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5.....

래빗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래빗은 아내인 로즈에게조차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 부부의 금슬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여튼 로즈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뽑았으니 내가 대통령 서재를 방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감 박사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지난번처럼 내 집 앞에서 래빗이 보낸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었기에 며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래빗이 그린 왕밤골 펜화를 돌려주지 않은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건 감 박사 편에 보내도 된다.

경상남도 마산으로 갔다. 아버지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이고 내가 태어난 도시다. 태어나서 3년 만에 서울로 올라왔기에 남해안 항구도시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일주일 정도 머물 곳을 찾다 보니 마산이란 두 글자가 맴돌았다. 제주도나 설악산, 경주 같은 관광지는 번잡해서 싫었다.

조깅을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났을 때보다 체중이 8kg이나 늘었다. 실연의 상처를 식탐으로 푼 결과다. 무릎이 아리고 엉덩이가 내려앉는 느낌이었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흘째는 몸살 때문에 조깅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닷새째는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한 시간을 완주했다. 이상하게도 몸무게는 줄지 않았지만 엿새째부터는 무릎이 아프지도 않았고 엉덩이가 내려앉지도 않았다.

마산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조깅을 마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상경할 예정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까지 등을 밀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달리며 마산에서 정리한 내 미래를 짚어봤다.

하나. 남자에 집착하지 말 것.
둘. 외국 유학 준비를 시작할 것.
셋. 그림을 다시 그릴 것.

내 인생에서 결혼이란 단어를 잠시 접어 두고, 외국에 가서 미술 치료를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이 셋을 이루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작품을 완성한다고 해도 당장 그걸 사줄 이도 없고 또 외국 유학을 가려면 학비가 필요했다.

아버지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더라면! 가업을 잇지 않은 괘씸한 딸이지만 아버지의 유언장에는 엄청난 유산이 내 이름 아래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모두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보랏빛 운동복 차림의 여인이 곁에 붙었다.

“참 멋지네요.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라고 노래한 이유를 알겠어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무릎에 힘이 풀렸다.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흘끔 얼굴을 확인했다. 로즈였다.

왜 남해의 작은 도시까지 왔을까. 새벽부터 운동복을 입고 나를 따라 뛰는 이유는?

그녀의 갑작스런 출현이 납득되지 않았다. 더욱 힘껏 달렸다. 대통령과 잤느냐는 모욕적인 물음이 또렷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즈도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숨을 헉헉대며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내뻗었고 로즈는 가볍게 리듬을 탔다. 새벽마다 조깅과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한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달리기로 그녀를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속도를 늦추자 로즈의 미소가 또렷하게 보였다.

“미행이 취미신가 보죠?”
“오해해서 미안해요.”
“오해라고요?”

짧게 반문한 후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갈매기 두 마리가 나란히 돝섬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이가 아픈 줄…… 몰랐어요.”
걸음을 멈추고 로즈를 몰아세웠다.

“몰랐다고요? 금슬 좋은 부부 아니었던가요? 오랜 세월 함께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정치판에 뛰어든 후에는 수행비서를 맡았으며 지금도 중요한 사안은 꼭 먼저 의논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로즈의 안색이 순간 굳었다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대통령의 아내로 산다는 게 뭔지 은해 씨는 잘 모를 거예요.

10분 단위로 하루하루를 살아본 적 혹시 있나요?” 10분 단위? 숨이 막혀 살 수 없겠지.

“그이는 그이대로 또 저는 저대로 밀려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답니다. 물론 함께 여러 행사에도 참석하고 외국 순방 때는 비행기 옆자리에 내내 붙어 있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도 사사로운 이야긴 거의 못한답니다. 나랏일이란 게 그래요.”

“나랏일을 아무리 말씀하셔도 전 그게 뭔지 몰라요. 남편이 픽 병에 걸려 미술치료사까지 구할 정도인데도 아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러니까 여사님 말씀은 대통령의 병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대통령의 서재를 오가는 젊은 여자를 보고 바람이 난 줄 알았다…… 이런 건가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난데, 로즈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그날의 치욕을 넘어가려는 것이다. 이럴 순 없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맞아요. 딱 그랬어요. 물론 난 그이를 믿지만 그이는 만인의 연인, 만인의 대통령이니까요. 남성 유권자보다 여성 유권자의 표가 20%나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냉소와 깔끔함이 묘하게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 보도까지 나왔죠. 그이에게 스캔들은 재선으로 가는 길에 치명타에요. 더군다나 밤에 그이의 서재, 그것도 비밀 놀이터에서 젊은 여자와 단둘이 있는데 어느 아내가 의심을 안 하겠어요.”

“비밀 놀이터가 있는 줄은 아시면서 픽 병은 모르셨네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대통령과 스캔들이라도 난다면 나 태은해를 부셔서 마셔버릴 여자였다.

“오해를 사과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닐 테고…….”

계속 로즈를 비꼬았다.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아쉬운 쪽에서 먼저 패를 까는 것이 순서다.

“그이…… 미술치료를 다시 맡아줘요. 일주일에 한 번씩이 아니라 아예 들어와서 지냈으면 해요.”

“들어와서 지내라고요? 쫓아낼 땐 언제고!” 웃기지도 않았다.

“왜 나죠? 날 싫어하잖아요?”

로즈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받아치며 답했다.

“맞아요. 은해 씨가 날 싫어하듯이! 미술치료사가 꼭 필요하다면 은해 씨가 아닌 다른 분을 모시고 싶었어요. 헌데 그이가 한사코 은해 씨여야 한다네요. 은해 씨가 아니면 미술치료는 물론이고 다른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는 바람에…… 도와줘요. 이건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나아가서 국민 전체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로즈는 거창하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대통령의 뜻은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 없네요. 전 아직 미술치료에 대해 공부할 것도 많고…… 하여튼 안 되겠어요. 그럼 이만.” 나는 다시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경쾌하게!
 

여인의 초상 제4화



16.....

새벽반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회화와 CNN 청취 강좌를 연이어 들었다. 공부는 다 때가 있다고 했던가. 중학생 수준의 초보적인 단어도 가물가물 귓가나 입가에 맴돌다가 사라졌다. 4시 30분에 일어나서 초등학교 운동장을 열 바퀴 돈 후 학원에 간 탓에 처음 며칠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 노인들 곁에서 옛 시절에 대한 회고만 듣다가 이제 스물을 갓 넘긴 대학생들 틈에 끼어 앉아 있자니 저절로 생기가 돌았다. 영어학원이 끝나면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배가 출출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 위주였지만 서너 시간 집중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점심을 먹은 후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그리고 저녁은 건너뛰었고 해가 지면 다시 달리기를 했다. 하루에 두 번씩 달린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나흘에 1kg씩 쑥쑥 살이 빠지는 걸 보는 재미에 이를 악물고 뛰었다. 밤 10시, 침대에 누우면 10분 이내에 잠들었다. 길몽도 악몽도 찾아들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그날은 새벽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영어학원을 나오다가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를 봤다. 대한민국 대통령 최형채가 새벽에 전방 부대를 돌아봤다는 평범한 소식이었다. 분단된 나라,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나라의 대통령이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국방 의식을 국민들에게 고취하기 위해 전방을 돌아보는 일은 연례행사였다. 전투복까지 입은 래빗은 이등병의 어깨를 아버지처럼 토닥거렸고 또 망원경을 통해 북녘땅을 살펴보기도 했다. 내 시선은 그의 거무스름한 턱에 머물렀다. 이 일이 래빗의 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전속 코디네이터가 있겠지만 산적한 업무를 해결하느라 며칠 밤을 설쳤는지도 모른다. 또 전방 장병들의 검게 탄 얼굴과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면도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턱을 보자마자, 픽 병의 진행을 크게 3단계로 나눌 때 1단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을 떠올렸다.

-환자는 개인위생에 소홀해진다!

가령 머리를 감지 않거나 같은 옷을 며칠째 계속 입거나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이다.

점심엔 가까운 백화점에서 까페라떼에 참치 샌드위치를 곁들여 먹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밀을 쓴다는 광고전단을 받고 찾아간 가게였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로 가게가 무척 붐볐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은 곳이 하필이면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하는 자리였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일어서려다가 포털사이트에서 깜빡이는 동영상뉴스 타이틀에 눈이 갔다.

‘묘기 대통령’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했다. 군복을 입은 래빗이 다시 나왔다. 전방 부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인 듯했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볼펜을 쥔 래빗의 오른손을 잡는다. 래빗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일어섰을 때, 또 다시 앉아서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을 취할 때도 계속 볼펜을 돌렸다. 그 솜씨는 정말 묘기였다. 볼펜은 다섯 손가락과 손등, 손바닥을 자유롭게 오가며 춤을 추었다. 손을 내리거나 머리 위로 들거나 좌우로 흔들 때도 볼펜은 떨어지지 않고 자석처럼 손에 붙어 있었다.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와 현란한 볼펜 묘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발을 떤다거나 펜을 돌리는 행동은 초조한 심리를 반영한다. 그 초조함이 어디서 왔는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통령이라는 지위 자체가 어쩌면 불안과 초조로 가득한 자리일 테니까. 또한 그런 초조와 불안은 픽 병 1단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밤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꾸 래빗이 돌리는 볼펜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는 그고 나는 나라는 결심을 굳혔지만, 지금 그의 처지가 위태위태 돌아가는 볼펜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은 악화될 것이고 그 병을 치료할 약은 전무하다. 수염을 깎지 않았다거나 볼펜을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더 큰 일들이 닥칠 것이다. 그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그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픽 병 환자임이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무척 낙담하게 만들리라. 아내인 로즈마저 그를 가까이에서 보살필 수 없다면 외로움이 더하겠지.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1시가 돼도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휴대전화가 즈즈즈즈 떨리는 순간,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밤에 나를 찾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천천히 휴대전화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여기가 어디야? 모르겠어.” 자문자답이다. 아, 그 목소리는 분명히 대통령 최형채였다. “여보세요. 래빗?” “아, 티! 어서 와서 날 구해주오.” 다급한 목소리다. “거기가 어딘데요? 서재 근천가요?” “모르겠소.” “가까이 보이는 것들을 말씀하세요.” “나무가 있소. 풀도 있고. 밤하늘엔 별도 있소. 헌데 여기가 어딘지는 정말 생각이 나질 않소. 아,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야. 여기가 어디지? 집에 가야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발신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급히 감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생이란 때론 그렇게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할까.
 

해안도로를 달리는 여인


17.....

래빗은 서재 뒤 야트막한 언덕 솔숲에서 길을 잃었다.

감 박사의 연락을 받고 경호원들이 래빗을 발견한 시각은 대통령이 내게 전화를 걸었던 밤 11시부터 정확히 55분이 흐른 뒤였다. 래빗은 허리가 굽은 소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진흙 인형 만들기에 열중한 듯하다. 소나무에 너무 바짝 기대앉아서 회색 잠옷 등에는 온통 송진이 찐득거렸다.

물기가 많은 흙을 뭉쳐 머리와 몸통을 만들었다. 나뭇가지로 팔과 다리를 각각 끼우고 은행잎을 따서 웃옷과 치마도 붙였다. 눈길을 끈 부분은 머리다. 수백개의 솔잎을 촘촘히 머리 전체에 박은 것이다. 까지 않은 밤송이 같기도 하고 성난 고슴도치 같기도 했다.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었다.

훗날 물어보니, 제목이 ‘블랙홀’이라고 했다. 머리에 박힌 무수한 솔잎을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머릿속으로 빨려들어 간다오. 문제들이 쌓인다고 머리가 더 커진다거나 무거워지는 법은 없소. 그게 바로 블랙홀의 묘미지.” 그러니까 이 솔잎들은 지금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래빗도 자신의 뇌가 블랙홀 같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히는 것이 대통령의 삶이다. 너무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자신의 머리가 병들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이 아무리 많은 것을 빨아들여도 끄떡없는 블랙홀로 이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길을 잃고 두려움에 떨며 내게 전화한 래빗과 소나무에 등을 기댄 채 쪼그리고 앉아 집중해서 블랙홀을 만든 래빗은 무척 다르지만 그 둘은 하나다. 래빗은 둘 다를 낯설어하겠지만, 나는 그에게 이 두 모습까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만들기를 그림을 매개로 권유할 것이다.

솔직히 가끔 미술치료를 하다 보면 환자의 복잡한 삶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음이 통할수록 나는 환자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물론 미술치료에 관한 여러 저서에서는 이런 감정이입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치료사는 어디까지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객관적인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수도 없이 읽었고 또 환자와 마주 앉을 때마다 되풀이해서 외지만 마음이 가는 것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든 살을 넘긴 할머니가 갑자기 스무 살로 돌아가서 애교를 부리고 맑은 웃음을 짓는다고 상상해보라. 이미 그 시절 사랑해 결혼한 남편은 죽고 없는데, 그의 영원한 부재조차 알지 못하고 편지를 띄우는 쭈글쭈글한 손을 어찌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있으리.

왜 그 밤 래빗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래빗에게 닥친 그 밤의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픽 병이 2단계로 나아가면 기억력 장애가 발생하고 길을 잃거나 최근 대화 내용을 잊기 시작하니까. 그래도 미술치료를 중단하고 유학을 떠난다는 목표를 바꾼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비유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있겠다. 래빗이란 남자의 전두엽이 일으킨 작은 혼돈이 갑자기 우주의 혼란으로 내게 밀어닥쳤다고. 즉 그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인식된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집을 찾아갈 때까지 나도 거리에 나와 있을 수밖에. 맙소사!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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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어수현
  • 김탁환 교수 · 소설가
  • 진행

    최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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