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과학혁명 이전에는 카오스가 세상을 지배했다. 변덕스러운 바람과 기후 변화,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가뭄과 태풍, 빙글빙글 도는 행성의 움직임은 그 시대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지해줄 단순명쾌한 법칙이 필요했을까. 당시 사람들은 자연의 무질서를 신의 변덕 때문이라고 믿었다.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의 뿌리에는 단순한 인과법칙이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단순성에 반응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며 파급효과 또한 크다는 점이다. 고속도로에서 차 한 대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연쇄적으로 교통 혼잡이 일어나고, 작은 유전자변이가 종의 진화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
푸앵카레는 1908년 ‘과학과 방법’이란 책에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매우 작은 원인이 절대 놓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적었다. 그는 기상예보를 주제로 불확실성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기상학자들이 날씨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모든 현상이 우연히 생긴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기는 불안정한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어디선가 태풍이 발생하지만 정확히 어디라고 집어내기는 힘들다. 태풍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을 덮치기도 한다.
1959년 에드워드 로렌츠는 같은 계산식이라도 소수점 아래 자릿수에 따라 오차가 무한히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뒤 그는 카오스에 대한 현대적 이해의 핵심으로 초기 조건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기후의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을 보통 ‘나비효과’라고 한다.
만델브로트는 1975년 ‘부러진 뼈’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프랙탈(fractal)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그는 IBM 연구원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선에서 들리는 잡음이 처음에는 안들리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생긴다는 점을 발견했다. 만델브로트는 이 과정에서 짧은 잡음 구간 안에 다시 동일한 패턴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안정돼 보이는 생태계도 실은 계속 변하고 진화하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이 현상을 ‘붉은 여왕 효과’라고 하는데 여왕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최대한 빨리 달려야 한다. 천적관계인 파리와 개구리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히기 않기 위해 진화한다. 생태계도 카오스 상태에 놓이는 건 마찬가지다.
대중을 위한 과학글쓰기의 대가인 존 그리빈은 물리학, 수학, 생물학, 화학, 기상학, 지질학, 해양학, 천문학 등 현대과학이 다루는 모든 네트워크의 특징을 단순성이라는 키워드로 꿰뚫는다. 복잡한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일으킨 파문이 전체를 뒤흔들지만 네트워크 깊숙이 숨겨진 ‘딥 심플리시티’가 모든 현상을 주도한다는 얘기다.
우주에 널린 원재료로부터 복잡다단하게 진화해온 인간도 어쩌면 ‘딥 심플리시티’라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