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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PICK] 백악기 한반도에 ‘참새 공룡’ 살았다

1cm,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발자국

 

중생대 백악기, 아주 작은 크기의 공룡이 호숫가 주변의 촉촉하게 젖은 땅 위를 걷고 있었다. 공룡은 젖어 있는 땅 중에서도 ‘적당하게 굳은’ 진흙 위를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겼다. 발자국의 크기는 불과 1cm밖에 되지 않았다. 엄지손톱 크기 정도다.

 

대부분의 육식 공룡은 두 발로 걷고, 뒷발에 있는 발가락 4개 중 3개를 땅에 디디며 걷는다(첫번째 발가락은 위치가 높고 뒤꿈치쪽에 있어 땅에 닿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공룡은 두 번째 발가락의 발톱이 낫 모양으로 날카롭게 휘어져 있었다(아래 그림).

 

 

이 발가락은 평상시에 위로 들어 올려져 있어서 걸을 때 땅에 닿지 않거나 일부만 닿았다. 그래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발가락 자국, 즉 발가락 자국은 두 개만 남았다.

 

공룡의 발자국이 남은 진흙은 단단히 굳어져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에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진흙이나 모래가 흘러 들어왔고, 발자국 위에 쌓였다. 진흙은 약 1억1000만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단단한 퇴적암으로 변했다. 

 

1억1000만 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이곳에 혁신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퇴적암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침내 아주 작은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cm 공룡 발자국 화석 발견

 

2010년 7월 중순의 어느 여름날, 고생물학자 몇 명은 중생대 백악기 진주층이 분포하고 있는 경남 진주 혁신도시 조성 공사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지침에 따라 화석이 발견되는지를 조사하는 중이었다. 특히 진주층은 중형 육식 공룡 발자국, 민물조개가 이동하면서 남긴 흔적, 나무 파편 화석 등 여러 화석들이 발견된 곳이어서 고생물학자들은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다.

 

머리 위 뜨거운 태양이 저물어 가기 시작하는 오후 4시쯤, 아주 작은 흔적이 이들의 눈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산을 깎아내면서 남은 작은 돌조각들 사이로 두 개의 발가락 자국이 보였다. 매우 작았지만, 같은 모양이 규칙적으로 분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 연구의 책임자였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는 화석 발견 현장에는 없었다. 하지만 발자국 화석이 찍힌 사진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받자마자, 이 화석이 두 개의 발가락으로만 땅을 딛고 다니는 랩터 공룡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필자는 2006년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추도에서 국내 최초로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함안엔시스(Dromaeosauripus hamanensis)’라고 이름 붙여진 랩터 공룡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고, 이어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지역에서도 랩터 공룡의 발자국을 발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공룡에서 ‘랩터’라는 이름은 비공식적인 명칭이다. 랩터(raptor)는 원래 영어로 육식성의 사나운 새인 맹금류를 뜻한다. 랩터 공룡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 것은 영화 ‘쥬라기 공원’과 ‘쥬라기 월드’를 통해서 ‘벨로시랩터(velociraptor)’ 공룡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서부터다. 벨로시랩터는 공식적으로는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의 육식 공룡에 속한다. 

 

초소형 랩터 공룡 발자국의 발견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전화해 공사 현장 책임자에게 발견 사실을 알리고 발견 장소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발자국이 발견된 곳은 대형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공사용 임시도로 바로 옆이었다. 임시도로가 1m만 더 넓었어도, 굴삭기가 조금만 옆으로 지나갔어도 이렇게 희귀한 발자국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곧바로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발자국의 깊이는 1mm 정도에 불과했으나 발자국이 발견된 암석은 매우 단단한 사암이었고, 두께는 1m가 넘었다. 일반적인 발굴 방법에 따라 사람의 손으로 발굴하다 보니 주변 암석이 여러 조각으로 깨져버렸다. 그나마 발자국이 보존된 보행렬(일정한 간격으로 걸어간 흔적)은 큰 손상 없이 발굴해낼 수 있었지만, 깨진 암석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때의 호된 경험 덕분에 발자국 화석을 손상 없이 안전하게 발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새로운 발자국 화석 발굴 방법’을 개발해 2015년 특허도 출원했다. 발굴하고자 하는 화석 전체를 별도의 해체 작업 없이 하나의 판으로 안전하게 발굴하는 방법으로, 단단한 암반에 화석이 보존된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잘 맞다.

 

 

참새 크기의 ‘미니 공룡’으로 밝혀져

 

1억1000만 년 만에 발굴됐지만, 발자국 화석의 정체가 밝혀지는 데는 또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0년 발굴 이후 다른 발굴 조사에 밀려 오랜 시간 연구실 수장 공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6년이 지난 2016년, 고성국제공룡심포지엄에서 해외 학자들을 초청해 이 발자국 화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앤서니 로밀리오 호주 퀸즐랜드대 박사후연구원과 리다 씽 중국지질대 지구과학및자원학원 교수 등 해외 고생물학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리다 씽 박사는 이렇게 작은 것이 공룡의 발자국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사진 분석을 통해 발자국 화석이 공룡의 것임을 확인하고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2018년 11월 15일자에 게재됐다. doi:10.1038/s41598-018-35289-4

 

 

공룡의 실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골격 화석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자국 하나만으로도 공룡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발자국의 형태를 분석해 목이 긴 용각류 공룡인지, 두 발로 걷는 초식 공룡인지, 육식 공룡인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정확히 어떤 종의 발자국인지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발자국만으로 공룡의 크기(골반까지의 높이), 몸통 길이, 몸무게, 걸음걸이(걷기, 뛰기, 뜀뛰기), 이동 속도, 무리 행동, 생물다양성(생태계), 발바닥 피부 모양 등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발자국 길이를 통해 이 발자국의 주인공이 참새 크기의 랩터 공룡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대부분의 동물은 덩치가 클수록 발도 길다. 이 사실을 이용하면 발자국 길이와 엉덩이 높이 사이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발자국 길이가 25cm보다 작은 소형 육식 공룡은 엉덩이까지의 높이가 발자국 길이의 4.5배쯤 된다. 따라서 발자국 길이가 1cm인 이 랩터 공룡은 엉덩이 높이가 4.5cm다. 이전까지 발견된 랩터 공룡 중 가장 작은 것은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마이크로랩터’로, 발자국 길이가 약 2.3cm였다. 이 기록을 깨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공룡 발자국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중생대 백악기 진주 지역에서는 참새 크기의 공룡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룡은 거대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참새 크기라니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공룡은 성체였을까, 아니면 어린 개체였을까. 

 

이 랩터 발자국은 2012년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에서 발견된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진주엔시스(Dromaeosauripus jinjuensis·진주층에서 발견된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 공룡의 발자국이라는 뜻)’와 형태적 특징이 매우 비슷하다. doi:10.1080/10420940.2012.664054

 

 

하지만 발자국의 크기가 매우 다르고, 세계에서 하나뿐인 매우 희귀한 발자국이었기 때문에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발자국과 유사한, 작고 매우 희귀한 발자국’이라는 의미로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Dromaeosauriformipes rarus)’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공룡 발자국은 비슷한 형태뿐만 아니라 발견된 장소 모두 진주층에 해당되기 때문에 생성 시기가 가깝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볼 때,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는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진주엔시스의 어린 개체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의 발자국 주변에는 어미 랩터 공룡 발자국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 대신 다른 종류의 중형 육식 공룡 발자국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정확한 답은 실제 공룡 골격이 발견돼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백악기에 다양한 공룡 생존 증거

 

한국 백악기 퇴적층에서는 매우 다양한 발자국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발자국의 길이가 1cm에 불과한 공룡 발자국은 이번에 발견된 랩터 공룡 발자국 외에도 2012년 경남 남해군 창선면 부윤리에서 발견된 1cm 육식 공룡 발자국이 있다. 소형 공룡 발자국이라는 뜻에서 ‘미니사우리푸스(Minisauripus)’라고 한다.

 

이보다 더 작은 공룡 발자국들이 발견될 수 있을까? 참새 크기의 드로마에오사우리포미페스 라루스보다 더 작은 공룡이 살았을까? 필자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작은 공룡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초소형 공룡 발자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희귀하다. 대형 공룡들은 무거운 몸무게 덕분에 발자국이 쉽게 찍히지만, 소형 공룡들의 발자국은 잘 찍히지 않는다. 또 공룡들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어린 개체로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작은 발자국을 남길 시간도 그만큼 짧다. 또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질 때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몸집이 작은 공룡들은 큰 공룡들보다 종류가 매우 적었을 수도 있다. 작은 발자국은 풍화침식 작용으로 쉽게 사라질 수 있고, 설령 화석이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 작아 이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에게조차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진주 랩터 공룡 발자국을 발견한 것도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작은 랩터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먼저 한국에서 크기가 다양한 백악기 공룡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그만큼 생태계의 다양성이 매우 높았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는 한국이 발자국 화석이 보존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공룡 골격 화석이 발견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문 반면, 발자국 화석은 200곳 이상에서 발견됐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약 1억30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화석들이 많이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진주의 소형 랩터 공룡 발자국을 비롯해 한국은 세계 유일의 두 발로 걷는 익룡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행렬, 부리를 저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세계 유일의 새 발자국 화석, 세계 최초의 백악기 도마뱀 발자국,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육식 공룡 발자국 등 세계적인 발자국 화석들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2008년 남해안 공룡 화석산지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 지역이 세계적인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진주 혁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백악기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이 높다. 전남 신안군 사옥도에서 발견된 다양한 백악기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화석산지들 대부분은 개발 공사를 통해 알려졌다. 백악기 공룡들이 잠들어 있는 퇴적층이 분포한 곳을 개발할 경우에는, 반드시 우리의 자연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절차들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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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
  • 에디터

    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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