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네, 그래서 이과가 일해봤습니다] 네, 그래서 이과가 안구공유기술을 만들어봤습니다

 

“안 본 눈 삽니다.”


장기매매 홍보는 아니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신종 속담(?) 같은 거니까요. 안 본 눈, 또는 본 눈을 거래하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갑자기 과한 애교를 부린다고 하죠. 몸을 배배 꼬며 윙크하는 녀석을 보고 여러분은 눈앞 현실을 잊고 싶을 겁니다. 눈이 썩어들어간다는 과격한 표현을 쓰는 대신 우아하게 “안 본 눈 삽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영화를 처음 본 그 순간의 전율을 다시 느끼고 싶을 때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본 눈을 사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공연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를 때 적합한 표현이죠. 안 본 눈을 사거나, 본 눈을 사거나.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안구를 뽁 뽑아 교체하고 싶을 만큼 간절한 마음은 같습니다. SNS엔 “이과는 어서 눈 거래 방법을 만들라”는 요청도 있었죠. 서둘러 개발에 나서보겠습니다.

 

 1단 냉정해집시다 │ 안 본 눈을 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죠


눈을 새로 갈아 끼우고 싶은 이유는 그 눈으로 보거나, 보지 않은 기억을 얻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기억이 뇌에 저장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바꿔야 합니다. 안 본 눈이 아니라, 안 본 뇌를 사야 하죠.


안 본 뇌를 사도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뇌 중고거래 제안에 응했다고 합시다. 이제 신이 내린 솜씨의 의료진과 수술실이 필요합니다. 뇌는 신경계의 중추가 되는 기관으로 안구, 척추 등 중추신경계의 신경 조직과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이 신경 조직을 하나하나 떼야 합니다. 게다가 뇌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보관함에 들어있는 아주 연약한 조직입니다. 말랑한 젤리 같죠. 뇌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신경 조직을 하나하나 연결하는 겁니다.


2017년엔 최초의 인간 머리 이식 수술이 이뤄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수술에 자원한 건 러시아의 엔지니어 발레리 스피리도노프입니다. 그는 선천성 척수근육위축증을 앓고 있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죠. 수술을 이끄는 이탈리아 신경외과 전문의 세르조 카나베로 박사와 렌 샤오핑 중국 하얼빈 의과대 박사는 스피리도노프의 머리를 세포 활성이 느려지는 12~15℃의 낮은 온도에서 분리한 뒤, 고분자 접착제를 활용해 1시간 안에 새로운 몸의 혈관에 연결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다음 신경 조직을 연결하는 거죠. 당시 수술에 필요한 의료진은 150여 명, 수술 시간은 36시간, 비용은 13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수술은 결국 비용과 스피리도노프의 가정사로 인해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중요한 고민이 남아있습니다. 뇌가 송두리째 바뀐다면, 나의 몸통에 다른 이의 뇌를 이식한 사람을 ‘나’라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의 뇌에 다른 이의 몸통을 이식한 사람을 나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2런 연구도 있습니다 │  선생님, 기억 좀 지워주세요


뇌 이식이라니, 기억 하나 없애려고 벌이기엔 너무 거대한 일이네요. 뇌를 맞바꿀 생각은 살포시 접고 원하는 기억만 없앨 단서를 살펴보죠. 우선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난해 8월 강봉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공포기억이 생겼다 사라질 때 뇌의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은 쥐에게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주고 발바닥에 약한 전기충격을 가해 공포기억을 심어줬습니다. 그리고 뇌에서 공포를 관장하는 부분인 편도체의 기억저장 시냅스를 관찰했죠. 시냅스는 신경세포끼리 연결되는 지점을 뜻합니다.


실험결과, 공포 기억이 생겼을 때는 기억저장 시냅스가 커졌습니다. 며칠 뒤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은 상태로 쥐에게 같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려줘,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기억저장 시냅스가 다시 작아진 걸 확인했습니다. 


기억의 생성과 소멸에 따라 기억저장 시냅스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증명됐죠. 시냅스가 기억의 물리적 실체라는 겁니다. 강 교수는 “다른 기억은 건드리지 않고, 공포기억을 저장한 시냅스만 선택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선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doi: 10.1016/j.neuron.2021.07.003


언젠가는 안 본 눈을 살 필요 없이 근처 병원으로 달려가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안 본 눈 삽니다”란 말 대신 “기억 삭제 잘하는 병원 찾습니다”란 말이 유행하려나요.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2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 진로 추천

  • 의학
  • 심리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