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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과학적 사실을 많이 주입시키는 것보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기르는 것.

현실 과학교육에 문제를 느낀 젊은 중고교 과학교사들이 모여 기존교과서 내용 중 일부를 대신할 대안적 교과서를 만들었다. 앞의 글은 대안적 교과서, '물질의 구조'앞에 부치는 글 중 첫부분.

이 새로운 교과서(?)를 탄생시킨 주인공들은 현종오(인헌고) 임청산(고척중) 최동석(경동고) 서인호(여의도중) 박영주(서울기계공고) 이순녀(남서울상고) 강경원(영림중) 교사이다. 이들은 86년 9월부터 수업정보교환을 목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가, 현행 과학수업에 어려움이 많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풀기 위한 6개월 동안의 작업 끝에 조그만 성과를 이끌어 낸 것.

현종오교사는 '학생들은 생활주변, 즉 자연을 보다 친밀히 이해할 수 있기보다는 많은 과학적 결과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데 힘겨워하고 있다"고 밝히고 '과학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안되는데, 실제의 수업은 그렇지 못한 데에 이 책을 만들게 된 동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고교 과학수업은 극히 학문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과학이론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을까에만 급급하여 공식화된 이론만 암기시키는데 촛점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실험도 또한 학자들이 밝혀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이지, 학생들의 창조적 사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실험결과는 이미 결정돼 있고 학생들이 그 결과에 맞추는 과정이 실험이므로, 결과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라도 실험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논리를 펴거나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몇년 전부터 탐구학습을 강조해왔지만, 현재의 과학수업은 형식만 탐구이지 탐구과정을 규격화시켜 오히려 학생들의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 책을 만든 교사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과내용과 교수태도에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을 몇가지 지적한다. 교과내용은 너무 많은 양을 집어 넣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흥미있는 소재를 개발해야 하고, 학생들이 도달하는 결과가 비록 과학적 사실에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 올바른 추론의 노력이 보이면 높은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 실험에도 제한을 가하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설계하여 실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실험보고서도 자유로운 자기견해를 쓸 수 있는 항목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실험이 몇개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비누막 실험. '비누막은 얼마나 얇게, 그리고 크게 만들 수 있는가?'하는 실험인데, 물질은 어느 일정 한도의 입자로 분리돼 있는가 아니면 연속되어 있는가. 어느쪽의 결론도 가능하다. 학생들이 실험을 마치고서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일정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답은 훌륭한 답이다.


비느막 실험^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었는가, 아니면 연속되어 있는가, 어느쪽의 결론도 가능한 실험. 문제는 어떤 논리를펴 자기 주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은 창조론, 시험에서는 진화론

교수태도에 있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은 '선생님! 이렇게 생각하는데, 맞아요 틀려요?'식의 객관식 길들이기의 탈피이다. 또한 자기 생각을 발표했다가 손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 교회에 나가면서 창조론을 굳게 믿고 있는 학생이 학교 시험에서는 진화론을 맞다고 쓴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실에서는 '이론'을 주입하고 판정은 '입시'로 받는 구조적인 교육현실의 개편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들 교사들의 주장이다.

"처음 모임을 만들어 수업에 관한 의견교환을 하다가 교과서부터 바꿔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외국의 몇몇 통합 과학교과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쓰이는 STC(Science Technology Society)교과서는 참 혁신적이다. 예를 들어 '물'이라는 단원에서는 일상생활에서의 자원의 중요성, 혈액순환도, 물을 사용할 때의 과학적 방법 등의 일정한 틀이 없이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에너지보존의 법칙도 이론적 부담없이 부각된다."

이런 것은 교과연구를 진행했던 모든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교과서의 구성이 일단 생활주변의 것에서부터 출발, 자연스럽게 이론을 설명하는 형식이라는 것, 예를 주위에서 재미있게 잘 들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학문적 내용은 도표로 응축돼서 간단히 언급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현종오교사는 "그렇다고 그것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우리 현실에 안맞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이 비록 한단원에 불과한 것이고 현실정을 감안하다 보니까 처음 생각하던 내용과는 많이 달라졌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내놓아 부끄럽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 계속 성과있는 교과서를 내놓겠다"고 말하면 "이런한 작업에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면 더욱 값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더붙였다.

일주일에 한두번 저녁 시간에 모여 작업하다 보니까 생각대로 진척도 안되고 능력에도 벅차므로 뜻있는 교사들이 많이 참석해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

앞으로 이 자료는 중학교 과학 2년 3단원 물질의 입자에 대치해서 사용될 수도 있고, 수업의 보조자료로, 특별활동 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다. 서울 고척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합의, 정규 수업 교과서로 활용키로 했다.

노래를 못부르면 음치로 치부하고 그것을 창피하게 알지만, 비가 오는 것을 보고 하느님이 오줌을 싼다고 하면 시인의 자질이 있다고 말하는 현실에서는, 과치(科癡)의 대량생산을 제어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과학교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198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정경택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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