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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서 초파리 1000마리와 뒹군다

한국 우주인이 수행할 18개 미션

2008년 4월 어느날 저녁 9시 뉴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 기지에서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출발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메인 뉴스를 장식한다. 이어 며칠 뒤 고비사막에서 발원한 황사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전역을 덮친다는 소식이 뒤따른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탄생하는 시기에 왜 하필 황사가 오는 거야. 그나마 황사랑 상관없는 지역에서 우주선이 발사됐으니 다행이야.’
 

2003년 4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백두산 사진. 눈 덮인 봉우리 꼭대기에 천지가 보인다.


우주서 수명단축 원인 밝혀야

국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ISS에 도착한 우리 우주인은 단순히 우주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이미 발사 과정에 우주선 안에서 측정기기로 안압을 몇 차례 측정했다. 또 24시간 심전도 측정장치가 심장박동을 계속 재고 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화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사실 1주일간 18가지 실험을 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이 숨쉴 틈 없이 돌아가게 된다. ISS에 거주하고 있는 우주인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짐을 풀자, 그가 수행할 임무와 관련된 물품(?)이 쏟아져 나온다. 먼저 살아있는 실험 대상인 벼와 콩의 씨앗, 그리고 초파리가 무사한지 살핀다. 소형생물배양기도 괜찮은 상태다.

초파리는 지름 2cm에 높이 10cm인 병에 100마리씩 들어가 있다. 이런 병을 모두 10개나 가져왔으니 그와 함께 우주여행을 한 초파리 식구만 1000마리다. 대식구의 초파리는 중력반응, 노화와 관련된 실험에 참여한다.

먼저 중력 반응 유전자를 찾는 실험이다. 지구에서 정상적으로 중력을 감지하던 초파리가 무중력 우주에 오면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다. ‘어라, 벌써 방향을 잃고 헤매는 녀석이 보인다.’ 하지만 우주공간에 있는 초파리도 중력을 감지하려고 ‘중력 반응 유전자’를 무던히 작동시킬 것이다.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이 초파리들을 건국대 조경상 교수에게 넘길 예정이다.

비록 초파리가 우주에 1주일간 머물지만 이 기간은 인간의 20, 30년 세월에 맞먹는다. 이전에 미국 연구자들은 우주에 갖다온 초파리의 수명이 반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적이 있지만, 그 원인을 밝히진 못했다. 앞으로 인류가 우주기지에 오래 살 텐데, 사람의 수명이 반으로 단축된다면 큰일이 아닌가. 우주에서 수명이 단축되는 원인을 유전자 수준으로 밝혀내는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잠깐 짬을 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물로 선발된 벼와 콩의 씨앗을 관찰한다. 이들은 조그만 배양용기에서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 고작 5cm 정도 자라겠지만, 학생들의 최대관심사 중 하나다. 학생들이 지구에서 키우는 식물과 어떻게 다른지 직접 확인할 테니 말이다.

구름서 하늘로 치는 번개

우리 우주인이 ISS에 가져온 물품의 전체 질량은 45kg이다. 그가 소유즈에 직접 싣고 온 종류도 있지만 상당수 실험물질과 장비는 3달 전 무인우주선 프로그레스에 실려 미리 ISS에 도착한 상태다. 제올라이트 용액이 담긴 용기, 금속-유기 다공성물질을 ‘구울’ 오븐, 초고집적·초경량 분자 메모리소자, 우주저울….

제올라이트는 미세구멍이 규칙적으로 나 있는 값비싼 화학물질이다. 단순히 제올라이트 결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유리판에 합성한 제올라이트를 균일하게 코팅해야 한다. 서강대 윤경병 교수에게서 제올라이트 코팅 유리는 특정 주파수의 빛과 소리를 차단하는 특성을 갖는다고 들었다.

금속-유기 다공성물질은 제올라이트와 달리 원하는 모양으로 결정을 만들 수 있다. 차세대 연료인 수소를 저장하는데 쓰일 수 있다고 하니, 잘 구워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든다. 오븐을 100℃까지 올렸다가 식히면 결정이 나온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자야 할 시간이라고 한다. 서둘러서 ISS 한쪽 창문에다 가로세로 10cm에 높이가 40cm인 반도체 망원경을 붙인다. 이따가 자기 전에 스위치를 올려놓으면,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가 개발한 이 망원경이 ‘고층번개’를 포착하게 된다. 고층번개는 보통 구름에서 땅으로 치는 일반 번개와 달리 구름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반지름과 높이가 수십km인 이 불덩이는 100~1000분의 1초만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한다.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우주에서 잠을 자는 경험은 어떨까. ISS 내부가 팬이나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로 시끄러워 걱정을 많이 했는데, KAIST 이덕주 교수가 개발한 우주귀마개 덕분에 잘 잤다.
 

012006년 4월 8일 미국항공우주국의 지구관측위성‘아쿠아’가 찍은 한반도 사진. 짙은 황사가 우리나라에 걸쳐 있다. 내년 4월에도 우리 우주인이 황사를 관측할 가능성이 높다. 02한서대 조용진 교수가 우주공간에서 부은 얼굴(오른쪽)을 가상으로 만들어 지상 얼굴과 비교한 사진. 등고선 촬영장비로 찍은 것이다.


얼굴 찍고, 황사 찍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카메라 앞에서 얼굴 사진을 찍었다. 이 카메라는 한서대 조용진 교수가 개발한, 책 크기에 900g짜리 소형 등고선 촬영장비다. 지구에서 다리 쪽에 몰려있던 체액이 무중력 우주공간에서는 골고루 퍼져 얼굴이 붓고 눈이 튀어나온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의 얼굴이 더 많이 붓는다고 하는데, 내 얼굴은 어떨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가장 기대하는 실험장비는 우주저울이다. 질량이 3kg 정도 나가고 관련 기술이 미국에 특허가 나있다고 한다. 무중력 우주에서 질량을 재기는 쉽지 않은데, 이 우주저울은 오차가 적은 게 특징이다. ‘200g을 재면 0.1g의 오차가 난다는데,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저녁에는 따끈한 물을 특수 팩에 넣어 즉석에서 만든 된장국에 김치와 밥을 먹었다. 한국식품연구원 김성수 박사가 우리 전통음식을 우주식으로 개발한 덕분이다. 칼슘과 섬유소를 강화하고 염분을 줄였다고 한다. ‘역시 한국인은 김치에 밥이 최고야.’

다음날은 아침부터 지구 사진을 찍는데 몰두한다. ISS가 한반도 상공을 지나갈 때 쳐다보니 황사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고 있는 장면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매년 4월 황사는 한반도에서 4~5차례 관측되는데, 한번에 2~4일 정도 지속된다. ISS에서 찍은 사진은 위성 영상보다 해상도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3시간 간격으로 한반도 황사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와우 제대로 잡았어. 내가 찍은 황사사진은 히트를 칠 거야.’

ISS를 떠나기 전날 밤 귀환할 때 가져갈 물건을 챙긴다. 메모리 칩, 기록테이프…. 5kg만 가져갈 수 있어 대부분의 실험장비는 ISS에 놓고 가야 한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이들 물건이 나중에 화물우주선에 실린 채 지구대기에서 불타 버린다고 하니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한국 우주인의 과학실험 임무

200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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