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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생물 놀이터 열수분출공

350℃, 270기압에서 살아남는 비법

2700m 심해 속 뜨거운 정원
 

02열수분출공은 심해 생물들이 밀집해 서식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여름이면 꽃들의 여왕인 장미가 아름다운 자태와 알싸한 향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핏빛보다 더 붉은 꽃송이를 바라보노라면 뜨거운 더위도 잠시나마 잊혀진다. 그런데 깊은 바다 속에서도 장미정원을 만날 수 있을까.

1977년 2월 17일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의 심해유인잠수정 앨빈은 갈라파고스제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380km 떨어진 곳에서 잠수를 시작했다. 잠수한지 1시간 30분이 지나자 수심 2700m의 바닥에 다다랐고, 잠수정에 타고 있던 과학자들의 눈앞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굴뚝 주위로 검은 연기와 뜨거운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1979년 이곳을 다시 찾은 과학자들은 더욱 신비한 광경을 목격했다. 굴뚝 주변은 게, 새우, 대합, 홍합, 갯지렁이류, 어류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처음 보는 생물들이었다. 특히 사람 팔뚝만한 두께에 길이가 2m나 되는 희한한 관벌레의 모습은 마치 활짝 핀 장미꽃을 보는 듯했다. 과학자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장미정원 같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03열수분출공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는 황화수소가 대부분이다.


광합성 대신 화학합성
 

열수분출공 주위에 사는 심해 새우류(사진)는 황화박테리아를 먹고 산다.


높이가 수십m에 이르는 이 거대한 굴뚝을 심해 열수분출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열수분출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해저지각의 틈새로 바닷물이 스며들면 마그마와 닿으면서 덥혀지고 구리, 철, 아연, 금, 은 같은 금속성분이 녹아든다.

뜨거워진 바닷물은 다시 솟아오르는데, 이때 수온이 350℃나 된다. 뜨거운 물이 주변의 찬물과 만나면서 물속에 녹아있던 물질이 침전되며 열수분출공이 만들어진다.

대기압에서 물은 100℃가 되면 끓어 수증기로 변하지만,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는 끓는점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350℃라는 높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심해의 놀이터 마냥 다양한 생명체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 열수분출공을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깊은 바닷속은 수온이 1~2℃에 머물 정도로 춥다. 또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지므로 2700m 깊이에서 수압은 270기압까지 올라간다. 이는 지상에서 느끼는 기압의 270배나 되는 무게로 손바닥에 무게 3톤인 코끼리 9마리를 올려놓은 것과 맞먹는다.

그러나 열수분출공 주변에는 다른 심해환경보다 수천배나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그 까닭은 황화박테리아에 있다. 열수분출공 주변에 사는 황화박테리아는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수소를 산화시킬 때 나오는 에너지로 탄수화물을 만든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화학합성으로 열수분출공의 생태계를 부양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현재까지 전세계 바다에서 약 300개 이상의 열수분출공을 탐사했다. 그 결과 광합성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생태계가 바닷속에 숨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02심해 새우류가 열수분출공 주변을 기어다니고 있다. 03심해 게가 관벌레의 붉은색 아가미를 뜯어먹고 있다.


관벌레와 황화박테리아의 공생전략
 

태평양에서 발견된 열수분출공 주변을 가득 메운 거대한 관벌레가 마치 장미정원 같다. 붉게 보이는 이유는 혈액 속에 헤모글로빈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동물은 관벌레다. 관벌레는 단백질의 일종인 키틴 성분의 단단한 관 속에 사는데, 붉은색 아가미를 밖으로 내밀고 있는 특이한 동물이다. 이 생물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관벌레에 소화기관이 없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했다.

비밀은 관벌레와 황화박테리아의 끈끈한 공생에 있었다. 관벌레는 몸안에 살고 있는 황화박테리아로부터 영양분을 얻기 때문에 소화기관이 없어도 살 수 있다. 몸 속에 살고 있는 황화박테리아에게 황화수소를 공급해주는 대신 탄수화물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1835년 다윈이 갈라파고스제도를 여행하며 생물의 진화에 대한 관념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던 것처럼 약 140년 뒤 열수분출공이 발견되면서 갈라파고스제도는 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빛이 없는 암흑세계이자 무쇠로 만든 공이라도 납작해질 만큼 높은 수압이 내리누르는 곳. 황화수소 같은 독성물질로 가득 찬 심해의 열수분출공에 태양복사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은 생물학의 역사를 다시 쓰고도 남음직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과학자들은 열수분출공의 환경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처음 태어났을 때와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열수분출공 주변의 생태계를 연구하면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밀을 풀 수 있을 전망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지금도 심해를 뒤지며 열수분출공을 탐사하고 있다.


02심해 문어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아기 코끼리 덤보’를 닮은 지느러미를 지녀서 이름도‘덤보’라고 붙였다. 03열수분출공 촬영을 마친 잠수정 앨빈을 모선 아틀란티스로 끌어올리고 있다. 04잠수정이 조명을 비추며 열수분출공 주변에 사는 심해 생물을 촬영하고 있다.

200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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