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와 스트레스는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주요인. 만약 우리가 이들 주관적 감정상태를 객관화된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여러 모로 응용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피로와 스트레스의 객관화에 카오스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고, 공부시간에 조금만 떠들어도 혼나기 일쑤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들른 오락실에는 나보다 오락을 잘하는 ‘놈’들로 가득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몸은 파김치가 된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상이다. 이러한 일상은 어른이 됐다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가 직장으로 바뀔 따름이다.
그러나 좀더 신경 쓴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잠자리가 편하면 가뿐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편안한 책상에서 공부한다면 수업시간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락실에서 나오는 효과음이 아름답다면 게임에 져도 기분 좋을 수 있고, 지하철 안 공기가 상쾌하다면 하교길이 즐거울 수 있다.
삶이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고 피로에 지쳐 있다면, 스트레스를 삶에서 최대한 몰아내면 된다. 학교를 기쁘게 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야 한다. 얼마나 피로한지도 측정해야 한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을테니까.
스트레스의 정체
스트레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의 몸은 항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맥박은 1분에 70회 정도 뛰고, 체온은 36.5도를 유지한다. 호흡 수도 분당 18회로 적당해야 한다. 만약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인체는 극도로 약해져서 외부 자극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이 위협받을 수 있다. 병균에 대한 면역 기능도 떨어진다. 우리 몸의 안정한 상태를 위협하는 모든 자극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스트레스가 돼 앓아 누울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자극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취 욕구가 강하고 시간 관념이 정확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성격이 느긋하거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은 자극적인 일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유형의 성격을 A형 성격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는 성격을 B형 성격이라고 구분한다. 만약 같은 자극에 대해 A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B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신체 변화를 비교해 본다면,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우리 몸 혈관에 흐르는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다. 코티졸이 과다 분비되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또 우리 몸에는 NK(Natural Killer)세포라고 불리는 면역세포가 있다. NK세포는 종양이 된 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구별해서 그것들을 파괴하는 림프구의 일종이다. NK세포 외에도, 림프구 중에는 스트레스와 면역계에 관련된 T세포와 B세포가 있다.
보통 한사람의 혈액 1mL 속에는 5천-9천개의 백혈구와 5백만개의 적혈구가 함유돼 있다. 이 백혈구 중 20-50%가 림프구다.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NK세포나 T세포의 활동이 약해지고 숫자도 현저히 줄어들어 면역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우리나라 40-50대 가장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호르몬의 양이나 NK세포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피험자의 피를 뽑아야 한다. 피험자의 피를 뽑는다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일뿐 아니라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또 피를 뽑는 행위 자체가 피험자에게 대단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와 피로를 측정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까?
뇌파를 이용해 스트레스 파악
한국과학기술원 비선형 신경 물리학 실험실은 작년부터 G7 프로젝트의 하나인 감성공학분야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변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응용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다.
피로나 스트레스 자극은 종류가 다양하고 신체의 반응도 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반응은 모두 뇌의 영향을 받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외부 자극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것도 뇌에서 하는 일이고, 호르몬을 분비해 신체 대사를 조절하는 일도 뇌에서 지시를 내린다. 만약 뇌의 변화를 우리가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뇌파는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신호다. 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뇌 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동하게 되는데,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머리 표면에 전위차를 만들어 뇌파를 형성한다. 예전에는 뇌파가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음처럼 아무 정보가 없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뇌파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의 작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카오스적인 신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뇌파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진행됐다. 카오스적인 신호란 얼핏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정한 질서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뇌는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뇌파 또한 매우 복잡하지만, 카오스 이론은 복잡한 시스템에서 정보를 얻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최신 카오스 이론을 이용하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의 활동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뇌파를 통해 알 수 있다. 뇌파는 혈액검사에 비해 측정하기도 쉽고, 뇌의 즉각적인 반응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뇌파를 통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상관 차원과 리아프노프 지수다. 상관 차원은 뇌의 활동을 기술하기 위해 필요한 변수가 몇 개인가를 의미한다. 만약 뇌가 복잡한 활동을 한다면 뇌파 역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할 것이다. 상관 차원은 뇌의 활동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수치적으로 보여준다.
리아프노프 지수는 뇌의 활동이 외부 자극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를 나타낸다. 우리가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같은 자극에도 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뇌의 활동이 매우 유연하기 때문인데, 리아프노프 지수는 뇌의 유연성을 측정한 값이다. 만약 스트레스에 의해 뇌의 성질이나 활동성이 바뀌게 된다면 상관차원이나 리아프노프 지수의 값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 두 값의 변화를 통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측정할 수 있다.
현재 실험실에서는 세 가지 스트레스 자극을 피험자들에게 제시해서 뇌파의 변화를 측정하고 있다. 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물리적인 스트레스, 잔인하고 무서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감성적 스트레스 자극, 복잡하고 맞추기 어려운 컴퓨터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인지적 스트레스 자극이 그것이다.
자극의 종류에 따라 반응은 같지 않을 것이다. A형 성격 혹은 B형 성격을 가진 피험자에 따라 반응의 정도도 다를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꾸준히 실험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더 많은 스트레스 속에 인간은 지쳐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간의 삶을 위해 과학기술을 사용해야 할 때가 왔다.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지만 편안하고 안락한 배 한 척만 있다면, 그래도 살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