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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마술, 서커스 퀴담

과학의 뼈대에 예술의 살을 입히다


중력의 마술, 서커스 퀴담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꼬마 여자아이가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어머니는 라디오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우산을 쓴 채 목이 없는 이방인 ‘퀴담’이 등장해 파란 모자를 두고 간다. 꼬마 여자아이는 고민 끝에 모자를 쓰는데, 그 순간 무대 위의 모든 것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멀리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환상적인 서커스가 펼쳐진다.

금속으로 된 거대한 바퀴에 들어가 곧이어 쉴 새 없이 회전하며 관객의 혼을 빼놓는 ‘파란 남자’. 빨간 천에 몸을 의지한 채 공중에 매달려 때로는 관능적으로, 때로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성숙한 여인. 중국풍 의상을 입고 자유자재로 팽이를 갖고 노는 네 명의 꼬마들. 퀴담이 등장한 뒤로 파란 모자를 쓴 여자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고난도 회전연기의 비밀


독일에서 운동기구로 사용된 거대한 바퀴. 바퀴 속에서 연기자가 펼치는 다양한 묘기에 관객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바퀴는 지면에 멈추기 직전까지 빠르게 진동하는데 이는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서커스 퀴담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공연은 ‘독일식 바퀴’. 온 몸을 파란색으로 칠한 남자는 바퀴 안에 들어가 구르고 회전하며 격렬하게 움직인다. 관객들이 열광하는 장면은 바퀴가 돌다가 쓰러지기 직전 빠른 속도로 회전하듯 진동하는 장면이다.

관객 모두 연기자의 고난이도 연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회전하듯 진동하는 동작은 의외로 다른 동작보다 연기하기 더 쉽다. 동전을 회전시켜 보자. 회전하는 동전은 완전히 쓰러져 멈추기 직전에 가장 빠르게 도는 듯 높은 진동수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동전을 위에서 보면 실제로 회전수가 많아지지는 않는다.

선 채로 돌아가는 동전과 정지하기 직전의 동전을 비교해보면 서 있는 동전의 무게중심이 높다. 상대적으로 위치에너지가 크다는 뜻이다. 동전이 정지하기 직전에는 무게중심이 낮아져 높이의 차이만큼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동전이 지면에 가까울수록 진동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운동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독일식 바퀴에 있던 연기자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다만 진동을 멈추지 않기 위해 등, 허리, 엉덩이를 들어 무게중심을 높였을 뿐이다.

추락하는 연기자 살린 마찰력


줄을 V자로 늘어뜨려 그네로 사용한다. 공연 도중 그네에서 추락하다 발에만 의지해 거꾸로 매달릴 때는 보는 사람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이 연기의 비밀은 바로 발과 종아리를 감싼 파란 보호대다.


파란 옷을 입은 여자가 줄 하나로 이뤄진 ‘구름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며 회전도 하고 거꾸로 매달리기도 한다.

연기자는 그네를 굴러 점점 높이 올라가 천장 끝에서 뛰어올라 서너바퀴를 돈다. 하지만 다시 그네를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한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그는 발만 줄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다. 숨죽였던 관객의 환호성이 무대 전체를 흔든다.

관객의 함성이 잦아들 무렵 그가 뒤로 빙글 돌며 떨어진다.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어느새 몸에 묶인 보이지 않는 안전줄 덕분에 천천히 바닥에 착지한다.

일순간 관객들의 ‘숨’을 앗아가버린 이 공연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연기자의 발과 종아리를 감싼 파란 보호대다. 추락하는 연기자는 중력에 의해 가속되기 때문에 다리에 줄을 아무리 세게 감아도 체중을 버텨낼 마찰력을 얻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마찰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정지마찰력은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 강력 접착제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접착제를 사용할 수도 없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줄과 다리가 쉽게 떨어져야 한다.

파란 보호대에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처럼 수 마이크로미터(μm, 1mm=10-6m) 크기의 돌기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재질은 접착력은 그대로인 채 마찰력만 크게 높여준다. 돌기에는 ‘반데르발스힘’이 작용해 물체와 결합하는데, 돌기 하나하나의 마찰력은 작아도 수많은 돌기들의 마찰력을 합하면 매우 크다. 그래서 접촉면과 수직 방향으로 물체가 움직이면 쉽게 떨어지지만 접촉면과 수평방향인 힘을 가하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연기자는 관객의 눈앞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며 마술 같은 공중연기를 선보인다. 사다리처럼 보이는 운반장치인 텔레페릭을 이용한 고도의 연출이다.


퀴담의 숨겨진 비밀


매혹적인 복장의 연기자는 손으로만 온몸을 지탱하면서 다채롭고 우아한 동작을 보여준다.


체중과 근육량 : 석상처럼 분장한 남녀 한쌍이 서로를 지탱하며 다양한 동작을 표현하는 공연에서 남녀 연기자는 체중과 근육량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춘다. 남자는 최대한 체중을 감량하고 여자는 최대한 근육량을 키운다. 성별이 달라도 체중과 근육량이 비슷하면 한 사람이 큰 힘을 쓰지 않아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

조명 : 구름 그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연기자가 떨어질 때 관객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연기자의 몸에 연결된 안전줄이 조명으로 인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의 특성상 연기자를 비추는 주조명은 수동으로 조작한다. 조명 담당자는 검은 옷을 입고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명을 다룬다. 중간 휴식 때 기둥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검은 복장의 사람이 그들이다. 땅에 내려오기 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텔레페릭 : 공연장 천장에 달린 철제 프레임이 아치형으로 휘어진 데도 비밀이 있다. 이 프레임은 ‘텔레페릭’이라고 불리는 운반 장치다. 텔레페릭은 5개의 알루미늄 레일로 이뤄졌다. 각 레일에는 수송용 활차가 두 대씩 달렸다. 하나는 연기자를 무대 뒤에서 무대로 운반하고, 다른 하나는 연기자의 높이를 조절한다. 연기자가 관객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천장에서 떨어지다 관객의 머리 위에서 정확하게 멈출 수 있는 이유는 텔레페릭 덕분이다.

인간 용수철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 곡예술. 연기자 15명은 민첩한 동 작으로 인간 피라미드, 인간 용수 철의 연기를 펼친다. 인간 피라미 드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래쪽을 무겁게 한다.


퀴담의 피날레를 장식한 공연은 ‘뱅퀸’.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건장한 장정 여덟 명이 두 명씩 짝을 져 손을 잡고 있자 작은 체구의 남녀 연기자가 그 손을 밟고 뛰어올라 하늘을 날며 나타났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계속해서 사람을 던지고 받고, 사람을 줄 삼아 줄넘기를 하고, 장정들의 손을 밟고 높이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마지막에는 까마득한 높이로 사람을 날렸다.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 자신보다 덩치가 조금 작은 사람을 어깨 위에 올리고 그 위로 한 사람이 또 올라갔다. 그리고 덩치가 가장 작은 사람이 장정 네 명이 모은 손 위에 올라가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긴장된 순간, 자신의 키보다 세배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연기자는 단 한 번의 점프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어깨 위에 정확히 착지했다.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의 손을 모아 만든 인간 용수철에 중력의 벽을 뛰어넘는 마법이 숨어 있다. 농구공 위에 야구공을 얹어 1m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야구공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지 생각해보자.

바닥에 닿는 순간 농구공은 위로 튕기고 야구공은 튀어오르는 농구공에 다시 튕긴다. 이때 야구공이 올라가는 속도는 떨어지던 속도의 3배가 된다. 그런데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고 위치에너지는 높이에 비례한다.


한명 또는 세명이 공중에 매달린 고리에 올라 화려한 연기를 선보인다. 세 사람의 균형이 맞아야 회전할 때 후프가 흔들리지 않는다.


야구공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튕기고 난 뒤에도 보존되기 때문에 야구공이 튀어오르는 높이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9배가 된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야구공은 7m 정도 튀어오르지만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9m까지 올라간다. (구체적인 수식과 설명은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 www.dongaScience.com을 참고)

인간 용수철의 원리도 비슷하다. 위에 올라간 사람이 무릎을 굽혔다 펼 때 딛고 있던 바닥이 위로 솟아오르면 그 높이의 제곱만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대신 아래를 받치는 장정들의 무게는 올라간 사람의 무게보다 월등히 커야 한다. 농구공과 야구공의 예처럼 운동량은 질량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뱅퀸 공연을 끝으로 퀴담은 막을 내렸다. 연기자들은 관객의 계속된 커튼콜로 세 번이나 무대로 나와 인사를 했다.

평론가들은 퀴담을 예술과 서커스가 만났다며 극찬했지만 원리를 알고 보면 과학의 뼈대에 서커스의 살을 입히고 예술로 화려하게 치장한 공연이다. 관객들의 벅찬 감동 속에 중력의 마술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남녀 연기자는 강한 힘과 집중력으로 완벽한 균형미의 조각상을 연출한다. 공연을 위해 남녀 연기자는 체중과 근육량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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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도움

    유재준 교수
  • 전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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