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에 따르면 미국인의 20%는 아직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다. 한국인은 천동설을 믿는 비율이 미국보다 적을 수 있지만 태양에 얽힌 의문은 동서양이 비슷할 것이다.
밝고 강렬한 이미지의 태양은 오래 전부터 다른 천체와 달리 특별대우를 받았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태양을 더욱 독특하고 중요한 천체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생명의 에너지원이자 낮과 밤을 통틀어 대적할 천체가 없는 태양은 그 정체가 많이 가려져 있었다.
흑점 최초 발견자는 누구?
감히 범접하기 어려웠던 태양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버린 첫 번째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는 1610년 천체망원경으로 태양 표면에 흑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완전 무결하리라 생각했던 태양마저도 흠집이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양을 주목했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수도사이자 천문학자였던 독일인 크리스트프 샤이너로, 천체망원경으로 태양을 겨누고 접안부에 흰 종이를 대면 태양의 모습이 투영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오늘날 태양투영법의 원조인 셈이다. 샤이너는 이 방법으로 1612년 태양 표면에서 흑점과 백반을 발견했다. 발견 직후 그는 이 사실을 케플러와 갈릴레이에게 알렸다.
케플러는 샤이너의 발견을 인정하고 답장을 보냈지만 갈릴레이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3개월 뒤 갈릴레이는 자신이 이미 1610년에 흑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흑점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일로 샤이너는 기분이 매우 상했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믿었던 그는 갈릴레이와 ‘흑점 발견의 원조’ 다툼을 벌이면서 갈릴레이를 가톨릭의 이단자로 교황청에 고발했다.
흑점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많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맞다면 흑점 발견 후 2년간이나 침묵을 지켰던 일과 샤이너의 발견 소식에 3개월 동안 응답이 없었던 일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실 거대 흑점은 천체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태양 흑점을 맨눈으로 관측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케플러도 맨눈으로 태양 흑점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흑점을 수성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이 무렵 태양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주연감광(周緣感光)이라는 현상이다. 태양의 가장자리 부위가 약간 어두워지는 이 현상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이탈리아의 수학자 발레리우스였다. 당시 그는 고대 아르키메데스에 비견될 만한 천재 과학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주연감광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 태양의 온도와 구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등장했다. 1769년 영국 글래스고대 교수였던 알렉산더 윌슨은 태양이 어두운 구체이지만 열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빛나는 물질이 그 표면을 덮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에게 계승돼 ‘태양지구설’이 주창되기도 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태양 내부는 산과 계곡이 있으며 울창한 식물이 덮고 있다. 또한 하늘에는 강렬한 태양빛을 막아주는 두터운 구름이 있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
오늘날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가설이지만 당시 대부분의 지식층에게는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원자핵 에너지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태양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 있었고 무한한 에너지원은 의문 그 자체였던 것이다.
태양 연구에 불 지피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태양의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이론으로 좁혀졌다. 첫째는 태양에 유성이 끊임없이 충돌해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이고, 둘째는 태양이 스스로의 중력에 의해 수축하며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이론은 모두 모순이 있었다. 충돌하는 유성이 태양 에너지의 근원이라면 유성들의 질량만큼 태양의 질량이 변해야 마땅하다. 또 중력수축으로 태양에너지가 발생한다면 태양의 크기가 줄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관측해도 태양의 질량과 부피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두 이론에 반대해 태양이 식어가고 있다는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바로 윌리엄 톰슨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톰슨은 어릴 적부터 팽이와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면서 그 원리를 고민하는 등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 천재 톰슨은 불과 11세 때 글래스고대에 입학했는데 아버지 또한 같은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다. 그는 아버지의 강의를 들으며 수학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톰슨은 이미 10살 때 수학 논문을 썼다. 그는 이것을 왕립학회에서 발표했는데 어린 나이가 문제가 됐다. 나이 많은 학자들이 소년의 강의를 듣는 일이 학회의 위엄을 실추시킨다는 이유였다.
톰슨이 태양이 식어간다고 주장한 시기는 1844년 무렵이었다. 그는 광산의 밑으로 갈수록 땅 속 온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지구는 원래 뜨거웠지만 지표면부터 식어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 내부도 지상으로 열을 발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식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1862년 태양에서 방출되는 열과 식어가는 속도를 근거로 태양의 나이가 1억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이론도 완벽한 해법이 되지 못했다. 당시에도 지구의 나이는 수십억 년으로 공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보다 어린 태양의 나이는 지질학자에게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편 톰슨은 다른 방면에도 재능을 보여 지질학, 물리학 등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이런 공로로 작위를 수여받아 켈빈(Kelvin) 경이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켈빈은 현재 절대온도의 단위(K)로 남아 있다.
변함없는 태양의 크기와 식어가는 태양 이론의 단점을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임스 크롤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한 소작인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과는 거리가 멀고 가난했던 탓에 크롤은 대학은 커녕 공부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해 목수가 될 결심을 하고 견습공이 됐다. 그러나 어릴 적 다쳤던 왼쪽 팔꿈치가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뻣뻣해지자 그마저도 중단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길을 열어준 것은 종교였다. 가톨릭에 심취하게 된 그는 신학과 순수철학을 연구했고 1857년에는 런던에서 ‘유신론 철학’이란 책을 출간해 약간의 수익을 얻었다. 운 좋게도 2년 뒤 그는 세인트루이스대 박물관 수위직을 맡게 됐다.
철학을 탐구하던 중에 그는 우연히 존 허셜의 행성 섭동과 지구 빙하기에 대한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독학으로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일로 그는 지질학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이 무렵 그는 식어가는 태양에 관한 톰슨의 가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태양의 나이를 늘리기 위해 그는 새로운 태양 에너지를 고심했는데 이때가 1868년의 일이다.
황당한 가설이 과학의 진보로
크롤은 태양의 크기와 나이 문제를 놓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태양의 생성 초기부터 많은 에너지가 존재했다고 가정했다. 즉 태초에 두 개의 태양이 충돌했으며 충돌 당시의 운동에너지가 태양열에너지로 변환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방법이야말로 유일하게 태양의 나이를 늘려준다고 믿었다. 이어 그의 관심은 태양의 진화로 옮겨간다.
1889년 태양 진화와 원소들의 관계를 설명한 논문도 발표한다. 그에 따르면 별에는 처음에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소만 존재했다. 그러나 막대한 열을 받은 수소가 모여 더 무거운 원소로 차례로 전환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청난 열은 과거 두 개의 태양에서 유래된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수소가 더 무거운 원소인 탄소로 전환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의 태양에너지론은 현재 알려진 바와 다르다. 원자핵의 융합에 의해 에너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원소의 전환에 의해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논문을 발표하고 크롤은 1년 뒤 심장병으로 숨을 거둔다.
1912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은 태양 내부의 고온 고압 하에서 수소 원자핵이 격렬히 충돌해 헬륨 원자핵을 만들며 이때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에 따라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39년 미국의 물리학자 베테에 의해서 입증됐다. 이처럼 현재 알고 있는 태양 이론이 과거 황당한 가설을 밑거름으로 발전해 온 것은 뜻밖이다.
섭동
행성의 궤도는 태양의 인력만 생각한다면 타원이지만, 주변 행성의 인력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타원 형태가 아니다. 이와 같이 행성의 원래 궤도가 다른 천체의 인력에 의해 부분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섭동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