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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과 간질병이 '사랑'받는 이유

무방비 도시

메디컬 평점 ★★★☆☆ 비정한 도시의 생존법칙

영화 줄거리

조대영(김명민 분)은 남모르는 가족사를 가진 광역수사대 강력계 형사다. 그는 7년 전 자신의 친엄마인 강만옥(김해숙 분)을 소매치기 현장에서 검거한 경험이 있다. 한편 소매치기계의 떠오르는 별로 통하며 일본에서 활동하던 백장미(손예진 분)가 한국에서 소매치기 활동을 재개하면서 무방비 도시 서울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한국 경찰은 이들 일당을 소탕하기 위해 광역수사대를 편성하고 조대영을 소집한다. 때마침 그의 모친 강만옥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데….

▒ 영화 ‘무방비 도시’는 타락한 도시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소매치기 조직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다룬 액션물이다. 기계(사람들의 지갑이나 돈을 직접 터는 소매치기 기술자)와 안테나(기계가 소매치기할 때 망을 보는 소매치기 조직원), 바람(기계가 소매치기할 때 바람을 잡아 범행을 돕는 조직원) 등 소매치기 조직원들의 기상천외한 수법과 잔혹한 규율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무방비 도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소매치기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도시인의 현실을 보여준다. 소매치기들은 우리 주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고,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지갑을 털 수 있다. 이런 소매치기들은 마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다. 우리 몸을 지키는 백혈구나 항체가 잠시라도 무방비 상태에 있으면 이들이 언제 어디서 침입해 질병을 일으킬지 모른다.

사실 ‘무방비 도시’에는 우리 눈에 낯설지 않은 질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번쯤은 접해봤을 법한 당뇨병과 간질병이다. 왜 이런 병들은 영화에 자주 등장할까.
 

당뇨병을 앓는 강만옥은 저혈당증을 겪을 때마다 각설탕을 꺼내 먹는다.


각설탕과 저혈당

영화 초반, 소매치기 전과 17범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기술자로 명성을 날렸던 강만옥이 출소한다. 겉보기엔 멀쩡한 그녀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을 부르르 떨며 각설탕을 집어먹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영화 후반, 폭우가 쏟아지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조대영이 강만옥을 뒤쫓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각설탕을 꺼내든다. 하지만 조대영과 맞닥뜨린 그녀는 각설탕을 미처 입에 넣지 못하고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녀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각설탕을 먹으려고 했던 이유는 뭘까.

당뇨병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갑도 훔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소매치기 고수 강만옥도 당뇨병 앞에서는 작은 각설탕 하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당뇨병(糖尿病)은 말 그대로 소변에서 당분이 검출되는 병이다. 원래 우리 몸의 혈액 속에는 당분이 포함돼 있는데, 몸 안의 모든 세포는 이 당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당분이 세포에 의해 사용되지 못하고 소변으로 그대로 배출되는 것이 당뇨병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다. 혈액 속의 당분은 인슐린의 도움을 받아 세포 안으로 들어가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당뇨병에 걸리면 인슐린의 분비량이 줄어들거나(타입 1 당뇨병) 세포가 인슐린의 작용에 저항해 당분이 세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타입 2 당뇨병). 결국 당뇨병에 걸리면 혈당이 정상치보다 높아지고 당분이 콩팥을 통과해 소변에 섞여 나온다. 문제는 당분이 많아도 세포 안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당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세포들이 굶주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혹자는 당뇨병을 ‘풍요 속의 빈곤 상태’라 표현하기도 한다.

당뇨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세포에 당분을 집어넣는 것이다. 인슐린을 주사하거나 경구 혈당 강하제를 복용한다. 이때 생기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저혈당이다. 혈액 속 당분의 농도가 데시리터(dl, 1dl=0.1L)당 70mg 이하로 떨어지면서 식은땀이 나고 심한 공복감과 함께 현기증이 동반된다.

정상인의 경우 저혈당 상태는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발생시켜 음식을 먹도록 하거나 당장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에는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시켜 혈당을 높여 일시적으로 허기를 없앤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의 경우 몸이 저혈당 상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저혈당증이 쉽게 생긴다. 이때 응급 처지 방법은 15g가량의 당을 섭취하거나 설탕물, 꿀물, 과일주스 반 컵, 사탕 2~3개를 먹는 것. 혈당만 정상치로 올리면 증상은 쉽게 사라진다. 영화에서 강만옥이 각설탕을 먹은 이유도 저혈당증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편 당뇨병 환자들이 강만옥처럼 저혈당증을 겪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은 관객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임에는 틀림없지만 의학적으로는 아쉬운 옥의 티다. 영화 ‘대부’ 3편에는 당뇨병을 앓는 꼴레오네(알파치노 분)가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던 도중 기운을 잃고 쓰러진 뒤 오렌지주스를 마시고서야 의식을 회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저혈당 상태가 되면 꼴레오네처럼 기운이 빠져 팔을 들기도 힘들어하는 것이 의학적으로는 맞다.
 

가족도 등진 채 전설적인 소매치기로 이름을 날린 강만옥(가운데). 그녀의 딸이 간질병을 앓는다는 설정은 가족 해체를 드러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일 수 있다.


간질은 절망적인 병?

영화 중반, 조대영의 외할아버지가 사망하자 강만옥은 20년 만에 집을 찾아온다. 그러나 조대영은 강만옥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매몰차게 내쫓고, 그런 그의 바지를 붙잡고 버티는 강만옥을 조대영이 문밖으로 끌어내는 순간 조대영의 누나가 갑자기 전신을 부르르 떨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누나는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주인공이 누나가 걸린 불치병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이다. 상투적이지만 관객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이만한 설정이 없다. 조대영은 “엄마의 가출 이후 찾아온 누나의 간질병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영화감독들이 간질병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간질병은 스크린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병은 아니다. 간질병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이상 뇌파가 우리 몸의 다양한 신경을 통해 전파되는 병이다. 이상 뇌파의 파급도가 작을 경우에는 10초 내외로 짧게 의식을 잃고, 큰 경우에는 감정이나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와 팔, 다리 같은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간질병을 앓는 환자가 의식을 잃고 팔다리를 굽혔다 펴는 발작 증상을 보이는 극단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질병=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간질병이 당뇨병보다 치료하기 더 쉽다. 오히려 당뇨병이 각종 합병증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고 약물로도 치료하기 어렵다. 간질병 환자 대부분은 한 가지 약물만 복용해도 발작 없이 지낼 수 있고, 그렇지 못한 환자들도 발작의 수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약물 치료 외에도 수술을 통해 부교감 신경 자극 기구를 체내에 이식하는 방법이나 케톤식이법(저칼로리, 고지방, 고단백)도 효과가 있다. 영화 ‘아들을 위하여’에서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간질병을 앓는 자식을 위해 케톤식이법을 발명하는 열혈 엄마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기도 했다.
 

문신은 피부 아래층인 진피에 색소가 염색되기 때문에 지우기 어렵다. 아무 대책 없이 소매치기에게 휘둘리는 무방비 도시에서‘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철통수비하는 백혈구와 항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야 하는 건 아닌지….


진피에 염색되는 문신

마지막으로 백장미의 매력을 드러내는 문신을 살펴보자. 문신은 피부에 상처를 만들고 색소를 넣어 그림이나 문자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이미 기원전 3000년 경 얼어붙은 미라에서 십자가, 직선 모양의 문신이 발견됐고, 기원전 2000년 경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문신이 발견됐다. 문신은 종교적 상징이나 충성의 표시, 단체의 아이콘 등으로 사용된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 행위였다.

하지만 문신을 새길 때 명심해야할 점이 있다. 한번 몸에 문신을 새기면 쉽게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피부의 구조 때문이다. 피부는 맨 바깥층인 표피, 그 아래층인 진피, 맨 아래층인 피하지방 이렇게 세 층으로 나뉜다. 표피의 주요 구성 성분은 각질형성세포인데, 이 세포는 천천히 위로 이동하면서 각화과정을 거쳐 각질층을 만든다. 각질층이 탈락해 떨어져 나오는 것이 소위 ‘때’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피는 섬유조직과 다당질이 주요 성분이며 혈관, 신경, 근육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의 세포들은 표피와 달리 외부로 탈락되지 않는다. 피부에 문신을 하면 색소가 표피 아래쪽에 있는 진피에 염색된다. 바로 이점 때문에 문신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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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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