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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의 생리학

파란색 초콜릿은 맛이 없다

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바쁜 아침 시간에 쫓겨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 몇몇 연구에서 따르면 아침 식사를 거를 경우 점심 무렵에는 허기가 져서 일과 학습의 능률이 떨어지고 점심과 저녁 식사를 허겁지겁 많이 먹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침식사를 하는 인구 집단에서 아침을 거르는 인구집단보다 오히려 비만이 적은 것으로 보고됐다.

비교적 궁핍했던 한국 근현대 사회에서는 복부 비만이 부와 권위, 그리고 인격(?)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높이는 건강 위험인자로 여겨진다. 그래서 학교에서 비만 아동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초콜릿이라고 모두 맛있게 보이지 않는다.


'타고난' 입맛

몸이 비만인 사람이 자꾸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배가 고파서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음식을 먹어 얻은 열량이 신체가 요구하는 열량에 비해 적다면 허기가 져서 당연히 식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배불리 먹어 포만감이 느껴진다 해도 '타고난' 입맛 때문에 음식을 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몸이 아무리 허기져도 입맛이 선천적으로 없는 사람은 음식을 좀처럼 입에 대지 않는다. 계절이 변할 때나 몸에 질병이 생기면 입맛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요인에 비해 입맛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몸에서 먹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는 곳은 어디일까. 식욕을 관장하는 신경 중추는 대뇌의 시상하부에 존재한다. 동물과 시상하부가 손상된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시상하부에 식욕을 느끼게 하는 부위와 포만감을 일으키는 부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식욕중추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배고픔을 느끼며 포만중추를 자극하면 반대로 포만감을 느껴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식욕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크게 세가지 요인이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음식이 들어가 위가 늘어나면 위벽에 분포한 신경으로부터 자극이 시상하부에 전달된다. 둘째로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혈중의 포도당 농도를 비롯한 여러 성분의 농도가 직접 시상하부를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섭취할 때 위장관으로부터 분비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들이 직·간접으로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낸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식욕을 돋구기 위해 식사 전에 전채를 먼저 먹는 경우가 있는데, 위에 음식이 들어올 때 십이지장에서 분비되는 콜리시스토키닌과 같은 물질이 식욕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 여러가지 질병도 식욕에 영향을 미친다. 흔히 몸에 병이 있으면 식욕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당뇨병이나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같은 질환에 걸려 몸에서 영양분이 대책없이 빠져나가거나 대사작용이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지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식욕이 몹시 증진된다.

반대로 간질환이나 악성 종양의 경우 식욕을 떨어뜨린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앓으면 식욕이 비정상적으로 증진될 수도, 저하될 수도 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도 불규칙적으로 식욕에 변화를 가져온다.

식욕이 음식을 들고 싶은 욕구라면 입맛은 구체적인 음식에 대한 사람의 느낌이다. 입맛에 관계되는 생리적 요인은 사람이 감지하는 냄새, 시각적 자극, 그리고 미각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음식 자체의 온도나 질감과 같은 물리적 성질이 어떠냐에 따라 사람의 입맛은 살아나거나 떨어진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쓴'정도가 다르다


2백가지의 맛을 구별

좋은 음식 냄새는 식욕과 입맛을 돋군다. 부비동염(축농증)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후각 장애가 있는 경우 입맛이 반감된다.

시각적 자극 또한 입맛에 매우 중요하다.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알알이 초콜릿을 살펴보자.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녹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런데 중요한 색 중에 빠진 색이 있다. 무슨 색일까? 여러분은 파란 장미를 본 적이 있는가? 파란 장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의 재료 중에 자연적으로 파란색을 띤 것은 없다. 파란색은 대체로 입맛을 떨어뜨린다고 알려졌다.

입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각이다. 사람의 혀와 구강 점막, 후두에는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인 미뢰가 있다. 미뢰가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혀의 유두이다. 갓난 아기는 보통 수백개의 미뢰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미뢰의 숫자는 점차 늘어난다. 성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2천-5천개의 미뢰가 있지만 개인차가 매우 크다. 하나의 미뢰는 약 50-1백30개의 세포로 구성되고, 이 세포들 중 많은 수가 '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 역할을 한다.

미뢰의 표면에는 아주 미세한 융모들이 돋아 있다. 각각의 융모에는 미공이라 불리는 작은 구멍이 있어 이를 통해 맛을 느끼게 하는 이온이나 분자들이 들어와 세포막에 있는 이온 채널을 통과한다. 큰 분자의 경우 세포 표면의 특수한 수용체에 결합해 세포 안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음식의 맛은 일반적으로 단 맛, 쓴 맛, 짠 맛, 신 맛의 네가지로 분류된다. 매운 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에 속한다. 대체로 사람은 최대 2백가지의 복합적인 맛을 구별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에 답해보자. 수입 과일인 자몽의 맛은 쓴가? 아니면 그저 달달한가? 어떤 사람은 자몽의 맛이 매우 써서 사람들이 왜 이런 과일을 먹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에는 사카린을 맛보자. 어떤 사람은 사카린이 설탕처럼 달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쓰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마다 맛의 느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1931년 나일론을 발명한 회사로 유명한 듀폰사의 한 실험실에서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연구원 중 한사람인 아서 폭스 박사가 페닐치오카바마이드(PTC)란 물질을 합성하던 중 이 물질이 공기 중으로 유출된 것이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그런데 이때 우연히 실험실에 들어온 동료가 방 안의 공기에서 매우 쓴 맛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폭스 박사 자신은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중국음식에서는 기름에 볶고 향신료를 섞어 채소류의 쓴맛을 둔화시킨다


사람마다 미뢰수 큰 차이

이 사실에 흥미를 느낀 폭스 박사는 듀폰사의 사원들을 모아서 정제된 PTC를 맛보게 했다. 흥미롭게도 25%의 사람이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쓴 맛을 느꼈다. 폭스 박사가 이 사실을 학회에 보고하자 당시 유전학자와 인류학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 쓴 맛을 느끼지 못하는 특성은 유전적으로 열성 인자에 해당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후 한동안 PTC 얘기는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가 1970년대 초반 PTC의 쓴 맛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서 일상 식생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현재는 PTC 대신 PROP(6-n-prophyl-thiouracil)이란 물질을 써서 연구하고 있다.
연구 결과 실험대상자 중 4분의 1의 사람들은 PROP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고 느꼈다(무미각자). 이에 비해 약 절반의 사람은 쓰다고 느끼고(중간 미각자), 나머지 4분의 1은 PROP을 맛보는 순간 너무나 써서 펄쩍 뛰었다. 이 초미각자들은 아주 농도가 옅은 시험물질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무미각자들은 두개의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또 중간 미각자는 각각 하나의 열성과 우성 유전자를, 초미각자는 두개의 우성 유전자를 가진다. 따라서 중간미각자들끼리 결혼하면 자녀는 무미각자, 중간 미각자, 그리고 초미각자 어느 경우든 다 가능하다.

유전자의 차이는 미뢰수의 차이를 낳았다. 특수한 염색법으로 혀를 조사한 결과 1cm² 당 초미각자의 혀에는 1천1백개의 미뢰가 있는데 반해 무미각자의 혀에는 평균 11개 정도의 미뢰만 발견됐다.

그래서 무미각자의 혀를 염색할 경우 혀 위에 파란 점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초미각자의 혀를 염색하면 온통 짙푸른 얼룩으로 덮인다. 미뢰는 통증과 온도, 촉감에 대한 정보도 뇌로 보내주므로 맛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동시에 혀의 통각이나 촉감도 매우 발달돼 있다.

초미각자들은 대부분의 약간 단 음식을 너무 달다고 느낀다. 또 채소류에서 쓴 맛을 심하게 느껴 야채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미각자가 많지만 주된 음식물이 채소류라는 점이다.

그래서 채소에서 쓴 맛을 없애거나 약화시키게끔 조리하는 방법이 개발돼 왔다. 예를 들어 중국 음식을 보면 야채를 익히지 않고 요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이때 기름에 볶고 여러가지 향신료를 섞어 쓴 맛을 둔화시킨다.
 

사람에 따라 입맛은 가지가지다.


미각과 편식의 관계

미각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간 미각자들은 대부분의 음식을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게 느끼므로 편식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초미각자는 아무래도 입에 맞는 음식만을 가려 먹을 가능성이 크므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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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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