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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분자 헤쳐 모여

연성나노소재 연구실

영화 ‘터미네이터2’에서 추격전을 벌이다 액체질소 탱크가 터지면서 급속히 냉각된 미래 로봇 ‘T-1000’은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쏜 총을 맞고 산산조각난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졌던 금속파편은 온도가 올라가자 액체가 되면서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T-1000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처럼 분자가 스스로 모여 특정한 구조를 만드는 현상을 자기조립이라고 한다. 분자들이 스스로 레고블록처럼 쌓이는 자기조립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반도체 기판 표면을 자기조립 나노구조를 만드는 물질로 코팅하고 있다.


나노분자 스스로 회로 만든다

신소재공학과 연성나노소재연구실의 김상욱 교수는 자기조립 원리를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젤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고유한 모양을 갖는 연성 소재 중의 하나인 고분자 물질은 입자 여러 개가 모이면 스스로 나노구조를 만드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고분자의 자기조립 과정을 제어하면 손쉽게 반도체 회로를 만들 수 있다.

김 교수는 “실리콘 박막 같은 두터운 층을 파서 회로를 만드는 현재의 톱-다운 방식은 반도체 회로 선폭을 50nm(1nm=${10}^{-9}$)보다 더 세밀하게 만들기 어렵지만, 원자나 분자를 조립해 회로를 만드는 빌딩 블록 방식을 사용하면 30nm 이하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분자 물질이 자기조립을 통해 이루는 나노구조는 무질서하게 엉켜있어 회로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연구 9개월 째, 불규칙하게 꼬여있던 나노구조를 직선으로 펴는 방법을 알아냈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2003년 7월 영국의 ‘네이처’에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무질서한 고분자의 나노구조를 직선으로 펴서 필요한 부분을 구부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관련 논문은 미국의 ‘사이언스’ 6월 3일자에 실렸다. 고분자의 자기조립 나노구조가 회로에 적합한 형태로 만드는 기술이 완성된 것이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한계에 다다른 기가(1Giga=109)급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선 테라(1Tera=${10}^{12}$)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김교수는 무질서한 고분자의 나노구조(01)를 곧게 편 다음(02) 필요한 부분을 구부려서(03) 원하는 회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좌절금지, 그 선생에 그 제자

자기조립을 활용한 나노기술은 참고할 만한 선행연구가 없어 실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예측 모델을 만들기 어려우니 연구방향도 수시로 변한다. 기껏 실험을 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실패하기 일쑤다. 더구나 경험이 부족하면 바이러스만큼 작은 크기로 만들어지는 실험 결과물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이렇게 불확실한 연구과정을 어떻게 견디냐고 묻자 김 교수는 “불안에 익숙해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며 살짝 웃는다. 그는 “실패하면 적어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며 학생들에게도 늘 “창조적인 연구결과는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연구실 문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붙인 ‘좌절금지’란 글씨가 또렷하다.

좌절을 모르는 연구팀은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펩타이드의 자기조립을 이용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미 펩타이드로 나노튜브도 만들었다. 연구팀은 펩타이드 나노튜브를 바이오칩이나 인체에 투입하는 마이크로 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에 활용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펩타이드는 화학물질이 아닌 생체물질이어서 인체에 거부반응이 없고 고분자보다 더 빠르면서도 견고한 나노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나노기술을 실용화하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하지만 연성나노소재 연구실의 박사과정 2명과 석사과정 4명에게 좌절은 없다.
 

김상욱 교수(가운데)와 연구원들이 함께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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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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