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0여년 동안 물을 뿜어내던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가 말라붙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로마 외곽에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공사로 트레비 분수를 비롯해 로마 북쪽 지역에 물을 공급하던 ‘아쿠아 베르지네’ 지하수로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로마에는 아쿠아 베르지네 수로를 비롯해 수로가 11개나 있다. 로마에 수로가 만들어진 이유는 도시가 확장되고 인구가 늘면서 부족해진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로마 옆을 흐르는 테베르강은 오염돼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
기원전 312년 원로원은 로마 북동쪽을 흐르는 아니에네 강물을 끌어오는 ‘아쿠아 아피아’ 수로 개발을 시작으로 ‘아니오 베투스’ 수로, ‘아쿠아 마르키아’ 수로를 건설했다. 이 수로들은 길이가 60~90km에 이르며, 아쿠아 마르키아 수로는 하루에 1900만L의 물을 공급할 만큼 규모가 컸다.
당시에는 물을 위로 끌어올리는 펌프가 없었기 때문에 중력과 사이펀(Siphon) 원리를 이용해서 물을 흘려보냈다. 수로의경사는 평균 1000분의 1 정도로 1km 떨어진 수로의 높이차는 1m에 불과하다. 특히 수로가 지나는 길목에 골짜기나 산이있으면 아치형의 구조물인 고가수로를 만들거나 터널을 뚫어 지하수로를 만들었다.
골짜기가 너무 깊어 고가수로를 만들기 힘든 경우에는 사이펀 원리를 이용했다. 사이펀은 위치에너지와 대기압 차이를 이용해 중간의 물길이 높든 낮든 물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관이다.
로마의 수로는 수원지가 로마시보다 높기 때문에 관을 통해 물을 어느 정도 골짜기 아래로 내려보냈다가 다시 위로 올리는 일이 가능했다. 반대로 지하수로를 만들다가 뚫기 힘든 단단한 암반을 만나면 수로를 위로 올렸다가 내리기도 했다.
트레비 분수에 물을 공급하는 아쿠아 베르지네 수로는 로마에서 7번째로 만들어진 수로다. 이 수로는 아그리파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아그리파 목욕장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쿠아 베르지네 수로는 로마에서 약 13km 정도 떨어진 루쿨라누스 농지의 샘에서 물을 끌어온다. 수로는 로마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로마 북쪽에서 크게 우회해 들어온다. 중간에 있는 낮은 지대를 피해 일정한 기울기로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서다. 대부분 땅밑을 흐르는 지하수로지만 수로의 폭이 평균 1.5m로 작은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수반의 크기가 다른 이유
아쿠아 베르지네 수로는 5~6세기 로마 제국이 몰락하며 일부가 파괴돼 물의 흐름이 멈췄지만 786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가 복구하며 물이 다시 흘렀다. 이 수로는 로마 북쪽으로 들어와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된 스페인 광장의 ‘조각배 분수’에 물을 공급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나보나 광장의 ‘4대 강 분수’를 지나, 마지막으로 트레비 분수에 물을 흘려보냈다.
분수들은 모두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내뿜기 때문에 분수가 있는 지대의 높이도 조각배 분수가 제일높고 트레비 분수가 가장 낮다.
트레비 분수에는 세 개의 수반(水盤, 물을 담는 쟁반)이 있다. 이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분수의 수압을 대기압보다 높게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분수에서 물은 위로 뿜어져 나오는데 가장 먼저 이 물을 담는 수반이 넓으면 물을 누르는 대기압도 커진다. 그래서 가장 위의 수반은 작게 만들어 물이 쉽게 차오르게 하고, 이 수반에서 흘러넘친 물을 아래의 수반이 담게 만들었다. 이런 원리는 조각배 분수에서도 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이 유럽과 서아시아, 아프리카 북부를 지배하며 강대했던 4세기. 로마의 11개 수로는 도시에 매일 9억8400만L의 물을 공급했다. 부자와 귀족은 집에서 수로의 물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었으며, 로마에는 1000개 이상의 분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치수’가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때, 로마 제국의 힘은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물을 흐르게 한 놀라운 기술력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