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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배 더 밝은 4세대로 탈바꿈한다

포항방사광가속기 10주년

지난해 12월 7일 포항방사광가속기에서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1994년 12월 이곳에 가속기가 준공된 지 딱 10년이 지난 것이다.
당시 건설에 1500억원이나 들어 ‘단군이래 가장 비싼 실험장비’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곳에서 그동안 3000여편의 연구논문이 나왔을 정도로 포항가속기는 현재 한국의 첨단 연구를 이끌어가고 있다.

가속기 중에는 스위스 입자물리연구소(CERN)처럼 양성자와 중성자를 충돌시켜 빅뱅과 소립자의 신비를 푸는 곳도 있지만 포항가속기는 성격이 다르다. 포항가속기는 전자를 매우 빠른 속도로 축구장보더 더 큰 원통 안에서 빙빙 돌려 높은 에너지의 빛을 만든다. 즉 ‘빛공장’인 셈이다. 가속기 앞에 ‘방사광’이란 말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속기가 이처럼 빛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를 보기 위해서다. 특히 이곳에서 만들어진 X선을 이용하면 단백질 같은 생체 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명과학자에게는 가속기가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를 볼 수 있는 거대한 현미경인 것이다.

2009년 4세대 건설 계획


‘빛공장’으로 불리는 포항방사광가속기 전경.


포항가속기연구소는 2009년까지 1000억원을 들여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의 3세대 가속기가 ‘일반 카메라’라면 4세대 가속기는 눈깜짝할 새 벌어지는 생명반응을 자세하게 보는 ‘고속촬영 카메라’와 비슷하다. 올림픽 100m 달리기 시합에서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진을 보듯 4세대 가속기는 정교하게 생명현상을 볼 수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 오종석 박사는 “4세대 가속기는 현재 가속기보다 100억배나 더 밝고 길이가 머리카락 굵기만큼 짧은 빛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만큼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안에서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DNA가 서로 엉겨 붙고 자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생명현상의 비밀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을 개발하는 속도와 효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X선을 이용해 생체분자의 비밀을 푼 연구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50여년 전인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풀어낸 ‘DNA 이중나선구조’다. 당시 세계의 내노라 하는 과학자들이 DNA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들 중 신출내기라고 할 수 있었던 크릭과 왓슨이 DNA 구조를 해명한 결정적인 계기는 DNA 결정을 X선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크릭과 왓슨은 이 사진을 통해 DNA가 서로 보완적인 이중나선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DNA X선 사진을 찍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38세의 나이에 요절하면서 1962년 왓슨과 크릭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때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X선 감지기 앞에서 실험에 열중해 있는 오병하 교수.


20세기 생명과학에서 가장 큰 발견으로 꼽는 것은 DNA 자체의 발견이 아니라 DNA 이중나선구조의 발견이다. DNA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지면서 DNA가 어떻게 복제되는지, DNA에 담긴 유전정보가 어떻게 다른 세포와 후손으로 정확히 전달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3차원 구조의 발견은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것으로 연결된다.

구조생물학은 노벨상의 원천

이밖에도 2003년 노벨화학상은 세포막에 박혀 있는 채널(통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와 기능을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도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를 발견하고 그 구조를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밖에도 생명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단백질 3차원 구조의 발견이 직·간접적으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연구를 전문적인 용어로 ‘구조생물학’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구조생물학의 인기는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1994년 당시 2기의 빔라인(빛이 나오는 곳)으로 출발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2004년 현재 빔라인이 23기로 늘었다. 모두 2200여개의 첨단 연구가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중 과학기술부 창의연구단의 하나인 생체분자인지연구단 오병하 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과)는 2003년 면역 시스템에 필요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 국제 권위지인 ‘네이처 면역학’에 발표했다.

이 단백질은 세균의 세포벽을 이루는 펩티도글리칸이라는 분자에 달라붙는다. 가속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단백질은 마치 2개의 손이 있는 구조처럼 생겼는데 한 손은 펩티도글리칸에, 다른 한 손은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에 달라붙는 구조처럼 보인다. 오 교수는 “이 손 모양의 구조가 떨어져 나간 뒤 다른 곳에 달라붙어 세균이 침입했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창의연구단인 유전자손상신호전달연구단 조윤제 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과)는 암 등 세포 손상과 관련된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해 8월 19일 과학 권위지 ‘네이처’에 유전자 복제 과정을 조절해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발표했다. ‘제미닌’(Geminin)이라고 하는 이 단백질은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자의 복제가 딱 한번만 일어나도록 조절한다. 만일 유전자가 하나의 세포 안에서 세포 주기와 상관없이 2번, 3번 계속 복제되면 암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제미닌 단백질이 이 같은 문제를 막아준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거대한 빛공장

대학이나 병원의 웬만한 실험실에는 X선 발생기가 있다. 그런데 왜 포항방사광가속기처럼 큰 것이 필요할까. 오병하 교수는 “가속기에서 나온 X선이 훨씬 강한데다 파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실험을 훨씬 쉽고 빨리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먼저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장비가 필요하다. 전자는 항상 8만V의 전압을 유지하는 전자총에서 발사돼 150m의 선형가속기를 통과하면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다. 여기에 2기가볼트(1GV=10억V)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빛의 속도로 가속된 전자는 곧바로 둘레가 280m인 원형 저장링으로 들어간다. 전자가 저장링에서 빛의 속도로 돌면서 빛을 방출한다. 전자가 원을 그리며 돌 수 있도록 강한 전자석이 저장링에 붙어 있다. 저장링에서 나온 빛을 실험에 이용하는 곳이 바로 빔라인이다.

4세대 가속기는 저장링 없이 선형 가속기에서 바로 필요한 빛을 뽑아낸다. 즉 기존 선형 가속기에 빔라인을 바로 붙이는 것이다. 대신 기존 가속기보다 훨씬 더 강한 빛을 뽑아내기 위해 다양한 추가 시설을 개발해 붙여야 한다.

4세대 가속기가 완공된 곳은 현재 한 나라도 없어 한국은 4세대 가속기가 완공되면 이 분야를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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