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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부터 우주까지 빛으로 길이 잰다

10억분의 1불확도 정밀공학 연구단

지난 8월 29일 세계 3대 디스플레이 전시회 중 하나로 꼽히는 IMID 2007(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시회)가 대구에서 열렸다.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전시회에서 세계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삼성전자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최대크기의 기판(8세대, 2200×2500mm)을 적용한 52인치 LCD TV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 것. 화려하고 또렷하면서도 시야를 덮는 엄청난 크기의 TV 화면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런 고품질의 대형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판 유리 표면을 복잡한 다층 구조로 만들고 특수코팅처리를 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하지만 그보다 나노미터 수준의 정밀도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소자 하나하나에 결함이 있는지 검사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LCD 제작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불량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면 제품을 팔기는커녕 개선조차 할 수 없기 때문.

LCD 개발 초기에는 나노미터 길이를 측정하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정밀측정기술이 발전하면서 측정 문제는 곧 해결됐다. 다만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는 영역의 넓이가 1mm2도 되지 않아 나날이 커지는 평판의 표면 전체를 훑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게 걸림돌이었다. 따라서 정밀한 눈금을 갖고 있으면서 넓은 영역을 한꺼번에 측정할 수 있는 ‘자’를 개발하는 일이 2000년대 초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나노부터 우주까지 빛으로 길이잰다
 

빛의 간섭현상 이용해 LCD 박막 두께 측정

‘10억분의 1 불확도 정밀공학’(BUPE)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승우 단장은 나노미터 수준까지 정밀하게 길이를 측정할 수 있으면서 전체 길이가 1m에 이르는 ‘자’를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불확도가 10억분의 1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불확도란 어떤 대상에 대한 측정의 정확도를 뜻하는 말로 측정 장치의 최소눈금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는 최대 측정량의 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최소눈금이 1mm이고 전체 길이가 1m인 자의 불확도는 1000분의 1이죠. 우리 연구단은 그보다 100만 배 더 정밀한 자를 개발했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 산업계에서 쓰는 나노측정장비의 불확도는 100만분의 1 정도다. 나노 단위의 눈금이 새겨 있지만 전체 길이는 1mm에 지나지 않는 초소형 자를 떠올리면 된다.

이런 자 하나로 키가 180cm인 성인의 키를 나노미터 수준으로 재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핀셋으로나 집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자를 1800번 가까이 반복해서 키를 측정해야 한다. 측정결과를 취합하는데 오차도 발생한다. 하지만 BUPE 연구단이 개발한 ‘자’로는 단 한 번에 키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 원리가 뭘까.

김 단장의 ‘여의봉’ 같은 자는 ‘빛’의 간섭원리를 이용한다. 먼저 파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빛을 두 개로 나눠 한쪽 빛은 거울에, 다른 쪽 빛은 물체의 표면에 반사시킨다. 거울에 반사된 빛은 위상의 변화가 없지만 물체에 반사된 빛은 표면의 높낮이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반사된 두 빛을 다시 한데 모으면 두 빛은 간섭현상을 일으킨다. 마치 물결이 겹칠 때 위상에 따라 물결파의 높낮이가 달라지듯 빛 역시 위상의 차에 따라 밝기가 변하며 무늬를 나타낸다. 빛의 간섭효과로 나타난 상에서 각 지점의 밝기 차를 거꾸로 계산하면 미세한 박막의 두께나 길이를 알아낼 수 있다

김 단장은 “물체에 쏘는 빛의 면적을 넓히면 LCD 박막 표면의 일정 부분을 ‘통으로 찍듯’ 한꺼번에 두께를 측정할 수 있다”며 “현재 상용화된 디스플레이 평판 검사 장비는 한 번에 가로세로 5mm 정도를 측정할 수 있지만 이를 1m로 늘리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BUPE 연구단의 한 연구원이 광간섭실험을 하고 있다. 광원으로 레이저를 이용하기 때문에 보안경을 써야 한다.


위성 움직임 세밀하게 추적

김 단장은 지난 1999년 연구단을 처음 시작하며 3년 안에 불확도 1000만분의 1(${10}^{-7}$)을, 6년 안에 불확도 1억분의 1 (${10}^{-8}$)을, 그리고 9년 안에 최종목표인 불확도 10억분의 1(${10}^{-9}$)을 실현하는 측정기술을 개발하는 목표를 세웠다.

창의연구단 9년 연구를 마무리하는 올해 목표를 점검해보니 모두 완수했다. 그동안 출원한 특허가 42건, 국내외 저널이나 학회에 발표한 논문은 300건에 이를 정도다.

기업과 활발히 협력해 기술을 상용화하는데도 성공했다. 2003년 반도체 최종 외관 검사기를 개발해 국내 기업이 상용화할 수 있게 기술이전을 했고 2004년에는 세계적인 전자측정기기 회사인 미국 자이고(ZYGO)에 백색광을 이용해 얇은 투명 박막의 두께를 재는 기술을 이전해 해마다 매출액의 2.5%를 기술료로 지급받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10}^{-12}$ 이상의 불확도에 도전하는 연구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측정대상은 바로 우주입니다.”

수백km에 이르는 인공위성 사이의 거리를 수십 나노미터 수준까지 정밀하게 측정하면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의 정확도도 더 높아지고 위성의 움직임도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단장은 지구에 있는 천문대에서 인공위성이나 달에 레이저를 쏴 우주공간에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SLR(위성레이저추적소)에 BUPE 기술을 응용하는 연구를 지난 2006년 시작했다.

그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절대거리간섭계시스템을 SLR에 적용하기 위해 중국의 관련 연구소와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와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억분의 1 불확도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BUPE 연구단이 10조분의 1 불확도에 도전하는 ‘TUPE’(Center for Trillionth Uncertainty Precision Engineering) 연구단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금속박막표면에 새겨진 패턴의 높이 재기^파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빛(01)을 광분할기에 통과시켜 두 개로 나눈다(02). 한쪽 빛을 금속박막에 반사시키면 표면에 새겨진 패턴의 높이에 따라 빛의 위상이 달라진다(03). 다른 한쪽 빛을 거울의 위치를 달리하며 반사시킨 뒤(04) 광분할기를 통해 두 빛을 한데 모아 광검출기로 보낸다(05). 두 빛이 만들어낸 간섭무늬를 분석하면(06) 패턴의 높낮이를 색깔로 표시해 나타낼 수 있다(07).


벤처를 위한 ‘기술주치의’_김승우 교수
 

김승우 교수


“측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회사는 우리 ‘병원’에 오세요.”

2003년 8월 김승우 교수는 연구실 홈페이지에 ‘병원개업인사’를 올렸다. 병원의 이름은 ‘카이스트 정밀측정클리닉’.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측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회사에 필요한 기술을 처방해주는 병원이다.

대전에는 컴퓨터나 LCD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을 만드는 벤처회사가 많다. 이들 회사는 부품 제조분야에서는 앞선 기술을 가졌지만 제품의 결함을 검사하는 정밀측정기술이 없어 값비싼 외국산 장비를 들여와야 했다.

“100만 달러짜리 외국 측정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반도체부품 벤처 사장을 도와준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연구실의 측정기술로 2만 달러에 문제를 해결했죠.”

김 교수가 ‘명의’로 입소문이 나자 측정과 관련해 기술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주변 벤처회사들이 하나둘 정밀측정연구실로 찾아왔고, 좀더 체계적으로 이들 기업을 돕기 위해 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에 정밀측정클리닉 설립을 신청했다. 그러자 LG생산기술연구원이나 삼성전기 같은 대기업에서도 기술자문을 얻어 갔다.

2006년 8월 김 교수의 ‘개인병원’은 ‘종합병원’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KAIST 산학협력단이 ‘카이스트 정밀측정클리닉’을 모델로 ‘카이스트 기술종합병원’을 설립한 것.

KAIST 교수들과 연구원, 대덕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 전문가 245명이 정보통신, 생명기술, 나노기술, 환경공학, 경영, 디자인 분야의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를 전담하는 ‘기술주치의’로 나섰다.지난 1년 동안 기술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기업은 34개, 치료건수는 65건에 이른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진료진이 보유하고 있으면 기술이전을 해주고 큰 수술이 필요한 장기적인 과제는 공동으로 위탁해 연구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업은 문제를 해결해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고 연구실은 연구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받는다”며 “산학협력의 좋은 본보기를 만드는데 일조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BUPE 연구단 김승우 교수(가운데)가 연구원들과 광간섭 실험장치를 보며 간섭무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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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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