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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와 사랑에 빠진 탄소나노튜브의 대부 임지순

조물주가 감춰놓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와 조화를 하나씩 밝혀내는 기쁨을 간직한임지순 교수. 그가 풀어내는 자신의 모습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물리학에 대한 예찬론을 들어본다.

“♬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 이렇게 신나는 ‘울릉도 트위스트’를 열창하는 사람은 누굴까.

서울대 수석입학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20대에 고체의 전자구조를 양자역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컴퓨터로 계산하는 길을 개척한 박사학위 논문을 냈으며, 1998년 1월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묵으면 도핑이란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 물리학자. 바로 늘 수줍은 표정으로 웃음짓는 임지순 교수(50)가 그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임지순 교수는 조용하게만 비춰지지만 사실은 노래방에서 썰렁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열혈남아다.
 

이론 물리학자인 임지순 교수는 물리 문제를 해결한 후에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해석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도 창의력 부족해요”

물리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열정적인 모습은 다시 살아난다. “물리학은 참 재미있어요. 과학자들은 현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자기가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한단계씩 문제를 해결해 갈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면 허탈할 정도니까요.” 덧붙여 물리학에서 뭔가 문제를 해결하면 아주 복잡한 현상들이 1천 조각 퍼즐을 맞춰놓은 듯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단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든 것이 예뻐보인다고 하더니 임 교수야말로 물리와 사랑에 빠진 것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하지만 과학자가 꿈이었다는 임교수. “고등학교 때 대학의 진로를 결정할 무렵에 내 성격을 보니까 물리같이 뭔가를 따져 확실한 설명이 되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라며 적성에 맞는 것을 택했을 뿐이란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신 것이 다행인 것 같아요”라며 웃는다.하지만 그에게도 갈등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때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로에 대해 고심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본인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은 자연과학인 물리학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지금까지 물리학과 함께 살아오고 있다.

사실 그에게는 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같은 존재라고 했더니 “하하하, 사실 나도 나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데…”라며 미국 버클리대로 유학갔을 때를 회고했다. “같이 공부하던 미국인 친구들이 정말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거죠”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약점보다 강점이 무얼까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창의력은 좀 부족해도 분석적이고 종합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아 주어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과학자이건 아니건 간에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흥미, 호기심, 그리고 끈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노테크놀러지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을 개발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게르트 비니히 박사와 하인라히 로러 박사가 별 성과도 나타나지 않는 연구에 매달려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가 큰 업적을 낸 본보기를 들었다.

집중하면 무한차원의 세계로 빠져

임지순 교수는 머릿속에서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때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나름대로 설명의 근거를 찾아낸 것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고 할만큼 ‘생각쟁이’로 살아온 것은 꽤 오래된 습관이다. 그리고 한번 집중하면 무한 차원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지금도 뭔가 생각하고 있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란다.

그래서일까.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은 물론 강의 준비, 그리고 논문을 쓰는 것도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구를 하는데는 이렇게 혼자 생각하면서 길러진 집중력이 도움이 됐다고 귀띔한다. “혼자 생각하다보면 많은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며 “요즘 학생들은 생각을 너무 짧게 하는 것 같아요”라고 질책한다. 제자들이 임교수의 직관적인 아이디어가 놀랍다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길러진 노력의 결과란 말이다.

그래서인지 임교수는 뭔가 원리를 따지기 좋아하고 생각을 깊이 하는 학생들은 수학을 못해도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흔히들 물리학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수학을 드는데, 이제는 컴퓨터가 수학적인 문제를 많이 해결해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의 말을 남긴다. 그리고 좋아하고 재미가 있으면 선택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인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초심만 잃지 않으면 반드시 성취감을 느끼며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리와 사랑에 빠진 탄소나노튜브의 대부 임지순


탄소나노튜브 디스플레이 실용화의 리더

흔히 그는 탄소나노튜브의 대부로 불린다. 그런 임교수는 “나노테크놀러지는 신기술이므로 실용화가 만만치 않지만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2003년경에 결판이 날 거예요”라며 싱글벙글이다. 또 “탄소나노튜브는 약간의 전압을 가해도 안정적으로 전자가 방출돼 브라운관 같은 전자총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 모양이 전자총이 되는데 딱 좋은 형태예요. 화면 뒤에 있는 수십억개의 탄소나노튜브가 전자총이 된다는 말이죠”라고 설명한다. 도체의 모습을 띠던 탄소나노튜브가 다발로 있을 때는 반도체로 되고, 십자 모양으로 배열해서는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이제는 디스플레이의 전자총으로까지 쓰이니 그에게 탄소나노튜브는 참으로 신기한 요술지팡이인 셈이다.

이렇게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디스플레이(전계방출 디스플레이, Field Emission Display, FED)는 소비전력과 제작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화질도 기존의 브라운관 이상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FED 연구에 현재 일본의 소니와 캐논, 도시바, 그리고 임교수가 이론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종합기술원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삼성쪽이 승산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론적인 연구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그의 큰 즐거움인 모양이다. 디스플레이 실용화 이야기에 목소리가 커지니 말이다.
 

미국 유학시절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지도교수였 던 마빈코헨 교수와 국제물리학회에서 함께 한 모습.


작은 세계 큰 숙제 단백질 구조 밝힌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작은 세계 속의 큰 숙제를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생체 분자의 구조를 밝히고 싶은 희망이 그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밝히고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함으로써 생체분자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10만종 이상 되는 단백질 중에 구조가 알려진 것은 수천종 밖에 안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자인 그가 생물학에 관심을 둔다는 얘기일까. “생체 분자에 존재하는 전자들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단백질의 구조는 물론 기능까지도 밝힐 수 있어요. 단백질 분자 내에 존재하는 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파악함으로써 단백질의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생물학도 깊이 들어가면 원자와 분자로 이해해야 하고 이런 경우 대상이 생물로만 바뀔 뿐 물리학적인 지식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물주가 깊숙이 숨겨둔 생명의 시나리오를 해독하려는 물리학자 임지순 교수의 호기심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자못 기대가 크다.

내년 7월이면 나노테크놀러지에 관심있는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제4회 국제 탄소나노튜브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 생각만 하면 임지순 교수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흐른다. “세계의 연구자들이 우리가 무얼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죠. 그리고 근래에는 공동 연구 제의도 상당히 많아졌어요.” 기대가 큰 만큼 어깨가 무겁지만 대~한민국 연구자로서의 보람도 큰 까닭일 것이다.

임지순 교수가 걸어온 길

1951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물리학 석사
1980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물리학 박사
1980년-1982년 MIT 박사후 연구원
1982년-1984년 AT&T 벨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1984년-1986년 벨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
1986년-현재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1991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최우수논문상 수상
1995년 제5회 한국과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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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만홍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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