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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연구하며 자연의 신비 캔다


고려대 명예 교수 김창환
 

어렸을 때 곧잘 곤충과 벗하며 놀았다. 오늘날같이 훌륭한 장난감이 없었고 더욱이 농촌에서 자라다 보니 곤충이 장난감을 대신해 주었다. 잠자리 꼬리에 실을 매어 그 잠자리가 나는대로 따라다녔다. 또 자작(自作)한 매미채로 매미를 잡아 가슴 등마루에 튀어난 융기에 바늘로 실을 꿰서 나무에 매 놓아 울게 했다. 늦여름에는 두꺼운 판지와 성냥개비로 벌레상자를 만들어 콩밭에서 잡아온 여치나 베짱이를 그 속에 가두고 오이껍질 등으로 수분을 갈아주며 추녀끝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면 베짱이와 여치는 잘 울어 주었다.

소학교 때는 학교길에 강가 모래사장에서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지옥이 숨어 있는 작은 모래웅덩이를 파헤쳐 그 속에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 모래 위에 놓고 굴을 파는 모습을 보곤 했다. 이때 그 웅덩이에 개미를 빠뜨린 다음 개미가 밖으로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이처럼 어릴 때 곤충을 벗삼아 잘 놀았지만 장차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것이 타의반 자의반으로 오늘날 곤충학자가 되고 말았다.

8·15광복을 맞아 공부를 더하기 위해 임업시험장을 찾았을 때다. 초대 시험장장(試驗場長)이신 현신규박사께서 우리나라에는 해충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맡아달라며 부탁하시기에 뜻하지 않게 곤충과 씨름하게 됐다.

당시는 삼림해충방제제가 귀하고 또 산림에 직접 농약을 쓸 수 없어서 기생봉(벌)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선 우리나라에 있는 기생봉중에서도 특히 맵시벌을 대상으로 그 종류를 조사하게 됐다. 자연히 그 밖의 벌종류도 취급하게 됐다.

그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하고 돌아와서는 곤충의 애벌레가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게 됐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형태발생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곤충연구를 통해 지금도 자연의 신비를 캐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며 지낸다.


1959년 유학중이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동물학과 강의실 옥상에서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왼쪽이 필자, 중앙은 리스(Lees)박사, 오른쪽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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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창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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