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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퇴출! 행성이 뭐길래?

76년 만에 '꼬마행성'으로 전락

지난 8월 24일 오후 3시 32분 체코 프라하의 제26회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장은 수백명의 천문학자들이 치켜든 노란 표지의 물결로 뒤덮였다. 태양계 행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이 표결의 결과로 명왕성은 행성 자격을 박탈당했다. 태양계 행성은 한때 12개로 는다는 뉴스가 나왔다가 결국 명왕성이 퇴출돼 8개로 줄었다. 명왕성은 왜 퇴출됐고 도대체 행성이란 뭐기에 이럴까.

뜻밖에도 이전까지 ‘행성’에 대해 공식적인 정의를 내린 적이 없었다. 고대에는 하늘의 정해진 위치에 있는 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떠돌아다니는 천체를 ‘방황하는 별’(wandering star)이라고 불렀고 17세기 망원경이 발명되면서부터는 태양 주위를 도는 크고 둥근 천체를 모두 행성으로 간주했다.
 

지난 8월 24일 제26회 국제천문연맹 총회장이 노란 표지로 뒤덮였다. 수백명의 천문학자들이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시키는 '행성 정의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천문학계 ‘민심’ vs 행성정의위원회

이번 IAU 표결의 핵심인 명왕성의 행성 지위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1930년 미국의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한 당시부터 시작됐다. 천왕성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미지의 행성 ‘X’를 80여 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던 천문학자들에게 지구의 달보다 작은 크기의 명왕성은 실망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1919년에 창설된 IAU는 발견 당시 명왕성을 행성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이래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 벨트에서 커다란 얼음 천체들(태양계가 형성되고 남은 잔해)이 속속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카이퍼 벨트 천체는 크기가 명왕성에 견줄 만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어났고 2005년에 발견된 2003UB313이 명왕성보다 크다는 사실이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에 의해 밝혀지면서 논란은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이들 천체 역시 행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논란에 앞장선 사람이 바로 2003UB313을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였다. 그는 제나(Xena)라는 비공식적 이름까지 붙인 2003UB313이 열번째 행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태양계 천체의 명명을 책임지고 있는 IAU가 2년 전 19명의 행성과학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행성의 정의에 대한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다. IAU는 다시 올해 초 천문학자 외에 작가와 사학자까지 포함하는 7명으로 행성정의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번 총회의 표결에 들어가기 약 1주일 전인 8월 16일 이 위원회가 제출한 초안에는 태양 주위를 돌되 항성(별)이나 위성이 아닌 둥근 형태의 천체는 모두 행성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9개 행성 외에도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소행성 세레스와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 카론, 그리고 2003UB313의 세 천체가 새롭게 행성의 지위를 부여받아 태양계의 행성 수는 12개로 늘어날 전망이었다.

그러나 이 초안은 즉각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논란의 초점은 행성의 정의를 크기나 모양과 같은 내부적 특성뿐 아니라 공전궤도의 형태나 주위에 다른 비슷한 천체들의 존재 여부와 같은 외부적 특성에도 근거해야 하지 않는가였다. 특히 행성의 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행성대나 카이퍼 벨트처럼 수많은 천체가 비슷한 궤도를 공유하는 경우 그 중 일부 천체만 행성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즉 진정한 행성이라면 자신의 궤도 영역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주위 다른 천체들을 합치거나 쫓아내 주변을 정리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학적 논란은 별개로 치더라도 초안의 정의를 따를 때 앞으로 수십개, 심지어는 수백개의 행성이 더 나올 가능성 역시 일반 대중에게 매우 혼란스러웠다.

결국 2년에 걸친 산고 끝에 탄생했던 초안은 2번의 공개토론을 거치면서 불과 며칠 새 대폭 수정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행성정의위원회는 초안을 수정한 뒤 표결에 붙였다. 이 수정안에서도 부가조항을 덧붙여 명왕성을 여전히 ‘행성’으로 남기려고 발버둥쳤다. ‘행성’을 명왕성을 제외한 8개의 ‘고전 행성’(classical planet)과 명왕성을 포함하는 ‘왜행성’(dwarf planet, 矮行星)의 두 종류로 나누자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이 조항은 통과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행성정의위원회가 천문학계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8월 24일의 투표에서 최종 확정된 정의에 따르면, 행성은 (a)태양 주위를 돌면서 (b)충분히 큰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 때문에 둥글며, (c)자신의 궤도영역에서 소위 ‘짱’으로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물리친 천체다. 이에 따라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의 8개만 ‘행성’으로 남게 됐다. (a)와 (b)의 조항만 만족하면서 위성이 아닌 천체들은 ‘왜행성’으로 명명됐다.
 

지난 8월 16일 행성정의위원회가 제출한 초안에 따라 행성이 될 수 있었던 1차 후보천체들. 초안이 통과됐다면 앞으로 수백개의 행성이 더 나올 뻔했다.



최대 소행성 세레스의 전철 밟다

명왕성을 포함한 왜행성은 ‘꼬마행성’이라 할 수 있지만 행성이 아니다. IAU 초안에서 이중행성으로 잠시 유명세를 탔던 카론은 그냥 위성으로 남았다. 앞으로 왜행성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 확실하지만, 현재 인정된 8개의 행성 외에도 미래에 새로운 ‘행성’이 추가될 가능성은 있을까. 아직 카이퍼 벨트의 바깥 경계가 어디쯤인지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설사 지구보다 더 큰 천체가 발견될지라도 (c)조항에 걸려 새 행성으로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

어찌됐건 이번 IAU 총회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의 핵심은 명왕성이었다. 7인 위원회가 제출한 초안과 최종 결의안 간의 가장 눈에 띠는 차이도 바로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의 유무였다. 아마도 명왕성이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어서인지 어떤 미국 천문학자는 IAU의 결정에 대해 8월 24일이 ‘명왕성을 잃어버린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성이 됐다가 밀려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레스는 1801년 발견 당시 행성으로 등극했다가 다른 소행성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50년 뒤 행성의 위치에서 쫓겨난 전력을 갖고 있다. 명왕성 역시 카이퍼 벨트의 발견과 함께 76년 만에 행성의 자리를 내놓게 돼 세레스의 전철을 밟은 셈이 됐다.

또한 이번 IAU의 결의안에서 주목할 점은 (a)조항에 명시했듯이 일단 태양계 행성에 대해서만 정의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태양계 내 집안싸움만 해도 골머리가 아픈 판이라 현재까지 200개가량 발견된 외계행성뿐 아니라 별에 속박되지 않은채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떠도는 행성들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논란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이미 일부 천문학자는 IAU의 이번 결정에 대한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 중에는 올해 1월 명왕성을 탐사하러 떠난 ‘뉴호라이즌스’ 프로젝트팀을 이끄는 앨런 스턴 박사도 포함돼 있다. 뉴호라이즌스가 온갖 우여곡절 속에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탐사되지 않은 행성’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가까스로 발사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이들은 거의 1만명에 가까운 IAU 회원 중 겨우 4%인 400여명만 이번 투표에 참가해 천문학계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2003UB313의 발견자로서 논란에 불을 지핀 당사자 중 하나인 브라운 교수 자신은 IAU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설혹 자신이 발견한 천체가 행성이 되더라도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덩달아 모두 행성이 된다면, 행성으로 지정받는 의미가 퇴색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재로는 2009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다음 IAU 총회에서 행성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교과서 개정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태양계 외곽의 수많은 얼음천체들로 구성된 카이퍼 벨트의 상상도. 왼쪽 멀리 태양이 보인다.


왜행성 : 태양 주위를 돌며 둥근 천체로 영어명은 ‘dwarf planet’이다. 태양 같은 별의 최후인 고밀도 천체를 ‘백색왜성’(white dwarf)이라 부르는데서 착안한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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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유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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