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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휘청거리게 한 캘리포니아 산불

산속별장은 화마 부르는 번개탄


산불이 캘리포니아 전역을 불길로 휘감았다. 산 뒤편에 가득한 연기가 산불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미국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화마(火魔)를 못 잡아 휘청거렸다. 10월 21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시작된 크고 작은 산불은 67명의 사상자를 내고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산림 1200km2, 주택 2000여 채를 태웠다. 바람을 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을 쫓느라 소방관들은 애를 먹었다. 투입된 소방관은 1만5235명이 넘었고, 투입된 장비만 해도 1551대 이상이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캘리포니아 화재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이번 산불이 미국에 준 충격은 컸다.

미 소방당국이 샌디에이고 카운티 2곳에서 산불을 완전히 진화했다는 낭보를 전한 시점은 화마가 시작된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산불이 번지는 속도와 불똥이 튈 방향을 먼저 알았다면 산불을 조금 더 빨리 진압하고 피해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호화 별장은 산불 촉매제
 

산불의 진행
 

산불이 나면 데워진 공기가 상승한다(01).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대형 강풍이 몰아치고, 이 바람을 따라 산불이 이동한다(02). 불은 나뭇가지와 땅을 타고(03) 이동하는데 회오리 바람(04)을 타고 옆 산에 붙기도 한다(05). 만약 산 중턱에 가옥이 있다면 이 가옥이 불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허브가 된다(06). 화재가 난 지 30분 이내에 헬기가 출동한다. 헬기는 소화약재를 현장에 뿌려(07) 산불을 진압한다.


산불은 나무와 풀의 종류와 양, 바람 세기와 방향에 따라 진로가 결정된다. 초지보다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 찬 산에서 불이 번지는 속도가 느리다. 이는 서강대 기계공학과 허남건 교수팀이 지난 7월 대한설비공학회에서 발표한 ‘산불 전파 수치 시뮬레이션’ 결과다.

허 교수팀은 다양한 풍속과 목초지 혹은 나무, 식물성 연료와 지면 경사도를 고려해 산불전파 수치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수치 시뮬레이션이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컴퓨터에서 그대로 모사해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이번 캘리포니아 대형 화재를 시뮬레이션 할 때 식생과 경사도, 풍속 자료를 입력하고 산불이 났다는 상황을 설정하면 화재의 예상 진행방향이 3차원 그래픽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허 교수팀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넓이가 20m×20m인 목초지를 완전히 태우는데, 바람이 초속 2m로 불면 25초 걸리는데 비해, 초속 6m로 불면 그 절반 정도인 1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람이 초속 6m로 불었다면 여의도 면적(8.5km²)만 한 숲이 모두 타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초속 27m가 넘는 샌타애나 바람*(Santa Ana Winds)이 캘리포니아 화재의 가속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숲에 가옥이 들어서 있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가옥이 산불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프랑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연구소는 산불이 번지는 경로와 조건을 연구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8월 2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가옥 한 채와 주변 또 이에 해당하는 넓이의 풀숲을 9개 구획으로 나누고 불이 났을 때 확산되는 방향을 살폈다.

그 결과 풀과 나무가 많은 숲에서는 이미 타버린 곳엔 불이 붙지 않아 산불이 한 방향으로만 이동한 반면, 가옥과 숲이 뒤섞인 곳에는 불이 나자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사방팔방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숲 속에 가옥이 있는 경우 한번 화재가 나면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화재를 진압하기도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캘리포니아주에는 호화 목조 별장이 많다. 캘리포니아대 마이클 질 교수는 “불은 주변 가옥의 종류와 밀집한 정도에 따라 화재 규모와 확산 경로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을 분석했다. 목조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불이 번질 확률이 방화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 지역보다 최고 9배 높았다. 방화시설과 방화벽이 없는 산 속 별장은 ‘화마 부르는 번개탄’인 셈이다.

소방 장비를 갖추고 방화벽 같은 내연 처리가 된 집에서는 불이 나도 주변 숲으로 번지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주 인구는 지난 60년간 3배로 늘었고, 산불이 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정된 화재위험지역(severe fire zone: 국립산림지대 50km 이내 지역)에 들어선 가옥이 50% 이상 늘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고 싶다는 명목을 핑계로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01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을 위성이 포착했다. 여러 곳에서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당시의 참상을 예상하게 한다.


형상기억합금 입은 불사조 소방관
 

02영화‘분노의 역류’의 주인공은 소방관이다. 불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의 1차 안전은 방화복이 책임진다.


지구가 위험에 처하면 태권V 같은 영웅이 나타나듯, 산불 현장에는 소방관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런데 화재현장에서는 거주자 못지않게 소방관의 피해도 크다. 태권V는 각종 보호 장비로 중무장해 적군의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지만 현실 속 소방관이 착용하는 보호 장비는 불의 공격에 100% 안전하지 않다.

화재현장에서 불길의 온도는 1000℃가 넘고 복사열도 만만찮다. 게다가 불이 데운 고온의 수증기는 소방관의 온 몸을 휘감는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소방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에 강한 신소재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주목받는 연구 가운데 하나는 형상기억합금을 원료로 만든 방화복이다. 형상기억합금은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도 특정온도에 이르면 변형되기 전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금속을 말한다.
 

미국 듀폰사가 방화복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김은애 교수는 형상기억합금 용수철로 개량 방화복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니켈(Li)과 티타늄(Ti)을 섞은 ‘니티놀’ 재질 용수철을 소방복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끼워 넣었다. 평상시에는 보통 옷 두께지만, 주위 온도가 50℃를 넘으면 니티놀 용수철이 펴지면서 외피와 내피 사이가 벌어진다. 이 틈에 공기가 들어가 단열재 역할을 한다.

고온의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열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려면 소방관의 옷은 단열이 잘 돼야한다. 김 교수는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소방관이 1시간에 650g 이상의 땀을 흘리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규정한다”며 “소방복의 단열기능은 소방관의 생명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폴리벤즈옥사졸(PBO, Polybenz-oxazole)이라는 소재가 주목받고 있다. 연방항공국(FAA)은 PBO를 비행기가 폭발할 때 내뿜는 열이 닿아도 불이 붙지 않는 유일한 유기물로 인정했다. FAA는 곧 PBO를 방화복 재료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제까지 방화복에는 난연성인 아라미드 계열의 노멕스나 케블라 섬유가 주로 쓰였다. PBO는 벤젠고리와 헤테로고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구조로, 두 고리가 아라미드계열의 섬유보다 많다. 벤젠 고리는 열을 흡수한다. 그만큼 난연성이 높다는 말이다.
 

형상기억합금 스프링 방화복^50℃가 넘으면 길이가 3배 이상 늘어나는 스프링을 방화복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붙였다. 이 옷은 화재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열기능이 좋다.


화재진압 영웅은 소화약재
 

01방화수에 소화약재를 섞어 사용하면 산불을 빠르게 진압할 수 있다. 사진의 붉은색 부분이 소화약재다.


캘리포니아 대형화재 참사가 있기 전에도 큰 화재는 끊임없이 있었다. 산불은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울창한 산림과 바람을 타고 번져 진화가 어렵다. 또 어느 정도 불길이 커지면 높은 온도와 유독한 연기 때문에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아 진화에 애를 먹는다.

우리나라도 매년 크고 작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5년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도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가 됐다. 낙산사가 복원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 간신히 1200년 역사를 다시 이었지만 ‘천년고찰’로 불렸던 ‘진품’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컸다.

낙산사를 불에 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국립산림과학원 구교상 박사는 “산불은 물로 끄는 것보다 소화약재로 진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소화약재는 관공서나 집에서 흔히 보는 빨간색 분말소화기와 원리가 비슷하다. 분말소화기에는 인산암모늄이 들어있다. 이 약재는 화재현장을 냉각시킨다. 다만 산불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소화약재를 넓게 퍼뜨리는 기구를 사용해 불을 진화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02산불로 피해를 입은 자동차의 잔해다. 올해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한 피해액은 1조 5000억원을 넘어섰다.


구 박사는 올해 인산나트륨을 원료로 한 소화약재를 개발했다. 이 액체 약재는 열을 받으면 자동으로 기체로 변한다. 그리고 이 기체는 불에 산소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도록 차단한다. 구 박사는 “방화수(水)를 분당 4리터씩 뿌려 불을 끄면 25초가 걸릴 것도, 새로 개발한 약재를 사용하면 17초 안에 진화할 수 있다”며 “물보다 진화 속도가 1.5배 빠르다”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는 일반적인 액체 소화약재보다 불 끄는 효과가 큰 거품제와 지연제를 사용하는 추세다. 거품제는 인산암모늄수용액과 표면장력을 낮추는 계면활성제의 혼합물인데, 이것을 화재현장에 뿌리면 거품이 생긴다. 거품이 화재지역의 온도를 발화점 이하로 낮추고, 연료를 거품으로 덮어 원료와 산소를 차단한다. 결국 화재의 3요소인 연료, 산소,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모두 차단돼 불이 꺼진다.

불이 옮겨붙을 지역에 지연제를 뿌려두는 방법도 있다. 화재 전방에 약 1600km² 지역에 뿌리는데, ‘먹을 것’(연료)이 없어진 ‘괴물’(산불)은 결국 지연제를 돌파하지 못해 ‘굶어 죽는’(화재진압) 원리다. 지연제의 원료는 수산화알루미늄이다. 이 물질이 공기 중 산소와 만나면 물이 생기는데, 이때 생긴 물이 기화되면서 온도를 낮춘다. 또 수산화알루미늄은 화재현장에서 알루미나(Al2O3)로 되는데, 이 물질이 연료를 ‘코팅’한다. 궁극적으로 불의 확산을 막는다는 말이다.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이시영 교수는 “국내에도 거품제와 지연제가 있기는 하지만 단가가 비싸 화재가 나도 충분히 사용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라며 “거품제와 지연제가 소화 시간을 2배 이상 단축시키므로 앞으로 이 약재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화재는 인재다. 인간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산불의 횟수가 증가했다. 전세계 산불 분포도를 봐도, 인간이 땅을 개간하는 곳에서 산불발생 빈도가 높다. 땅을 일구기 위해 화전을 일삼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방재 도구가 갖춰져 있더라도 화재 안전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산불은 반복될 것이다.
 

03최근 3년간 국내 산불발생건수와 피해면적이 줄고 있는 추세다. 특히 정부와 소방서가 산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피해면적이 2500ha 이하로 줄었다.


샌타애나 바람

시에라네바다 사막에서 불어온 바람이 로키산맥을 넘어오면서 만들어지는 높새바람이다. 주로 가을과 초겨울에 불어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대형 화재를 자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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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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