간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집중할 때만 시간의 흐름을 알아챌 수 있다. 재미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이 어느새 흘렀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한산한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거나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릴 때처럼 딱히 소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게 돼 시간이 느리게 간 듯 느낀다.

영화 속 주인공이 죽을 때 ‘슬로우 모션’인 까닭
 

피터 브뢰겔의 풍속화에는 수많은 사람과 집이 있다.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 사람들은 단순한 사각형을 볼 때보다 브뢰겔의 그림을 더 오래봤다고 느낀다. 사진은 브뢰겔의 작품 ‘죄 없는 자의 죽음’이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뉴욕타임스’ 기자들에게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매력적인 여자와 함께 보내는 2시간은 2분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고 있는 2분은 2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이다.” 찜질방에 가서 뜨거운 벽에 손을 대고 최대한 참아 봐라. 그리고 밖에 나와서는 그 시간만큼 재미있는 일을 해봐라.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의 상대성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중대한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거나, 사고를 당할 땐 화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흐른다. 마치 갑자기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교통 사고를 당하면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인생의 주요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짧은 시간 와중에 어떻게 움직이면 덜 다칠까 고민하기도 한다. 갑자기 시간이 고무줄처럼 한껏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시계를 놓고 쟀다면 5초 정도로 짧았던 상황이, 사고 당사자는 1분 이상이 흐른 듯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뇌는 시간을 잴 때 비교적 긴 시간은 해와 달 또는 주변 사물의 움직임 같이 외부 환경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마치 양치기가 동쪽에 떴던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하듯 말이다. 반면에 짧은 시간은 신체 변화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사고를 당하면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신체가 급속도로 변한다. 그만큼 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크게 늘어난다. 평상시에는 의식조차 안 하던 심장의 고동 소리나 공기를 흡입하는 허파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즉 심장이 빨리 뛰면 그것에 주의를 더하게 돼 시간이 길어진 것처럼 느낀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피터 체 교수는 실험참가자에게 1초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검은색 원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갑자기 검은색 원 하나가 부풀어 올라 붉은색으로 변하도록 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붉은색 원을 본 시간이 검은색 원을 본 시간보다 2배 길었다고 대답했다. 사실 붉은 원도 똑같이 1초 동안 머물렀다. 피터 체 교수는 “놀라면 뇌가 흥분하고 흥분한 뇌는 주의력을 높인다”며 “주의력이 높아진 뇌는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뇌는 늘어난 정보를 처리하면서 시간이 더 오래 흘렀다고 판단한다”고 해석했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변화를 많이 느낄수록 시간을 길게 느끼는 셈이다.

빨리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보상
 

영화‘매트릭스’에서 감독은 주인공의 결투장면을‘슬로우 모션’으로 표현했다. 인간은 위험에 처하면 찰나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져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착각한다.


시간은 우리가 기억하는 정보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로버트 오른스타인 교수는 1997년 실험참가자들에게 유명한 풍속화가 피터 브뢰겔의 동판화인 ‘연금술사’를 15초 동안 보여준 뒤 단순한 사각형 그림을 15초 보여줬다. 그리고 실험참가자들에게 각각의 그림을 얼마나 오랫동안 본 것 같은지 물었다. 실험 결과 브뢰겔의 그림을 사각형 그림보다 더 오래 봤다고 응답한 사람이 더 많았다. 기억하는 정보량이 다르므로 정보량이 많은 브뢰겔 그림을 더 길게 봤다고 대답한 것이다.

현재 겪는 일이 재미있거나 집중을 할 만해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으면 나중에 기억으로 떠올릴 만한 것이 많고, 반대로 지루해서 시간의 흐름을 길게 느끼면 나중에 기억할 만한 정보가 없어서 시간을 짧게 느낀다는 말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하루를 비슷한 일상으로 보내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방금 말했듯 기억에서 가져올 만한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색다른 경험을 하고 주의를 집중해 처리할 일이 많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이가 들어도 메모나 사진 등으로 현재에 벌어지는 일들을 정리해 놓아 나중에 기억으로 떠올릴만한 것을 많이 갖는다면, 지나간 시간을 되살리기 쉽기 때문에 시간이 덧없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빨리 지나간 시간은 뒤에 추억으로 보상되고, 지겨운 일상은 망각으로 보상된다.

이제 달력은 마지막 한 장만 남았다. 만약 2007년이 덧없이 흘러갔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약속이나 일을 많이 만들자. 그리고 그 일에 집중해보자. 가급적 기억할 만한 사진이나 글, 메모를 꼭 남겨라. 그렇게 한다면 2007년 12월은 여느 해와 똑같이 31일이지만, 여러분의 ‘2007년 12월’이라는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가면서도 나중에는 훨씬 길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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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남석 교양소설 작가
  • 진행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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