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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의 주소·운명·개성·목적 결정하는 '형태 조성지시유전자'발견

어떤 미지의 힘의 작용으로 생명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것일까. 최근 과학계에서는 생물의 발생단계에서 형태를 조성하는데 안내 역할을 하는 유전자의 존재를 발견,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근착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형태조성지시유전자' 발견소식을 싣는다.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릴 정도의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 어떤 실제적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고슴도치'라는 이름이 붙여진 한 무리의 유전자들의 발견보고는 경우가 달랐다. 발생생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에 대해 평가를 유보하거나 의심하는 일반적 관행을 벗어나, 밝혀진 결과의 성과를 열열히 칭송하는데 인색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25년간 존재 추정 돼온 형태조성지시 유전자

생물학 권위지 '셀(Cell)' 이번 호에는 발생생물학자들이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완전한 동물로 발생하는 복잡한 과정을 탐구하면서 지난 25년간 찾아오던 것을 드디어 밝혀냈다는 세 팀의 과학자들의 보고가 실렸다. 이들은 초기 배(胚:사람의 경우 8주 미만의 태아를 가르킴)에 작용해서 배(胚)가 모양과 형태를 갖추도록 하는 것, 즉 조직의 형태가 분명치 않아 무엇이라 표현할 수조차 없는 작은 부위가 팔다리 손가락 두뇌 척수(脊髓)를 포함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몸의 형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유전자들을 분리해 낸 것이다.

연구자들로서는 이미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분리하기는 아주 어려웠던 모포겐(morphogen:형태 조성자)이라는 분자들이 이 유전자들로부터 만들어진다. 모포겐이라는 말은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고슴도치 단백질은 바로 그 중 하나다.

일단 배(胚) 안에서 작동이 시작되면 그 분자들은 느린 속도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조직이 최초로 생겨나는 돌기 쪽으로 이동해서 구분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팔과 손, 그리고 손가락들이 배(胚)의 한 귀퉁이에서 만들어지고 중심 부위에서는 척추와 늑골이, 두개골 안에서는 뇌가 생성된다. 모포겐은 접촉하는 세포에게 몸에서 그들이 있어야 할 위치를 지정해 주고 그들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한다. 모포겐은 세포의 주소, 운명, 개성, 그리고 생명체 안에서의 목적 등을 결정해 주는 것이다.

'고슴도치유전자'라는 이름은 맨 처음 초파리에서 발견된 이 유전자에 돌연 변이가 일어나면 초파리에 뻣뻣한 털이 생겨 그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초파리 안에서 이 유전자의 정상적인 기능은 성장을 지시하는 것이다. 최근의 세 팀의 보고에 의하면 같은 유전자가 척추 동물에서 구조의 설계를 관장한다고 한다.

보고서들에 의하면 고슴도치 유전자들은 실험실의 연구에서 흔히 쓰이는 동물인 생쥐, 얼룩무늬 물고기(zebra fish: Cyprinidae brachydanio), 병아리로부터 분리되었는데, 이들 동물들은 진화상에서 유연 관계가 먼 것들이다.

하버드의대 발생생물학자이자 세 보고서 중 하나의 대표 저자이기도 한 클리포드 태빈(Clifford J.Tabin) 박사는 "이 신호 분자들은 아마도 척추 동물의 발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자로 판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유전자에 대한 작업의 결과가 분명해졌던 당시의 기분을 마치 날아갈 듯이 기뻤다고 술회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에게서는 아직 이 유전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고슴도치 유전자가 사람의 배(胚)에서도 작은 물고기에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에 있는 제국암연구기금의 분자발생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면서 또 다른 새 보고서의 수석연구자인 필립 잉험(Philip W.Ingham) 박사는 만약 그렇지 않다고 판명된다면 과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정도다.

발생의 커다란 수수께끼는 이제 윤곽이 잡혀가고 있고 연구자들은 그들이 남아있는 형태 발생의 빈 그림을 채우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발생의 바로 다음 단계에는 고슴도치 분자들과 진화상에서는 떨어져 존재하지만 역시 신체를 열심히 만들어나가는 필수적인 인자들이 참여한다. 연구자들은 이제 고슴도치분자들과 혹스 유전자(Hox gene)라고 널리 알려진 것을 포함하는 이 인자들 사이에 어떠한 작용이 있는가를 알아내는데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에 있는 국립의학연구소 발생생물학 실험실장인 짐 스미스(Jim Smith) 박사는 "이것은 특별한 연구다. 아주 매혹적인 작업이고 내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내가 1976년 팔다리의 발생에 관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미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전에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림1) 고슴도치 유전자가 발현된 세포들의 위치
 

의학에 유용한 활용 기대돼

본래 이 작업은 아주 기초적인 성질의 것으로 자연에 대한 호기심의 산물이지 특정한 의학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발견이 머리와 척추의 질환뿐 아니라 뇌의 퇴행성 질병을 치료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버드대 발생생물학자이자 최근의 보고서 중 세번째 것의 대표 연구자인 앤드류 맥마헌(Andrew P.MeMahon) 박사는 "요즘 사람들은 중추 신경계의 초기 발생 단계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매개하는 분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신경 세포를 자라게 함으로써 고칠 수 있는 질병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신경계 발생의 기본적인 신호들을 이해하는 것은 신경학적인 재생을 가능케 하는 길의 출발점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고슴도치 모포겐은 과거 전능한 모포겐의 역할을 하는 후보자로 제안됐던 비타민 A(혹은 retinoic acid)에 대한 점점 커져가던 발생생물학자들의 불만을 덜어 주었다. 수년 전에 널리 공표된 보고서에는 비타민 A가 오랫동안 찾던 신체계획을 수립하는 모포겐일 것이라는 제안들이 실렸었다. 하지만 이 실험의 측정 자료에는 상당한 오차가 있었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비타민 A가 과연 배(胚)와 같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작용하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고슴도치 유전자는 비타민 A가 실패했던 결정적 실험들을 모두 통과했다. 이는 모포겐에 대한 과학적 이론들이 설정했던 성질들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고슴도치 유전자는 발생의 정확한 시간과 적절한 장소에서 작동되거나 발현되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배(胚)를 조작해서 고슴도치 유전자의 발현 경로를 약간 변화시키면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섬뜩한 정도로 발생상의 돌연변이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고슴도치 유전자가 원래 발현되는 장소에 인접한 조직에 활성화된 고슴도치 유전자를 삽입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판에 찍은 듯 똑같은 날개가 나타나도록 할 수 있었다.
 

(그림2) 초기 배(胚)에 고슴도치유전자가 작용하는 메커니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 상당수

새로운 결과에 대해서 잉험 박사는 '신체 건축가'로서의 비타민 A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초파리(학명:Drosophila)를 가지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보다 복잡한 종(種)들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단한 동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매우 현명한 처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었다.

스탠포드 의대 발생생물학 및 유전학 교수인 매튜 스코트(Matthew P.Scott) 박사는 "처음에 곤충에서 분화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던 분자들이 척추동물의 성장에서 보이는 성질을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 결국 밝혀졌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고 획기적인 진전이며 모형 생물의 힘을 옹호해 준 것이다"고 말했다.

새로운 발견을 둘러싼 흥분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그들이 밝혀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람의 경우 십중팔구는 고슴도치 유전자가 임신 15일 경에 작동하기 시작해서 중추신경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대개 임신 28일 경이면 그 작용을 멈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작동을 개시한 직후에 신체의 팔다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형태 발생이 이루어지도록 고슴도치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고슴도치 분자들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 그것들이 어떤 종류의 단백질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배의 세포를 특정한 운명에 적응하도록 하는지는 모두 불분명하다. 고슴도치 단백질들이 이전에 알려진 곳들과 다르다는 것은 유리한 점인 동시에 장애물이기도 하다. 유리한 이유는 과학자들은 신기한 것을 좋아하고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분자들은 발생의 신비를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 분자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장애물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척추동물에서 4개의 서로 다른 고슴도치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아마도 더 많은 고슴도치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과학자들이 '소닉(Sonic: Sega사의 컴퓨터 게임에서 유래된 명칭) 고슴도치'라고 부르는 네번째로 발견된 유전자는 유명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처음에 존 사운더스(John Saunders) 박사의 독창적인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모포겐을 찾기 시작했다. 사운더스 박사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배(胚)의 이식(移植)된 부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공들여 연구했다.

그 결과 발가락이나 팔다리가 정상인 경우보다 많거나 비정상적으로 생긴 기괴한 동물들이 태어났다. 이러한 결과는 항상 일관되고도 정확하게 나타났다. 이 사실에서 최초의 배(胚)에 어떤 중요한 부분이 존재해서, 주변 세포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통제소'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극성(極性)을 가진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신호단백질은 농도의 차이에 따라 세포에 작용

스코트 박사는 당시의 기본 생각은 이런 신호를 보내는 중심들이 주변 세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을 방출하고 그들의 운명을 계획한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신호단백질은 농도의 차이에 의해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이론에 의하면 중앙 지역으로부터 확산되는 단백질은 널리 퍼져감에 따라 점점 농도가 묽어진다. 정보단백질을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세포들은 많은 경우 하나의 행동 경로를 선택한다. 배(胚)에서 팔이 될 부분을 예로 들어 보면, 확산하는 신호 분자의 양이 많으면 세포는 새끼 손가락의 역할을 하도록 준비할 것이고 옅은 농도라면 세포는 엄지 손가락이 되도록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신경생물학자들도 이식실험을 통해 위 이론의 증거들을 모았다. 중앙신호체계는 발생하고 있는 뇌가 제 형태를 갖추도록 도와준다. 이 경우에 정보를 가지고 있는 영역은 배(胚)를 구성하는 구조들 중에서 척삭(脊索)과 상판(床板)이라는 두 곳이다. 척삭은 발생하는 생물의 일시적인 골격 역할을 하는 딱딱한 막대고 상판은 부푼 모양의 조직으로 결국 척수(脊髓)가 되는 곳이다. 과학자들은 이 두개의 구조물이 협력해서 주변의 세포들이 후뇌(後腦) 전뇌(前腦) 운동신경 혹은 신경계의 다른 구성원 중 어떤 부분이 될 것인가를 결정해 주는 강력한 정보를 가진 분자를 분비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확산 가능한 안내자'라는 모포겐의 개념이 탄생했다.

최근의 초파리를 사용한 작업에서 고슴도치 유전자가 애벌레의 신체 부위 성장을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세 팀의 연구진은 척추동물에서 이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찾으려는 노력과 고슴도치 유전자가 동물의 성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로 생각했다.

그 결과는 그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소닉 고슴도치 분자가 계속해서 찾던 신체의 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판명된 것이다. 이것은 극성을 가진 영역이라고 알려진 바로 그 자리 언저리에서 발현된다. 그리고 초기 중추 신경계의 척삭과 상판에 정확히 놓여있을 때 발현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소닉 고슴도치 유전자만을 조작해서 이전의 이식 실험에서 볼 수 있었던 돌연변이들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은 소닉 고슴도치 분자들이 말로만 알려지던 바로 그 모포겐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아직 그들이 찾아낸 세개의 다른 고슴도치 유전자들의 역할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세개의 유전자들은 그 작용 범위가 더 제한되어 성(性)세포와 같은 특정한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소닉 고슴도치 단백질의 작용 방식을 이해하려는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포들에서 분비된 그것이 세포들로 하여금 어떻게 그 명령에 따르도록 설득하는지가 연구 대상이다. 과학자들은 이 단백질이 혹스 유전자군(群)의 일원일 것으로 보이는 우두머리 유전자의 반응을 북돋우는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이 강력한 우두머리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을 차례로 발현시키고 여러 유전자들이 함께 세포의 운명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쥐의 경우 포배기 이후 고슴도치유전자가 작동돼, 세포들의 특정한 역할들이 분화되기 시작한다.
 

번호냐 이름이냐 고슴도치 유전자 이름 둘러싸고 학자들간 의견충돌

배(胚)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고슴도치 유전자에 이름을 붙이는 문제를 둘러싸고 연구팀들 간에 마찰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양한 유전자들에 번호를 매기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문자로 명명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버드 의대 발생생물학자인 클리포드 태빈 박사는 새로 발견되는 유전자의 이름을 진짜 고슴도치 종(種)의 이름을 따서 지을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방식은 처음 발견된 세개의 유전자에 적용되어 그 세개의 유전자는 각각 인디언 고슴도치(Indian hedgehog), 문랫 고슴도치(Moonrat hedgehog), 데저트 고슴도치(Desert hedgehog)라 명명됐다.

하지만 태빈 박사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고 있는 로버트 리들(Robert Riddle) 박사는 가장 중요한 고슴도치 유전자를 발견했을 때 위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새로 발견한 유전자를 세가(Sega)사(社)의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등장 인물에서 따온 이름인 소닉 고슴도치(Sonic hedgehog)라고 지었다.

다른 많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름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이름을 짓는 것은 고상한 분자를 하찮게 만든다는 것이다. 런던의 국립의학연구소 발생생물학 실험실장인 짐 스미스 박사는 "이런 발상은 마치 당신이 술집에서 잡담을 하다가 '이것의 이름을 소닉이라고 지으면 재미있겠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그러나 당신은 정식으로 그럼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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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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