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노인들로 구성된 이탈리아의 록 밴드가 남부 이탈리아의 최고 가요상 중 하나인 미아 마르티니 상의 ‘떠오르는 별’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화젯거리가 됐다. 록 밴드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이 77세라고 하니 ‘나이가 들어서 못하겠다’는 말도 이제 변명이나 핑계로 들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유엔이 최근 발간한 2006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남자는 75세, 여자는 82세다. 고려시대 귀족의 평균 수명이 39.7세, 왕이 42.3세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600여년 동안 평균 수명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앞으로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건강이다. 유엔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면 ‘고령화 사회’로 규정하는데, 이미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9.2%에 이른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의 의료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의 절반인 40~50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면역 기능 떨어지면 인삼양영탕
노인 질환은 한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 중 하나다. 대표적인 한의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 첫 장에도 ‘양로(養老)하는 법’이라고 해서 노인 질환을 별도로 취급하고 있다.
노인 질환의 가장 큰 특징은 환자가 여러 질병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인체의 면역 능력과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폐렴 같은 감염증을 비롯해 여러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노인 질환을 한약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한약에는 대개 여러 약재가 포함돼 있어 복합성 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한의학에서는 환자의 ‘증’(證)에 따라 한약을 처방하는데, 여기서 ‘증’이란 환자의 질병 상태나 체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한약은 환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일대일 맞춤식 치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한약으로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생체 방어 능력을 향상시켜 병을 호전시킨다는 입장이다. 한약재 가운데는 실제로 이런 생체 기능을 높이는 재료가 많다.
예를 들어 면역 기능이 감소한 경우 에너지를 많이 쓰는 소모성 질환에 주로 처방하는 인삼양영탕(人蔘養榮湯)이 효과가 있다.
1995년 일본 동경여자의대 방사선과학교실의 오오카와 토모히코를 비롯한 일본의 22개 의대와 의료기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악성종양 환자들이 방사선 치료로 겪게 되는 부작용 중 하나인 백혈구 감소에 인삼양영탕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방사선 요법으로 흉복부에 생긴 악성종양을 치료한 환자 126명 가운데 자각증상(식욕부진, 권태감, 설사, 구역질, 구토)이나 골수기능 억제(주로 백혈구 감소)가 나타나는 이들에게 인삼양영탕을 4주 이상 투여했더니 78.6%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삼양영탕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는 10% 정도만 조금 개선됐다. 백혈구 수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도 인삼양영탕을 먹은 39.9%가 효과를 보였다.
한편 노인 질환이라고 하면 당뇨병이나 관절염 같은 만성질환을 떠올리기 쉽지만 심장 발작과 같은 급성질환도 있다. 그런데 한의학은 급성질환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대의학에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최근 ‘한·양방 협진’ 또는 ‘동서의학’이라는 명칭으로 한의학이 현대의학과 교류를 시도하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현대의학으로 ‘급한 불’을 끈 뒤 한의학으로 ‘남아 있는 불씨’를 없애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장점을 살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 방법을 찾는다는 말이다.
한방과 양방의 시너지 효과
일본에서는 100여년 동안 이런 연구가 매우 활발했고, 실제로 현대의학에 한의학을 보조적으로 사용해 만족할만한 효과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됐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중에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 불쾌한 입마름을 호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는 환각 연상 감정과 관련된 콜린(choline)성 물질의 분비를 억제하는 항콜린 성분이 약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1995년 일본 쇼와대학병원 타츠노 츠요시는 도쿄에 있는 6개 병원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63명을 대상으로 열증을 치료하는 백호가인삼탕(白虎加人蔘湯)을 4주 동안 투여해 입마름을 느끼는 정도와 타액 분비량을 측정했다.
그 결과 환자의 78.3%가 백호가인삼탕을 복용한 뒤 평균 16.8일이 지나자 입마름 증상이 호전됐고 타액분비량도 늘었다.
항콜린제는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하기 전 구강의 분비물을 줄여 검사를 원활히 하기 위한 전(前)처치제로 많이 사용된다.
1999년 일본 의사 스기하라 노부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내시경을 하기 전 항콜린제를 투여한 28명과 근육을 이완시키는 작약감초탕(芍藥甘草湯)을 마신 30명을 대상으로 위장의 연동운동과 내시경 검사 당시 고통을 느끼는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작약감초탕이 항콜린제와 비교해 그 효과가 전혀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작약감초탕이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처치도 간편했다.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는 대장의 병변(病變, 병이 원인이 돼 일어나는 변화)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식사를 제한하거나 하제(下劑, 장의 내용물을 배설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제)를 투여하고 때로는 장세척과 같은 전처치를 한다. 이런 전처치제로 하제의 일종인 대황감초탕(大黃甘草湯)을 이용할 수 있다.
제 34회 일본소화기내시경학회 총회에서 요코다 히로오 연구팀은 대장 내시경을 받은 환자 60명 중에서 전처치로 대황감초탕을 투여한 그룹이 기존의 방법을 사용한 그룹에 비해 구역질 같은 부작용이 적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대장 내의 잔변량도 거의 없어 정확한 검사를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한방 치료의 효과는 차치하고 과연 한방 치료가 경제적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더라도 경제성이 너무 떨어진다면 그 치료법은 유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제 활동을 중단한 노인에게는 가격 대비 약효가 치료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1995년 일본 기타사토대학병원 약제부의 아카세 토모히데 연구팀은 철분 결핍성 빈혈 환자 364명을 대상으로 몸이 차고 빈혈이 있을 때 사용하는 당귀작약산(當歸芍藥散)과 철분제의 효과와 경제성을 비교했다.
보통 철분제 하나만 복용할 경우에는 철분제로 위장이 상하기 쉬워 위장약 같은 보조약을 같이 먹게 되므로 약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빈혈 지표가 정상치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약제 비용을 계산한 결과 당귀작약산이 철분제보다 약 30% 저렴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특히 8주 동안 철분제를 투여한 환자의 43.3%는 소화기 장애와 같은 부작용을 호소한 반면 당귀작약산을 복용한 환자는 0.7%만이 부작용을 호소했다. 경제성과 안전성 면에서 당귀작약산이 손색이 없다는 점을 보여 준 사례다.
생활약탕기
인삼의 학명은 ‘Panax Ginseng’이다. 여기서 ‘Panax’는 만병통치약을 뜻한다. 그만큼 인삼은 건강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한약재로 꼽힌다. 조선 왕들 가운데 83세로 가장 장수했던 영조는 72세 때 1년 동안 인삼을 20여근(약 6kg)이나 먹었는데, 당시 의료진과 영조 스스로도 장수의 비결을 인삼이라고 생각했다. 인삼에는 ‘아답토겐’(Adaptogen)이라는 물질이 풍부해 인체가 가진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증대시킨다. 따라서 노화를 막고 면역 기능을 향상시키며, 스트레스나 알레르기에도 저항력을 높인다. 인삼을 많이 먹으면 열감이 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 3g 가량을 때때로 섭취하면 피로회복과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준다. 통째로 물에 달이거나 가루를 내어 물에 타 먹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