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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작! 탕후루 씹는맛의 비밀

탁탁, 콰사삭, 와그작!

경쾌한 소리, 달콤한 맛! 탕후루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이, 가래떡, 쫀드기 등 이색적인 재료로 나만의 탕후루를 만들어 보는 분들도 많은데요! 매끈한 겉모습에 홀려 와그작 씹다간 피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깨진 설탕 코팅의 단면은 유리처럼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탕후루와 설탕의 독특한 물성을 파헤쳐 봤습니다.

 

유리알처럼 매끈한 설탕으로 코팅된 과일들이 줄줄이 꽂힌 탕후루. 탕친민국(탕후루에 미친 대한민국), 식후탕(밥 먹고 탕후루)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요즘 그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요. 실제로 탕후루 대표 프랜차이즈인 달콤왕가탕후루의 점포는 올해 2월 50여 곳이었지만, 9월에 400곳을 돌파하면서 점포 수가 7개월 만에 8배 늘었습니다. 음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탕후루 검색량은 1월보다 47.3배 증가했고요.

 

 

‘겉바속촉’ 식감과 달콤함이 인기 비결

 

“식감이 마음에 들어서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새로운 당에 대한 욕망도 있고요.” 9월 22일 만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탕후루의 인기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맛과 향 연구자로서 책 ‘물성의 원리’ 등을 저술한 그에 따르면 단맛의 유행은 돌고 돕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선풍적인 유행을 끈 ‘허니버터칩’, 2019년의 ‘흑당’ 식음료 등이 있죠.

 

잊을 만하면 단맛 음식이 유행하는 이유는 당이 우리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60% 정도는 탄수화물이고,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분해돼 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됩니다. 즉, 몸을 움직이는 기본 에너지원인 당에 대한 욕망은 항상 내재돼 있습니다.

 

탕후루는 여기에 재밌는 식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최 대표는 “물성이란 형태와 식감이고, 음식을 느끼는 오감 중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물성이 만들어 내는 식감이 음식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떡을 예시로 들었는데요. 떡이 방금 막 따끈하게 만들어졌든, 식어서 딱딱해졌든, 떡의 영양 성분은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식어서 딱딱해진 떡은 별로 좋아하지 않죠. 떡은 따뜻하고 쫀득한 물성을 가질 때 더 맛있다고 느낍니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명예교수도 “탕후루는 상반된 조직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의견을 보탰습니다. 겉은 설탕이 코팅돼 바삭한데, 안은 부드러운 과일입니다.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오래된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존 앨런 신경문화인류학자는 저서 ‘미각의 지배’에서 포유류의 오랜 먹이가 곤충이었고, 곤충이 바삭거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달콤하면서 바삭거리기도 하는 탕후루의 인기는 어쩌면 예견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깨진 설탕은 깨진 유리만큼 날카로워

 

그런데 말입니다. 탕후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건사고(?)들이 잇따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혀 베임’ 사고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탕후루를 먹다가 혀가 찢어졌다(?)’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과일을 감싸는 설탕 코팅이 날카롭게 깨진 단면에 혀를 다쳤다는 이야깁니다. 대체 설탕 코팅이 얼마나 날카롭기에 혀까지 내걸어야 하는 걸까요.

 

탕후루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유를 살펴봅시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 두 가지 단당류가 글리코사이드 결합(공유결합)으로 합쳐진 형태의 이당류 저분자입니다. 탕후루를 만들 때엔 설탕에 열을 균일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탕을 우선 물에 녹이는데요. 물에 녹았다는 건, 설탕의 최소 단위인 분자가 자유롭게 물에 흩어져 있다는 걸 뜻합니다.

 

잘 섞은 설탕물에 열을 가하면 그때부터 화학변화가 생깁니다. 물이 증발되면서 설탕의 탈수화가 진행됩니다. 포도당과 과당이 이당류 상태를 유지하면서 물 분자가 빠져나가죠. 다시 열을 식혀주면 설탕 분자들은 서로 결합합니다. 연결되는 설탕 분자 개수가 늘어나면서 설탕은 점점 고분자로 변합니다. 노 교수는 “결합된 분자들에 열을 가하면 서로 떨어지려고 한다”면서 “열을 다시 식히면 결합하려는 에너지가 다시 작용하는데, 이때 온도가 얼마냐, 온도가 얼마만큼 빨리 떨어지느냐에 따라 재결정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탕후루의 비밀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뜨거운 설탕 시럽을 비교적 빠르게 식혀 설탕 결정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결정은 원자나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일정한 형태를 이룬 물질을 의미합니다. 소금이 주사위 모양 정육면체로 굳는 것이 대표적인 예죠. 설탕 분자도 결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석 사탕’이라 불리는 락캔디는 커다란 설탕 결정으로 만들어집니다. 설탕 시럽을 천천히 식히면 설탕 시럽 속에 든 미세한 설탕 분자 덩어리나 먼지, 기포 등이 결정을 만드는 ‘씨앗’으로 작용해 결정이 생성됩니다. 천천히, 오래 식힐수록 설탕 분자가 많이 달라붙어서 큰 결정이 만들어지죠. 실제로 락캔디는 설탕 결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큽니다. 커다란 설탕 결정은 퍼지처럼 부드러운 식감으로 승부하는 디저트에서는 피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이런 디저트를 만들 때는 주걱으로 설탕 용액을 계속 저어 설탕 결정이 크게 자라지 못하도록 합니다.

 

반면 탕후루를 감싸고 있는 설탕은 결정을 이루지 않습니다. 이를 화학 용어로 ‘비결정 고분자’라고 부르는데,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결을 이루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비결정 고분자가 바로 유리입니다. 유리는 분자들이 액체처럼 마구 흩어져 있으면서도 고체의 단단한 특성을 갖죠.

 

탕후루의 설탕 비결정 고분자 코팅은 설탕 시럽을 결정이 미처 생성되지 못할 만큼 빨리 식히면 만들 수 있습니다. 큰 결정(락캔디), 작은 결정(퍼지), 비결정(탕후루)까지, 설탕의 굳는 형태를 달리해 고유의 식감을 내는 겁니다.

 

아 물론, 설탕 디저트의 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설탕 시럽을 가열하고 식히는 과정에서 설탕이 단당류로 분해되거나 더 큰 종류의 당으로 합성되기도 하고요, 설탕 시럽에 물, 향료, 단백질 등 다양한 첨가물을 넣기도 합니다. 이런 수많은 변수가 폭신한 마시멜로부터 바삭한 프랄린까지 수많은 디저트를 만들어 냅니다. 가히 설탕을 ‘천의 얼굴’이라 불러도 놀랍지 않은 이유입니다.

 

 

“혀 안다치려면 녹여서 먹으세요”

 

탕후루의 설탕 코팅과 같은 비결정 고분자는 분자의 크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면서 분자들이 결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깨졌을 때 단면이 날카롭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노 교수는 “설탕 결정이 깨졌을 때의 상태는 유리 조각이 깨진 것과 비슷하다”며 “설탕 시럽을 굳혀 만드는 캔디를 보통 구형으로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비결정 고분자 설탕으로 코팅된 탕후루를 안전하게 먹는 방법을 굳이 찾자면 천천히 녹여 먹는 겁니다. 천천히 씹어서 날카로운 설탕 단면들이 혀나 입천장에 닿기 전에 침으로 얼른 녹여야 합니다. 노 교수는 “탕후루를 먹는다면 천천히 맛을 음미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서둘러 먹으면 탈이 난다는 조상들의 말씀은 2023년 탕후루에도 그대로 적용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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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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