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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로운 덕후생활] AI 전투용병 ‘정이’ 현실 가능한 기술은?

‘전설의 전투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하라!’

1월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정이’는 뇌 복제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룹니다. 영화 속 군수업체 크로노이드가 정이의 뇌를 복제해 인공지능(AI) 전투용병을 개발하죠. 그야말로 영화 같은 설정이지만, 의외로 현실에서 개발 중인 다양한 과학기술이 등장합니다.

 

(※편집자주. 사이언스 픽션(SF), 즉 과학적 사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과학덕후’의 시선으로 뜯어보면 얼마나 더 재밌게요.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과학덕후라면 꼭 봐야할 최신 SF작품 속 과학 이야기를 상반기 동안 연재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22세기, 지구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 공간에 ‘쉘터’라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40여 년간 이어진 쉘터 간 전쟁으로,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이죠.

 

영화의 제목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정이’는 전설의 전투 용병입니다. 뛰어난 지략과 아름다운 외모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십 수년 전 한 작전에 실패하며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그런 정이의 딸, 서현은 어머니의 뇌를 복제해 그를 능가하는 AI 전투용병을 개발하려 합니다.

 

‘정이’의 고통 수치를 낮춘 것은 광유전학?

뇌 복제는 곧 ‘영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불로초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뇌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들의 활성화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뉴런은 서로 연결돼 있고, 전기적 신호를 통해 인지, 기억, 연산 등의 뇌 활동을 합니다. 어떤 뇌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활성화되는 뉴런이 다르고, 뉴런끼리 주고받는 전기적 신호의 세기도 달라지는데요. 이는 매우 유동적입니다. 가령 우리가 완벽하게 외우고 있던 휴대전화 번호도, 번호를 바꾸면 금세 까먹습니다. 뉴런이 활성화되고 연결되는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완벽하게 뇌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들까지도 모두 파악해 그대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전문가들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완벽한 뇌 복제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이에서 나오는 몇몇 장면은 현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한 예로 크로노이드는 정이의 뇌 데이터를 모두 복사한 뒤, AI를 통해 전투에 필요한 데이터들을 선별하고 강화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과거 정이가 실패했던 작전에 성공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하죠. 이때 극중 정이의 딸이자 크로노이드에서 ‘정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팀장인 서현은 AI 전투로봇의 뇌 구조를 태블릿 PC로 들여다 보며 ‘전투 의지’나 ‘고통 수치’ 등을 조절합니다.

 

이와 유사한 감정 조절은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을 활용하면 가능합니다.  광유전학은 빛을 이용해 뇌의 신경세포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특정 신경세포에 발현시킨 뒤,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거나 비활성화시키는 방식입니다.

 

2019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은 광유전학 기술로 공포 감정을 감소시키는 뇌 신경회로를 발견했습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공포 감정은 시각 자극을 받아들이는 ‘상구’ → ‘중앙 내측 시상핵’(공포 기억 억제에 관여) → ‘편도체’(공포 반응 작용)로 이어지는 회로에 의해 감소합니다. 연구팀이 광유전학 기술로 이 회로를 강화하자 공포 반응이 크게 감소했고, 억제하자 공포 반응이 유지됐습니다. 이를 영화에 적용시키면 광유전학으로 전투 의지를 높이거나 고통을 못 느끼게 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의지나 고통에 관여하는 뇌 회로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말이죠.

AI 수준 평가하는 최첨단 튜링테스트

 

“윤서현 팀장님, 윤리테스트는 잘 받고 계시죠?”

 

극중에서 크로노이드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상훈은 서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영화 속 윤리테스트는 인간과 AI를 구분하는 실험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22세기에는 지금보다 더 AI와 인간을 구분하기가 힙듭니다. 외적으로 같은 건 물론이고, 지능이나 감정까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윤리테스트는 현실의 튜링테스트를 떠올립니다. 튜링테스트는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제시한 테스트로, AI(당시엔 컴퓨터 혹은 기계)가 사람과 얼마나 유사한지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질문자가 기계 혹은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답변만을 보고 기계인지 사람인지를 맞히는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질문자의 30%를 속이면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AI로 인정받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판정단을 ‘속여야’한다는 점에서 AI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AI 챗봇 중 하나인 ‘미츠쿠(Mitsuku)’가 단적인 예입니다. 미츠쿠는 튜링테스트를 기반으로 AI 챗봇의 성능을 확인하는 ‘뢰브너 상(Loebner Prize)’ 대회에서 2016~2019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미츠쿠를 개발한 스티브 워스윅 아이코닉 AI(ICONIQ AI) 개발자는 “(뢰브너 상을 받기 위해) 매년 해야 하는 귀찮은 일 중 하나는 AI 챗봇이 컴퓨터처럼 너무 완벽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 인구 수를 물어보면  “5155만 8034명”이라고 답하지 않고 “약 5000만 명”이라고 답하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AI의 성능과는 관련이 없는 작업입니다.

 

최근에는 좀 더 설득력 있는 튜링테스트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AI연구원은 AI의 비디오 이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비디오 튜링테스트(VTT)’를 2022년 11월 공개했습니다. 이 튜링테스트는 AI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AI의 반응을 감정 인식, 지식 기반 추론, 배경 정보 기억, 대화 맥락 이해, 행동 의도 추론 등 5가지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가령 버스 안에서 고백을 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고, 남자 주인공이 모르는 척 자리를 옮기는 드라마 장면을 보여준 뒤에, 남자 주인공의 행동 의도를 추론하는 방식이죠. 연구 책임자인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아직 과학적으로 활용할 수준은 아니고, 인공지능 성능을 평가하는 데 참고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AI, 군수 분야 빠르게 침투 중

 

자율 드론, 자율 군용 차량 등 AI 기반의 다양한 군용 기술은 이미 현실화됐습니다.  미국의 대표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은 2022년 12월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레드햇과 AI 군사 플랫폼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록히드마틴은 “AI 플랫폼을 활용해 무인항공시스템(UAS)인 ‘스토커(Stalker)’의 정보, 감시, 정찰 임무 정확도를 높일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여러 군대에서 전달받은 데이터를 통합해 작전을 수행하는 AI 기반의 ‘공통작전상황도(COP)’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AI를 접목해 아군과 적군의 전체적인 상황을 하나의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18년 ‘모자이크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수행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군사를 소규모로 분산하고, 군대 하나하나를 모자이크처럼 어디에 붙여도 운용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AI의 분석과 판단이 필수입니다.

 

영화 정이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 세계적인 권력 경쟁 속에서도 ‘속도’만을 강조하지 않고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죠.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을 파괴할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교육자로 이름을 날린 프랑수아 라블레의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동아일보 기자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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