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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속도의 비밀은 '칩'

3차원 그래픽 프로세서 개발 연구실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백미는 주인공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이 가족과 찍은 3차원 동영상을 공중에 홀로그램으로 펼쳐놓고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특수효과로 3차원 영상을 만들었지만, 최근 3차원 디스플레이가 개발되면서 머지않아 일상생활에서도 입체영상을 보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3차원 디스플레이가 ‘느림보 굼벵이’밖에 안 된다. 3차원 디스플레이가 구현하는 그래픽은 2차원 평면에 나타나는 것보다 정보량이 수십 배 많아 컴퓨터 중앙처리장치가 이 정보를 홀로 처리하기는 무리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김이섭 교수는 “정보를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초대규모집적회로’(Multimedia VLSI)칩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작으면서 정보처리속도가 빠른 컴퓨터를 만들려면 트랜지스터를 가능한 한 많이 집적한 칩을 만드는 기술이 필수다.
 

멀티미디어 초대규모집적회로칩은 3차원 디스플레이의 재생속도를 높여 3차원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하드웨어다.



기술 컨버전스로 탄생한 3차원 디스플레이

김 교수가 개발한 칩은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 단계를 줄이고 동영상을 만들 때 용량을 줄여 재생 속도를 높였다.

3차원 디스플레이의 작동 과정을 ‘눈 내리는 날’에 비유해보자. 과거의 3차원 디스플레이는 눈이 길에 한가득 쌓일 때까지 기다린 뒤 한꺼번에 치우듯이, 데이터 단위인 픽셀을 전부 모은 뒤 화면에 한꺼번에 나타낸다. 반면 김 교수팀이 개발한 칩은 눈이 한 송이씩 내릴 때마다 바로 치우는 것처럼 픽셀이 하나 생겨날 때마다 화면에 곧바로 배치한다.

이 방식대로라면 영상의 용량이 아무리 커도 컴퓨터 시스템은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일본 도요타가 성공한 비결과 비슷하다. 도요타는 부품을 재고창고에 들여놓지 않고 바로 생산라인에 투입해 자동차를 만든다. 재고가 없어 물류비용도 아끼고 생산 효율성도 높였던 것.

영상의 용량이 늘어나 속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액정표시장치(LCD) 같은 2차원 디스플레이는 2차원 이미지 하나면 충분하다. 반면 3차원 디스플레이는 최소한 2차원 이미지가 9개 필요하다. 그만큼 화면에 내놓기까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도 많아 시스템 속도가 느려진다. 실시간으로 즐기는 짜릿한 3차원 디스플레이 레이싱 게임은 꿈도 못 꾸는 셈이다.

김 교수팀은 이미지 9장을 모두 만드는 대신 이미지를 2장만 만들고 대신 영상의 깊이 정보를 기록했다. x축과 y축으로 평면을 만든 뒤 z축 값을 넣어 입체를 만드는 원리다. 이 정보를 활용하면 나머지 7장의 이미지를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기술로 영상을 그리는 시간과 저장할 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김 교수의 연구는 지난 2월 IT 분야 최고 학회로 정평이 난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에서 주목을 받았다. ISSCC는 ‘황의 법칙’이 무어의 법칙을 뒤엎은 학회로 새로운 IT 기술의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3차원 디스플레이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도록 돕는 칩을 설계해 ‘하이라이트 논문’으로 선정됐다.

김 교수팀은 3차원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3차원 그래픽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실시간으로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런데 이는 3차원 그래픽을 구성하는 방식을 변형해 3차원 디스플레이에 적용하는 방법이었다. 기존 기술과 새로운 기술의 연결점을 마련했다는 뜻. 김 교수는 “앞으로 3차원 디스플레이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반을 만드는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차원 그래픽 프로세서 개발 연구실 구성원. 뒷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김이섭 교수다.

200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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