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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이라는 체로 인문학을 걸러봤습니다”

 

역사, 정치, 경제, 글쓰기, 여행까지 소위 말하는 ‘문과’ 영역을 섭렵한 지식인이 처음으로 과학을 소재로 책을 냈다. 과학 에세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출간하며 오랫동안 간직해온 과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유시민 작가를 

7월 4일 서울 북촌의 과학책방 갈다에서 만났다.

 

Q. 오랫동안 다양한 인문, 사회과학 책들로 독자들을 만나온 작가님께서 과학 에세이를 출간하셔서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도 특히 높은 듯합니다. 책을 집필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과학동아 독자 여러분. 글 쓰는 문과 남자 유시민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긴 했는데 그것으로 먹고 살진 않았습니다. 그때그때 재밌는 인문학 주제로 오랫동안 글을 썼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익숙한 주제가 재미가 조금 덜해지더군요. 

 

그 무렵에 아내가 그동안 읽은 과학 책들에 대해 책을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2009년부터 과학 대중서들을 밀도 있게 읽어서 벌써 15년 정도 지났으니 그 경험들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인문학 저술가로서 과학을 소재로 집필하시는 과정이 그동안의 책들과는 다른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재밌었죠. 책은 공부해가며 써야 재밌거든요. 과학은 제게 낯선 분야여서 특히 좋았습니다. 기존에 쌓아 놓은 지식들을 꺼내는 식의 집필도 있지만 그런 작업은 나 자신이 고갈되는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이 책처럼 하나하나 공부하고 고민하며 책을 쓰면 재밌어요. 처음 가는 도시를 여행할 때의 즐거움과도 비슷하죠.

 

Q. 과학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작가님만의 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동안 습득한 인문학의 정보, 공부를 과학이라는 체로 쳐서 거른다고 생각하며 과학 대중서들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인문학 정보들이 걸러질 때의 느낌을 포착하며 과학을 접하는 거죠. 그동안의 인문학에 과학의 언어라는 렌즈를 비춘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내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거나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과학의 지식들을 놓치지 않고, 내가 이미 알던 것들이 얼마나 타당한지 자문하는 단서로 삼았죠. 이렇게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나름대로 찾아갔습니다.

 

Q. 도입부에 등장하는 ‘원더풀 사이언스’를 비롯해 책 전반에 다양한 과학 대중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좋은 과학 대중서를 고르는 작가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문과 남자인 제 감정을 동요시킬 과학 대중서를 찾아 읽습니다. 그중에서도 과학 연구자들이 느끼는 배움과 깨달음의 경이를 보여주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는 제가 과학칼럼니스트라면 쓰고 싶은 문체입니다. 이 책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추천해줬죠. 미국 ‘뉴욕 타임스’의 베테랑 과학전문기자인 그의 이 책은 전업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역할의 중요성과, 대중과 어떻게 과학으로 소통해야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나무가 겨울을 ‘난다’는 사실을 묘사한 ‘랩걸’도 경이감을 줬습니다. 집 주변에서 늘 접했던 나무들이 이후로 의미 있게 다가왔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자신의 한 걸음으로부터 지구 둘레까지 구한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인간이 작은 방법으로 큰 일을 생각하고 해낼 수 있는 존재임을 느꼈죠.

 

Q. 책에서 소개한 여러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과학자를 만날 수 있다면, 누구와 만나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갈릴레오 갈릴레이 선생을 만나 밥을 해드리고 싶네요. 갈릴레이 선생은 지동설을 규명했다는 이유로 노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의 작은 집에 유폐된 채, 딸들이 사는 근처의 수녀원만 몰래 오가는 고독한 시간을 보냈어요. 바로 그 집에 갔을 때, 그의 쓸쓸함이 새삼 실감되더군요. 좁은 방에서 자신이 밝힌 우주의 근본 질서를 홀로 생각하던 노인이 떠올랐습니다. 질문 같은 건 떠오르지 않네요. 그냥 그분께 파스타를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Q. 책에선 과학을 자의적으로 전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주장들도 짚어주셨습니다. 다윈주의에 대한 접근이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다르다거나, 백신이 유해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례 등이 떠오르는데요. 이런 비과학적 주장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요?

 

과학엔 우리의 호불호나 희망사항과는 무관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학하는 마음이 부족해 이런 면을 거부하는 거죠. 그래서 과학을 연구하고, 알리고, 소비하는 역할 각각이 중요합니다.

 

또 과학자들이 설득하는 데 오히려 한계가 있는 과학적 이슈들이 있습니다. 백신 유해론을 보면, 백신을 안 맞아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경험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백신을 맞아서 발생하는 집단면역입니다. 내가 백신을 안 맞아도 전염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남들 대부분이 맞은 백신의 집단면역 효과를 증명하는 사례죠. 보험학 같이 문과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백신과 면역의 원리 같은 과학 지식을 깊이 겸비하면 백신 유해론과 같은 주장들을 더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Q. 책에서 사회과학, 마르크스 등에 몰두했던 ‘문과 학생’의 기억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시의 유시민과, 과학에 매료된 현재의 유시민은 각각 인공지능(AI)의 미래상을 어떻게 전망할지 궁금합니다.

 

제 또래 문과들은 인공지능의 개념을 체코 작가 카펠 차페크가 100여 년 전에 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한 로봇이 도덕적 판단력을 가지면서 인간을 절멸시킨다는 내용이죠. 과거였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상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천연지능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는 시대가 온다는 데 동의합니다.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3년에 쓴 논문에서, 문답을 나눴을 때 70%의 확률로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인공지능이 등장하리라 예견했습니다. 이 논문은 바로 지금 쓴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새삼 놀랍습니다.

 

찰스 다윈은 영장류도 감정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천연지능이 도덕적 판단력, 자아 정체성이 부족한 동물에서 인류의 뇌로 진화했다면, 인공지능도 이런 경로로 인간과 같은 수준에 이르리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천연지능과 동등한 인공지능까지 필요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Q.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과학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으신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책에도 적었지만 일단 저는 문과 학생들 대부분처럼 수학을 잘 못하기 때문에 수학보단 관찰과 추론, 혹은 다른 과학자들이 수학으로 확립한 기초 연구들을 토대로 연구하는 분야, 예를 들면 동물행동학을 배우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패트리샤 맥코넬의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같은 책은 너무 재밌었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한 개 훈련사가 되면 어땠을까요. (웃음)

 

Q. 과학동아는 중고등학생들이 즐겨 읽는 잡지이기도 합니다. 과학동아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과학은 매우 중요한 교양의 한 영역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폭넓게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과에 진학해도 폭넓게 다양한 과학을 알아두면, 앞으로의 삶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 50년 동안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지난 15년 동안 과학 대중서를 읽었습니다. 이 책들과 함께 세상과 인간의 감정 등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죠. 과학은 모두에게 필요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 기질과 취향에 맞는 과학을 과학 대중서, 필자, 분야를 찾아가며 꾸준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수학을 잘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며 시작하는 수학 에세이라니. 이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무척 어려운 수식이나 이론으로 채워진 수학 ‘에세이’는 아닐 거라고 안심시키는 첫 문장이었다.

 

저자는 국내 유일한 수학잡지인 ‘수학동아’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는 SF작가이자 번역가로 활약하고 있다. 조금 놀라운 점은 그 역시 많은 독자들처럼 수학 전공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공업수학을 배운 것이 마지막 수학 공부였고, 그마저도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수학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수학자와 ‘수학 덕후’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수학 세계 밖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수학을 풀어내는 작업을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해온 것이다. 그야말로 수학을 얼마나, 어떻게 넓고 얕게 배울 수 있는지 얘기해줄 적임자다.

 

저자는 일상 곳곳에서 수학과 우리의 접점을 찾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예측하는 수학 모형에 감탄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를 볼 땐 수학으로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 고민한다. 이때 그가 떠올리는 수학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수학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일 때도 있고, 수학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을 짚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들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때 드러난다. 수능 시험의 수리영역 문제를 보며 옛날엔 어떻게 풀었는지 추억에 잠겼다가 이내 문제 풀이와 관련된 재밌는 실험을 소개하는 식이다. 더하기, 빼기처럼 기초적인 연산만 필요한 문제도 표현 방식에 따라 정답률이 달라지는 실험을 보면 수학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수학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쉽게 풀어낼지를 아울러 이해하는 수학 커뮤니케이터의 정석을 보여준다. 수학이 재능 있는 소수의 영역이란 편견에서 벗어나,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수학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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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라헌 에디터
  • 사진

    남윤중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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