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 전에 살았던 한 마리의 개과 동물이 진화해 현재 세계의 개들 몸속에 살고 있다. 지난 8월 11일 세포생물학 분야 권위지 ‘셀’(Cell)에 실린 논문에서 영국 런던대의 로빈 와이스 교수는 개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질환인 ‘성기육종’을 연구한 뒤 이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의 제3저자는 시카고대 통계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김수연 씨다.
성기육종은 개에 발생하는 암으로 자신의 세포 중 일부가 돌연변이로 바뀌어 발생하는 일반적인 암과는 달리 교미나 환부 접촉을 통해 다른 개로부터 전염된다. 예전에는 이 암의 원인이 바이러스 같은 암 유발인자가 전염되기 때문인 줄 알았으나 최근 암세포 자체가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암세포에 감염되면 얼굴이나 생식기에서 종양이 자라며 대개 몇 달 뒤에는 면역력이 생겨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연구자들은 이 성기육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미국, 인도, 브라질, 터키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여러 품종의 개들의 암세포 유전자를 분석했다. 예상대로 암세포는 다른 개에서 전염돼 왔는데, 놀랍게도 모든 암세포는 기원이 같았다. 즉 이것은 약 200~2500년 전에 살았던 회색늑대나 동아시아 지역의 개 한 마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성기육종 암세포는 수세기 전에 살던 개의 세포다. 그러나 돌연변이로 암세포가 되고 다른 개나 늑대에 전염되고 개가 번성하면서 세계에 퍼지게 됐다. 이 암세포가 처음 발생한 개는 이미 죽었지만, 세포는 지금까지 살아 다른 동물에게 병을 일으키는 세균처럼 살아가고 있다.
다른 동물에는 비슷한 예가 없을까? 작은 곰처럼 생긴 유대류 태즈메이니아데빌과 햄스터에서 전염성 암이 알려져 있다. 사람의 경우 자연적으로 암이 전염된 사례가 없지만, 실험실에서 연구되는 세포인 헬라(Hela)세포는 성기육종 세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세포의 주인인 미국흑인여성 헤늘리테타 랙스(Henlitetta Lacks)는 이미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헬라세포는 현재까지도 세계의 시험관에서 엄청난 양이 분열하고 있다.
성기육종 암세포는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사례로 이 생물(?)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논의 대상이다. 성기육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류의 오랜 숙원인 암 정복이나 병원성 세균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기육종 암세포는 과거에는 더 위험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들 암세포를 온순하게 만들었는지 밝힌다면 암 정복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수세기 전에 살았던 한 마리의 개과 동물은 암세포의 형태로 현재까지 전해져 개들에게는 아픔과 괴로움을, 우리에게는 경이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