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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종한 지구도 평화롭더라

잠시 눈을 감고 지금으로부터 5000만년 뒤를 상상해 보라. 여기저기 축축한 늪지대가 펼쳐져있고 따뜻한 수증기가 공기를 휘감는다. 거대한 버섯이 햇빛을 가려서일까. 지상은 조금 어둡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자 버들강아지처럼 생긴 나무가 허리를 굽히며 땅으로 휜다.

조금 낯선 미래의 풍경, 놀랍게도 이곳에 인간은 없다. ‘미래 동물 이야기’는 인간의 멸종을 가정하고 그 뒤에 펼쳐질 풍경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 앞에 ‘인류 시대 이후의’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세포유전학이나 자연선택, 먹이사슬 같은 진화의 기본 개념을 익힌 뒤 실제로 생명체가 태어나 진화해온 유구한 과거를 들춰본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사라진 지구 곳곳에서 어떤 생명체가 적응과 진화를 반복하게 될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이론 부분은 생물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갈라파고스의 핀치’처럼 과학교과서에서 봤음직한 얘기가 나올 때는 절로 반가움이 어린다. 그동안 진화의 시점은 과거에서 현재까지로 제한돼 있었다. 인간이 두발로 걷게 되고 고래는 바다로 침잠했으며 타조의 날개는 보잘 것 없이 작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 끝난 걸까. 두걸 딕슨은 그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한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지만 환경의 변화에 가장 취약한 인간이 사라지면 또 다른 진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화의 시점을 미래로 보내 지난 과거와 현재 못지않게 활기차게 살아가는 미래 동물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개간과 농경으로 망가진 온대림과 초원은 인류가 멸망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되살아났다. 열대 습지의 원숭이는 물갈퀴와 긴 발톱, 개구리형 몸매를 갖추며 ‘수륙양용’으로 진화한다. 펭귄의 후손인 보어텍스는 12m가 넘는 거대한 몸으로 대양을 가른다. 부리는 플랑크톤을 쉽게 거를 수 있도록 대형 체 모양으로 변했다.

이처럼 미래의 동물은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 변화에 적응했다. 저자는 환상과 과학을 적절히 조합해 종과 횡으로 뻗어나가는 진화의 미래를 그려냈다. 마술지팡이를 휘둘러 인간이라는 ‘방해물’만 살짝 들어낸 채 말이다. 한마디 더 하자면 ‘인류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 그림에서도 우리나라는 접지 부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더니 미래 동물에 대해서도 별 언급 없이 지나가 버린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어서 논의에서 제외된 것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인류 시대 이후의 미래 동물 이야기


인류 시대 이후의 미래 동물 이야기
두걸 딕슨 지음 |이한음 옮김 (승산, 240쪽, 1만 5000원)

두걸 딕슨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전공했다. 지구과학과 진화에 대한 글을 많이 썼고 백과사전, 과학교양서를 펴냈다. 여가시간에는 모형만들기나 만화영화 제작에 매달린다. 저서로는 ‘미래동물대탐험’ ‘처음 만나는 공룡의 세계’가 있다.

 

이현경 기상청 지구환경위성과

나를 바꾼 과학책
이현경 기상청 지구환경위성과hyunk@kma.go.kr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안여림, 윤지영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390쪽 1만 5000원

어릴 때부터 하늘이 좋아 천문우주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서는 고층대기와 위성자료처리 분야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은 없었다.

기상청에 들어와 한동안 일중독자처럼 살며 병원 신세도 졌지만 영어와 숫자로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구름 영상이 되고 황사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곧 ‘결혼한 뒤에 가정생활과 연구를 동시에 꾸려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사실 이런 질문에 답하기가 두려워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즈음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 책을 봤다. ‘과학’과 ‘행복’이란 단어의 조합이 어색해보였지만, 과연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었다. 인터뷰 형식의 글은 술술 잘 읽혔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여성과학자의 얘기에 절로 공감이 갔다. KAIST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안여림 씨는 여성과학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여성성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외모나 옷에 신경 쓰는 것은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말은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시련을 당당하게 헤쳐나간 선배들이 있기에 더 힘이 솟아났다. 갑자기 하늘의 구름을 보며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 여기 한명 더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다.

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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