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허리인 삼척 덕항산과 환선봉 자락에는 ‘한국의 계림(桂林)’이라 불리는 대이리동굴지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하 동굴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는 세계동굴학회가 보존가치를 인정한 관음굴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환선굴을 포함해 모두 6개의 동굴이 모여 있다.
현재 대이리동굴지대 가운데는 환선굴만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관음굴은 보존가치가 뛰어나 발견 즉시 폐쇄됐고 덕밭세굴, 양터목세굴, 큰재세굴, 사다리바위바람굴 등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빼어난 절경 덕분에 대이리동굴지대는 주위 산림 약 200만평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됐다.
덕항산 중턱 해발 500m에 자리 잡은 환선굴은 한여름에도 동굴입구에서 불어나오는 냉기가 천연 냉장고를 방불케 할 만큼 시원해 여름철 관광지로 이름나있다. 환선굴은 총 길이가 6.2km에 이르는 거대 동굴이지만 지금은 동굴 입구에서 1.6km까지만 개방되고 있다.
환선굴은 생성 초기단계에 있는 동굴이라 단양 고수동굴이나 영월 고씨동굴에 비해 종유석이나 석순은 드물다. 하지만 거대한 동굴터널과 광장 그리고 도깨비방망이, 꿈의 궁전, 사랑의 맹세, 지옥소, 옥좌대 등으로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동굴 생성물이 넘쳐나거대한 지하 조각 공원을 연상케 한다.
특히 그 생김이 거대한 성벽과도 같아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동굴 출구 부근의 바위 덩어리는 환선굴의 백미다. 지하 깊은 동굴에 사람 세 키를 넘어서는 암벽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동굴을 만들고 그 속에 천태만상의 조각품을 빚어낸 주인공은 물이다. 동굴이 생성되던 초기에 유입된 지하수는 상류에서 많은 퇴적물을 끌어와 동굴의 저지대를 메웠다. 지하수가 퇴적층의 틈을 타고 아래로 흐르면서 퇴적층 밑으로 새로운 물길이 만들어졌다. 물길이 아래로 옮겨가면서 차차 물 위로 올라온 퇴적층은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후 퇴적층을 만든 지하수와 반대 방향에서 새로운 물줄기가 들어와 응고된 퇴적층 위를 흘러내렸다. 동굴수는 넓고 두텁게 쌓인 퇴적층의 약한 부분을 따라 두 줄의 수로를 내면서 퇴적층을 세 쪽으로 분리시켰다. 동굴수의 침식이 계속되면서 세 개로 나눠진 퇴적층에서 가운데 부분만 남았는데 이것이 긴 성벽처럼 보이는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은 앞서 흘렀던 동굴수가 만든 퇴적층 위로 새롭게 흘러든 동굴수의 침식작용이 더해져 빚어진 자연의 조형물이다. 만리장성 위에는 퇴적물이 마르면서 나타나는 건열구조가 보이고, 옆면에는 과거에 퇴적물을 품은 동굴수가 흘러간 방향을 보여주는 다양한 퇴적구조가 나타난다. 만리장성 같은 퇴적구조물은 다른 동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경관으로 환선굴에서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