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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검은 연기 대신 푸른 돈 쏟아낸다

일석삼조 신제철공법 파이넥스

2007년 5월 30일 오전 11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건설된 파이넥스(FINEX) 공장에서는 시뻘건 쇳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용광로공법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제철공정인 파이넥스 공법이 세계 최초로 실현된 순간이었다.

제철산업은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전통적인 ‘굴뚝산업’이다. 석탄을 이용해 철광석의 주성분인 철산화물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대략 쇳물 1톤당 약 2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포스코의 경우 연간 약 6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우리나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0%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일본 호주 등에 있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 제철소에서는 용광로 공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제철법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나라도 상용화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역사가 40년 밖에 되지 않은 포스코가 지난 15년 동안 1조3000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자해 용광로가 필요 없는 차세대 친환경 제철공장을 세운 것이다.
 

뜨거운 쇳물을 가공하기 쉬운 형태로 뽑아내는 열연공정, 제철산업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하나다.


100년 만의 새로운 제철공정 ‘파이넥스’

파이넥스 공법이 친환경 제철공장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소결공정과 코크스공정이 없다는데 있다. 기존 용광로 공법에서는 석탄과 철광석을 각각 덩어리 형태의 소결광과 코크스로 만들어 용광로에 넣어야 했다. 그런데 원료를 덩어리로 만드는 공정이 대기에 노출된 채 이뤄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같은 대기오염 물질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파이넥스 공법은 가루 상태의 석탄과 철광석을 그대로 사용한다. 제철과정의 큰 오염물질 배출원 중 하나를 없앤 셈이다. 또 용융로에서 석탄과 철광석이 환원반응을 일으켜 만든 가스로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런 과정으로 파이넥스 공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9% 정도 줄일 수 있다. 쇳물을 1년 동안 150만톤 생산하는 파이넥스 공장 1기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27만톤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산성비의 원인인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각각 94%, 96%나 줄인다.

포스코는 감축한 온실가스 데이터를 상반기에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하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획득할 계획이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팔면 최소 270만달러(24억원) 이상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염물질 줄이는 파이넥스 공법^파이넥스 공법은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덩어리 형태로 만 드는 소결공정과 코크스공정을 없애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였다.

오염된 바다 살리는 철강 부산물
 

갯녹음 현상이 진행된 부분(점선 위)과 제철과정 부산물인 슬래그로 생태계를 복원한 부분(점선 아래).


아무리 품질이 좋은 철광석이라고 하더라도 철광석에 함유된 철의 함량은 60%를 조금 넘는다. 따라서 쇳물을 뽑아내고 나면 원료의 거의 절반 가까운 양이 부산물로 발생한다. 철광석이 1500℃ 이상의 고온에서 마그마처럼 완전히 용융됐다가 냉각되는 과정에서 돌처럼 굳으며 생기는 부산물이 슬래그(slag)다.

슬래그는 발생공정에 따라 쇳물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고로슬래그와 강철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제강슬래그로 나뉜다. 이들 물질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하기 때문에 토목용 골재나 시멘트 원료 같은 건축자재로 활용된다. 하지만 제강슬래그는 품질이 좋지 못해 도로의 하부 바닥재 같은 저급한 자재로 밖에 사용할 수 없어 제철소마다 새로운 용도를 찾고 있었다.

최근 포스코는 해양오염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갯녹음 현상을 막는데 제강슬래그를 활용하고 있다. 갯녹음 현상은 해양이 오염되거나 수온이 올라가면 바닷가 근처 바위에 미역 같은 해조류 대신 하얀색의 석회조류가 달라붙어 백화(白化)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생물인 소라, 성게, 전복까지 영향을 받아 결국 해양 생태계 전체가 황폐화된다.

갯녹음 현상을 막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해조류가 잘 살 수 있도록 서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다. 갯녹음 현상이 나타난 바닷물의 성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식물 플랑크톤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다른 원소에 비해 철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철분을 적절히 공급해주면 해조류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제강슬래그는 철 성분을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철 성분이 조금씩 빠져나오는 특성이 있어서 갯녹음 현상이 나타난 바다에 철 성분을 공급하는데 안성맞춤이다. 현재 강릉, 주문진, 남해 등 10여 곳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으며 일본은 이를 홋카이도 근처 바다에 활용하고 있다.

또 제강슬래그는 제철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창고’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제강슬래그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어 슬래그를 탄산화시키면 해조류가 광합성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2004년도 연구에 따르면 제강슬래그 1톤에 이산화탄소 약 0.4톤을 저장할 수 있다.

포스코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제강슬래그 100만톤(포스코 전체 발생량의 약 20%)으로는 오염된 해양을 복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만톤 줄여 최소 400만달러(약 360억원)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

2005년 2월 16일부터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 물질은 새로운 무역장벽이 됐다.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량 삭감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인 법.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고 개척할 수 있다. 고품질의 철강을 더 싼 가격에 생산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파이넥스 공법은 제철산업의 ‘전쟁터’에서 새로운 ‘무기’가 됐다.

이제 ‘검은 연기’를 뿜어내던 제철공장의 ‘굴뚝’이 ‘푸른 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장 전경. 15년 연구 개발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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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희동 환경에너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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