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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대란 예측하는 법

월요일에 전화하지 마세요

KT나 SK텔레콤 같은 통신회사 홈페이지에 가보면 ‘통화량 증가 예상 달력’이라는 메뉴를 찾을 수 있다. 한달 중 통화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이용자에게 미리 알려줘 불필요한 통화를 막고 통화량 폭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지난해 2월 통신대란 이후 생긴 메뉴다.

지난해 2월 28일 부산,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의 유선전화가 6~8시간 동안 불통되는 사건이 발생해 많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장애 지역에서는 시외전화는 물론이고 시내전화와 긴급전화까지 두절되면서 모든 전화가 먹통이 됐고 휴대전화에서 유선전화로 거는 통화 역시 불가능했다.

통신회사는 이 사건이 갑자기 증가한 통화량 때문에 통신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만일 통화량의 갑작스러운 증가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용자의 전화사용을 자제시키거나 시스템을 증설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카드 결제와 골프장 예약의 공통점

통화량 증가를 어떻게 예측할까. 먼저 언제 전화를 많이 쓰는지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이뤄지는 전화통화를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나눠보면, 사적인 통화보다는 업무용 통화량이 더 많으므로 휴일보다는 평일에 통화량이 더 많을 것이다. 평일 중에서도 특히 한주의 업무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통화량이 더 많을 것이다.

개인용 통화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설 연휴 전날처럼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특별한 날에 많다고 예상할 수 있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일을 넘어 만날 약속을 해야 하는 날에는 통화가 더 늘어난다. 연인끼리 만나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바로 이런 날이다.

또 통신회사 실무자들은 신용카드 결제와 골프장 예약을 통화량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신용카드 결제일 근처에 사람들은 결제금액을 확인하거나 폰뱅킹을 이용해 결제하기 위해 전화를 자주 이용하고, 해당 지역 인근 골프장의 주말 예약이 시작되는 날에는 예약하기 위해 전화사용량이 급증했다.


회귀분석은 통화량 예측뿐 아니라 기업 부채와 부도확률 사이의 관계를 밝히거나 기업에서 적절한 광고 예산을 편성하는데도 쓰인다.


아들 키, 인류 평균으로 회귀한다

이런 원인이 통화량 증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을 이용해 알 수 있다. 회귀분석이란 둘 이상의 변수 사이의 관계, 특히 인과관계를 밝히는 식을 만들고 예측을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인과관계란 두 변수 사이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하루 평균 학습량’이 증가해 ‘중간고사 성적’이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두 변수는 인과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통화량 증가의 원인이 되는 변수를 찾고, 이들 원인변수와 통화량 사이의 관계를 수식으로 만들면 예측을 위한 회귀분석식이 된다. 통화량 예측 회귀식을 가장 간단한 형태로 살펴보자. ${Y}_{i}$는 i일의 통화량이고 ${X}_{1i}$는 월요일인지 아닌지의 여부(월요일이면 1, 아니면 0), ${X}_{2i}$는 휴일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나타내는 원인변수라고 하면, 과거 ${Y}_{i}$, ${X}_{1i}$, ${X}_{2i}$ 값을 수집한 뒤 회귀식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Y}_{i}$=50+2${X}_{1i}$-1.5${X}_{2i}$라는 회귀식을 얻었다고 하자. 이 식은 평균 통화량은 50인데, i일이 월요일이면 통화량이 2만큼 증가하고 휴일이면 1.5만큼 감소한다는 의미다. 이때 월요일 여부(${X}_{1i}$)는 통화량(${Y}_{i}$)과 양의 상관관계에 있는 반면, 휴일 여부(${X}_{2i}$)는 통화량과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고 한다.

회귀분석은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통계학자인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연구에서 유래됐다. 골턴은 아들과 아버지의 키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키 큰 아버지의 아들이 대체로 평균보다 크나 그 아버지보다 키가 작고, 키 작은 아버지의 아들은 평균보다 작으나 그 아버지보다 키가 커서, 결국 아들의 키는 인류 전체의 평균으로 회귀(regress)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의 연구는 예측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아들의 키와 관계 깊은 아버지의 키를 이용해 아들의 키를 예측할 수 있는 기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회귀분석의 유래로 볼 수 있다.

그 뒤 회귀분석은 많은 분야에서 널리 활용됐다. 경제학에서는 소득과 소비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금융 분야에서는 기업 부채와 부도확률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도 한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광고비와 매출액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 기업 입장에서 적절한 광고 예산을 편성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2002년 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부산지역의 실제 통화량 자료를 입수해 앞서 말한 요인들이 통화량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회귀분석을 해봤다. 분석 결과 월요일에는 다른 요일보다 5.7% 정도 통화량이 많고,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평소보다 각각 37%, 61%, 55% 가량 통화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 결제일에는 카드회사 1곳당 4.8%의 통화량이, 골프 예약일에는 골프장 1곳당 35%의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월말에는 4.5%, 분기말에는 8.4%, 어버이날에는 13% 정도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6월과 7월 부산지역 오전 11시대 어느 교환기에서 처리한 실제 통화량을 예측 화량과 비교한 그래프. 통화량은 일요일에 뚝 떨어졌다가 월요일, 특히 월말에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엎친데 덮치는 위험 관리해야

예측식을 이용해 통신대란이 발생했던 2005년 2월 28일의 통화량을 추정해본 결과 이날은 징검다리 휴일 사이의 평일에다 카드 결제일이 몰리고, 월요일인데다가 2월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통화량이 평소보다 평균 230% 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특정 교환기에는 통화량이 평소보다 수천% 증가했고, 이 때문에 통화연결이 잘 안되자 연결될 때까지 다시 시도하는 사람이 늘면서 결국 전체 통신시스템이 과부화를 못 견디고 마비된 것이다.

이 사건 뒤 통신회사는 홈페이지에 ‘통화량 증가 예상 달력’이라는 메뉴를 마련했다. 정부는 통신대란을 방지하기 위해 통신사업자들의 서비스 장애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 뒤 예기치 못한 시스템의 고장 때문에 생긴 장애 외에 통화량 폭주로 인한 통신대란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의 통신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고 그 개발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기술 진보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갑작스런 사고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위험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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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일 박사과정
  • 진행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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