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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변신 가능한가

하얀 패드의 숙제, 흡수력, 냄새, 건강

기다란 봉을 손가락으로 쥐고 눌러 가늘게 만든 뒤 질 안 깊숙이 넣는다. 봉 끝에 촘촘히 뚫린 구멍이 자궁 입구에 오도록 한다. 봉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손잡이를 오므렸다 벌리기를 반복한다. 기구 안 압력이 낮아져 자궁 내벽에 느슨하게 붙어있는 붉은 생리혈이 촘촘히 뚫린 기구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온다. 평소 같았으면 몸 밖으로 천천히 흘러나왔을 생리혈이 이 기구의 펌프 작용 때문에 순식간에 흡수된다.

‘생리를 안 하고 살 수 없을까’ ‘생리를 하루 만에 끝낼 수는 없을까’하고 한번쯤 생각해봤던 여성의 눈을 확 뜨이게 할 만한 발명품이 1977년 미국에서 등장했다. 이름은 ‘생리혈 추출기’. 펌프질로 생리혈을 의도적으로 몸 밖으로 빼낼 수 있다.

발명가는 생리혈 추출기를 사용하면 생리를 단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발명품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해 상품으로 나오지 못했다. 생리혈을 자궁에서 추출한다는 ‘황당한 발상’뒤에는 ‘여성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생리컵과 생리주머니

200년 전만 해도 유럽과 북미 지역 여성들은 생리혈이 옷 밖으로 새어 나오는 현상에 민감하지 않았다. 그 당시 여성은 월경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므로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리혈을 흡수하기 위해 장치를 도입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었다. 초기 생리용품은 질 안으로 고무컵이나 주머니를 넣어 생리혈을 담아두는 형태였다. 부드러운 고무컵을 손으로 접어 질에 넣으면 고무가 질 내부에서 알맞게 펴지면서 생리혈을 저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벨트나 멜빵에 생리혈을 담는 주머니를 달아 편안함을 더한 제품이 나왔다. 생리컵은 질 밖으로 빠지면 생리혈이 쏟아질 수 있어 불편했다.

하지만 벨트나 멜빵에 생리주머니를 달아 착용하면 벨트나 멜빵을 풀지 않는 이상 몸에서 주머니가 떨어질 염려가 없어 생리 중인 여성이 활동하기 편했다.

1935년 독일에서 개발된 니트 소재의 생리패드가 오늘날 쓰이는 생리대의 시초다. 벨트의 중앙에 단추를 달아 니트 재질의 생리패드를 고정시켜 사용하는 형태로 생리패드만 교체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생리컵이나 생리주머니에 생리혈을 담는 형태가 아니라 생리혈을 흡수하는 소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수원 YWCA가 10세 이상 여성 4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설문 참여자의 90.7%가 생리용품으로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일회용 생리대는 ‘편리함’이 장점인데, 그 비밀은 ‘흡수력’에 있다. 한 듯 안 한 듯, 최대한 얇으면서 흡수율은 최대로 높여 여성이 평상시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생리대의 핵심이다.

과거에 면이나 부직포로 만든 생리대는 두꺼워 사용하기 불편했다. 이 문제를 고흡수성 폴리머*(SAP: super absorbent polymer)라는 화학흡수제가 풀었다. 연세대 화학과 장우동교수는 “생리대가 자신보다 수백 배 무거운 수분과 생리혈을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는 비밀은 고흡수성 폴리머에 있다”고 설명했다.

생리대에 쓰이는 가루상태의 고흡수성 폴리머는 1g이 1L의 물을 흡수할 정도로 흡수력이 크다. 화학흡수제의 개발로 일회용 생리대는 그 두께가 더욱 얇아져 착용감이 좋아졌다.

12살 소중해의 일기

1994년 7월 15일 날씨 맑음. 오늘 걸스카우트 체육대회를 했다. 이어달리기 주전선수였던 나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다 무엇인가 밑으로 쏟아지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멈춰 섰다.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쉽지 않아 나는 경기에서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때 엄마한테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 큰 병에 걸렸나봐.” 엄마는 무척 놀라신 듯했지만 곧 웃는 얼굴로 “여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폭신폭신한 하얀 패드를 주셨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엄마는 이것이 ‘생리대’라고 했다.
 

생리대의 변신^19세기 후반부터 생리


월경 10년차 소중해 양

생리대를 하루에 8개씩 한달에 5일 정도, 10년동안 썼다면, 이제까지 소 양이 쓴 일회용 생리대는 최소한 4800개. ‘생리대 길이가 보통 24cm니까, 이제까지 내가 쓰고 버린 생리대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1152m. 잠실 올림픽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반이나 돌 수 있군.’ 소 양이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친구인 강추천 양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나 순면 생리대로 바꿨어. 고약한 냄새도 줄고 피부질환도 사라졌어. 너도 한번 써보는 게 어때?” 강 양이 소 양에게 순면으로 된 생리대를 건네면서 말한다. 안 그래도 소 양은 어제 뉴스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몸에 해롭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추천아, 면이나 천연펄프로 된 생리대는 일회용 생리대와 뭐가 달라?”
 

생리통


화학물질 벗고 순면으로 갈아입자

국내에 일회용 생리대가 보급된 시기는 1970년대다. 일회용 생리대가 보급되기 전 한국여성은 광목(무명씨로 짠 면섬유의 한 종류)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썼다. 광목으로 만든 생리대는 두꺼웠을 뿐 아니라 매일 빨래를 해야 했기에 불편했다. 한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일회용 생리대가 보급되면서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뒤 30년 동안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필수품이 돼왔다. 하지만 최근 생리에 쓰이는 화학흡수제와 합성섬유가 여성의 몸에 좋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2000년 716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참가자 가운데 59.9%(429명)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피부질환, 가려움증 같은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는 생리대 제조사에게 생리대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여성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생리대 제조사는 생리대에 쓰이는 화학흡수제의 제조과정과 성분은 비밀이라고 답했다. 을지대 의료공학과 박상수 교수는 이에 대해 “생리대는 의약품이 아니라 생활용품으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규정을 따른다”며 “의약품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없어 일회용 생리대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적 불순물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염소표백제를 쓰지만 표백제가 여성의 피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또한 일회용 생리대가 피부와 닿는 표면은 레이온과 인조섬유로 만든다. 레이온은 천연고분자에 가장 가까운 합성물질인데, 탄수화물의 일종인 셀룰로스를 이황화탄소(CS₂)에 녹여 섬유 형태로 만든다.

레이온은 인체에 해롭지 않지만 레이온을 만들 때 쓰는 이황화탄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 장 교수는 “생리대를 만드는데 쓰이는 이황화탄소 같은 물질이 제품에 남아있다면 여성의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자매연대(www.bloodsisters.or.kr) 활동가 김디온 씨는 면으로 대안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도안을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직접 재단한 뒤 바느질도 손수 한다. 날개형 생리대 모양으로 만든 뒤 양 날개에 똑딱이 단추를 붙여 팬티를 감싸서 고정시킬 수 있다.

자신의 개성에 맞게 천의 무늬도 고를 수 있어 ‘나만의 생리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 씨는 “대안생리대를 만들어 쓴 뒤부터 생리 중 발생하는 쾌쾌한 냄새도 없어지고 피부질환도 거의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요즘 천연펄프나 면으로 만든 생리대가 인기다. 기존의 생리대 업체들은 면소재의 생리대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한방생리대처럼 웰빙을 내세운 상품도 출시하고 있다. 천연 면 생리대를 판매하는 일동제약의 홍보팀 원종미 씨는 “일회용 생리대의 위해성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인지 흡수율은 떨어져도 화학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면 생리대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리대 단면과 화학구조^생리대의 화학흡수제인 고흡수성 폴리머엔 친수성인 카르복실기(-COOH) 고리가 많다(01). 고흡수성 폴 리머와 물이 만나면(02) 음전하를 띤 COO- 이온이 생겨 반발력이 커지고 이온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고 흡수성 폴리머에 카르복실기가 많을수록 이온 사이에 물분자가 들어갈 공간이 커져 수분 흡수율이 높아진 다(03).


생리통 줄여주는 생리대?

진정으로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생리대는 어떤 모습일까?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박사는 “생리대는 여성이 일생의 $\frac{1}{13}$*동안 착용하는 제품이라며 “미래형 생리대는 생리통과 생리증후군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리통은 자궁 근육을 수축시키는 프로스타글란딘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될 때 생긴다. 자궁 근육이 심하게 수축되면 혈관이 눌려 자궁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의 양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지난해 11월 의학저널인 ‘생체 재료학 저널’에 이산화규소같은 바이오 세라믹의 작용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2004년에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바이오세라믹 같은 재료를 넣어 생리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박사는 “자궁의 혈액순환이 좋아지면서 프로스타글란딘의 양도 줄어드는 결과를 관찰했다”며 “새로 개발된 생리대를 사용하면 굳이 생리통 완화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자궁의 생리현상을 완전히 이해하면 생리기간을 줄이는 ‘능동형 생리대’를 개발할 수 있다”며 “더 짧은 기간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리혈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피임의 개발로 여성이 임신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여성은 생리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생리는 한 달에 한번 몸밖으로 내보내는 배출물이 아니며 생리대는 단순히 몸의 배출물만 받아내는 도구가 아니다. 생리대는 여성 생식기와 맞닿아 있으며, 여성의 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제품이다.

박 교수는 “여성의 생리와 생리대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던 이유는 생리를 자신 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며 “‘생리대’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때 여성의 건강을 생각하는 미래형 생리대의 진화 속도는 빨라진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생리대의 변신이 기대된다.

고흡수성 폴리머
액체를 흡수하는 성질이 큰 물질. 가격이 저렴하면서 비교적 만들기 쉬운 '폴리아크릴산'이 화학 생리대의 흡수제로 쓰인다.

1/13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은 81세(2005년, 통계청). 한 여성이 보통 한달에 5일씩 약 38년 동안 생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일생의 약 $\frac{1}{13}$동안 생리대를 착용하는 셈이다.
 

01월경페스티벌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해 부끄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02대안 면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당신의 생리 상식은? (O, X 퀴즈)

1. 몇 살에 초경을 하더라도 모두 정상이다.

2. 생리량은 일반적으로 30~80ml(평균 60ml) 정도다.

3. 생리는 모두 혈액이다.

4. 생리로 잃은 혈액은 몸 안에서 즉시 보충된다.

5. 생리기간에 적황색채소와 붉은 고기류를 먹으면 빈혈에 도움이 된다.

6. 50대 여성이 3개월 동안 월경이 없으면 폐경으로 본다.

7. 생리혈이 옷에 묻었을 때 찬물과 소금을 사용해 얼룩을 지운 뒤 세제로 세탁하면 잘 지워진다.

(정답수 0~2개) 반성하세요. 당신에게 월경에 관한 책 '알고 싶지 않니?' 를 추천합니다.
(정답수 3~5개) 생리에 관해 잘 알고 있는 편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정답수 6~7개)  생리에 관해 많이 알고 있군요.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정답) 번호 순서대로 :  ○, ○, X, ○, ○, X, ○
해설은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www.dongaSci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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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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