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SBS의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에서 강호동과 씨름해서 이긴 가수 김종국과 KBS의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에서 2.5m의 뜀틀 높이뛰기를 성공했던 가수 조성모가 3월 30일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다. 평소 튼튼한 체력을 과시하던 두 사람이 현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자 병무청은 두 사람의 양해를 얻어 이들의 질병 내역을 최초로 공개했지만 의혹의 눈길은 그대로다. 연예인의 병역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늘 있었고, 병무청은 그때마다 신체검사 규정을 강화했다.
병역 신체검사는 징병제 유지를 위한 군인을 선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신체검사를 통해 옥석을 가려 뽑으면 군사력도 강화시킬 수 있다.
신체등급에 따른 병역기준
신체검사는 군인에게 필요한 신체조건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과정으로 시력, 피부, 신장과 체중 등 종합적인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이때 받은 신체등급은 1급부터 3급까지 현역, 4급은 공익, 5급은 제2국민역(군복무는 면제지만 예비군, 민방위 훈련은 받음), 6급은 면제, 7급은 재검으로 분류된다.
‘신의 아들은 면제, 사람의 아들은 현역’이란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사회 고위층이나 유명 연예인, 프로운동선수의 병역 이행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4~6급의 신체등급을 판정받는 주요 질환 중에는 십자인대가 파열돼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축구선수 이동국과 같은 외과질환이 가장 많다. 이어 신(腎)증후군과 간염과 결핵 등 내과질환이 2위를 차지한다. 이밖에 정신질환, 안과질환이 뒤를 이었고 근시와 간염은 매년 증가하는 면제 사유다.
군대에 갈 수 없는 주요 질환 8 가지
01_ 수핵탈출증
- 척추 사이에 있는 디스크가 빠져나와 신경을 누르는 질병이다.
- 허리 통증과 함께 다리가 당기고 저리며 찌릿찌릿하다.
-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행군하거나 보초를 서기 어렵다.
02_ 재발성 어깨 탈구
- 팔이 연결된 어깨뼈와 인대 등이 손상되고 쉽게 재발하는 질환이다.
- 유격훈련과 진지구축 등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기 곤란하다.
03_ 무릎 인대 손상
- 무릎의 좌우를 감싼 측부인대와 위아래를 연결하는 십자인대가 손상된 경우다.
- 무릎이 붓고 빠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어나며 심하면 관절염으로 악화된다.
- 보초서기와 구보, 행군과 같은 기본적인 훈련이 불가능하다.
04_ 수지 강직
- 외부의 강한 충격이나 신경 이상으로 손가락이 마비되는 증세다.
- 관절의 운동 범위가 3분의 1 이하로 심각하면 병역 면제 판정을 받는다.
- 소총에 탄창을 결합하거나 장전하기 불편하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기 어렵다.
05_ 신증후군
- 콩팥에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사구체에 문제가 생겨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질환이다.
- 신체 곳곳이 붓고 증상이 악화되면 폐부종으로 발전돼 생명이 위험하다. 일상 생활이 어렵다.
06_ 간염과 결핵
- 간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의해, 결핵은 호흡기로 전파되는 세균에 의해 감염된다.
- 간염은 피로와 구토와 함께 황달, 가려움증, 식욕감퇴로 이어진다. 결핵은 기침과 가래, 각혈을 일으킨다.
- 간염이나 결핵은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활동성으로 판정되면 면제 처분을 받는다.
07_ 안과
- 신체 피로와 외부 충격, 바이러스 등 다양한 원인으로 시력이 저하될 수 있다.
- 가깝거나 먼 곳만 보이거나 물체의 상이 흐리다.
-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거나 총의 조정간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08_ 버거씨병
- 원인이 불명확한 난치병으로 면역력이 약해진다.
- 희귀 난치병 가운데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어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질병이다.
- 환자의 50%는 말기 신부전증으로 악화돼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병역기피는 부질없는 노력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100~200명이 무단으로 병역을 기피한다. 문신, 꾀병 등을 동원해 면제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인터넷 상에는 병역 면제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이 가득하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병무청은 병역기피자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내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인터넷에 게재된 글 가운데는 여군과 결혼하거나 미친 척하기, 아이 셋 낳기 등으로 병역을 면제받는다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설탕 한 봉지 한번에 먹기(당뇨병 증상 유발), 혀 돌돌 말아 입천장에 1~2시간 붙이기(혈압상승), 머리에 4.5cm 이상의 수술자국을 만들기, 몸에 문신 그리기 등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문신이나 자해를 한 것이 확인되면 1년 이상 3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신체검사장에서 면제 판정을 받기 위한 가장 흔한 ‘꼼수’는 시력측정표에 있는 글자가 안 보인다고 우기는 경우다. 오른손잡이는 시력이 오른쪽 눈 0.4 미만 또는 왼쪽 눈 0.2 미만(왼손잡이는 그 반대)이면 면제인 5급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시력장애는 최대 교정시력이 기준이므로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면 현역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일부러 한쪽 눈에만 라식 수술을 해 짝눈을 만들어 오는 경우는 재검 판정을 받는다.
신체검사장에서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이 온 것 처럼 연기해도 천식 환자로 판정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 어린이 중 약 10%가 천식 환자이며 그 중 절반은 성인이 돼서도 치료가 필요하다. 군의관이 청진기를 가슴에 댈 때만 쌕쌕거리는 소리를 낸다 해도 천식 병력이 있거나 운동 유발성 천식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재검사 대상으로 분류된다.
건강하더라도 피부가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면 면제 판정이 나온다. 가려움증은 거의 없지만 피부가 벗겨지는 정도가 심한 건선은 4~5급 판정을 받는다.
입대 전 알아야할 신체검사 규정
신체검사장에 가면 군의관이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신체등급을 매기고, 어떤 병이 있는지 알려줄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안과, 내과, 외과 등 각 진료 과목을 담당하는 군의관이 질병을 앓은 병력을 물어볼 때 ‘없다’고 대답하면 곧바로 현역 판정이 나온다.
2002년까지 징병 군의관으로 복무한 부산으뜸내과 임진형 원장은 “군의관은 신체검사 대상자가 스스로 준비해 온 진단서가 어떤 등급에 해당하는지 결정하고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거나 조작한 것은 아닌지 감시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본인이 앓았거나 재발 가능성이 있는 질병에 대해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신체검사장에서 제출해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만약 입대를 앞두고 질병이 발생했다면 전국 224개 병무청 지정병원(대학병원과 300병상 이상 대형병원)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단 수술을 하거나 한 달 이상 입원한 경우, 6개월 이상 통원 치료를 한 경우에는 지정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진단서 발급이 가능하다. 공익근무나 면제 판정이 필요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면 미리 수술 기록이나 치료 후 조직 검사 소견과 진단서를 확보해 놓는 것이 좋다.
전형적인 병역 면제 수단으로 악용된 재발성 어깨 관절 탈구는 예전엔 단순 X선 촬영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최근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촬영으로, 다시 더 정밀한 관절경으로 검사장비의 기준이 바뀌었다.
2004년 병역법 개정안에서는 수술 후에도 재발율이 높은 경우에 5급 판정을 받도록 했다. 또한 4급에 해당하는 질환이 3개 이상이면 5급, 5급 질환이 2개 이상이면 6급 판정을 받는다.
세월따라 변화하는 신체검사 조건
총성이 지나간 1950년대는 해외유학이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징집 대상자의 해외유학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과거에도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회분위기는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체검사 규정은 병역 비리가 터질 때마다 강화돼 지금까지 20차례나 개정됐다.
신체검사 규정은 2004년부터 비장을 일부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경우 4급에서 3급으로, 대장 절제 수술을 받아도 5급에서 4급으로 각각 강화됐다. 의학이 발달해 수술 뒤 후유증이 훨씬 줄었고, 신체등급을 바꾸기 위한 무리한 수술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사구체신염은 최소한 6개월 이상 두고 보도록 규정을 강화했고, 민간병원과 짜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병무청 검사만 인정하기로 했다.
흔히 고혈압보다 무서운 것으로 생각되는 저혈압도 징병 신체검사 규정에서 삭제돼 저혈압만으로는 공익이나 면제판정을 기대할 수 없다. 저혈압은 대게 다른 질병이 악화돼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터진 뒤 1999년 신장과 체중에 대한 병역 면제 조항은 폐지됐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시행규칙은 신장이 145cm 이하인 남자는 장애인 6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부터 신장 145cm 이하는 제2국민역, 140cm이하는 병역 면제를 판정받도록 병역법이 변경됐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척추뼈 마디와 인대가 굳어지는 강직성 척추염과 사지가 붓고 근육이 마비되는 반사성 교감성 이영양증 등은 4급에서 5급으로 낮춰 판정받는다. 또 정맥이 동맥에 눌려 통증을 일으키는 ‘호두까기 증후군’도 규정에 추가돼 4~5급 판정을 받는다.
기분장애, 신경증적 장애 등 관찰 기간이 필요한 정신과 질환은 1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으면 병역을 면제한다.
신체검사 강화가 능수는 아니다
병역 신체등급이 강화된 배경에는 병역 기피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병력 감소라는 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20대 남성 인구는 2004년부터 점차 줄어 2008년에는 32만 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그리고 2003년 10월부터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2년2개월(육군)에서 2년으로 단축돼 매년 2만 명의 병력이 더 필요하다.
국방부는 부족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2004년부터 현역판정 범위를 바꿔 보충역에 해당하던 고교 중퇴나 중졸 학력의 신체등급 1~3급자를 현역으로 전환했다. 2005년에는 신체 등급이 동일한 경우 학력이 높은 사람부터 현역으로 판정하는 조치를 내렸다.
징병 신체검사 규칙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추세다. 이공계 우수인력, 국제 체육대회 입상자 등 병역특례 사유도 다양해져 웬만큼 아프지 않다면 현역이나 공익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에는 ‘징병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이 공개돼 있다. 또한 누구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부받아 그에 맞는 신체 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만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길게는 6개월 이상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병원에서는 20~30만원의 진료비가 소요되는 관절경 검사가 병사용 진단서를 발부하는 대학병원에서는 200~300만원이나 든다. 결국 부유층이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면 가난한 젊은이가 그 자리를 메우는 꼴이 된다.
빈부에 따른 신체 등급의 격차도 해소해야겠지만 각 지방 병무청에 경험이 풍부한 군의관을 배치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누구나 신체검사 이전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군의관으로부터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