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한반도 주변 속살 벗겨보니

깊은 수심 넓은 평원 동해만 유별나

‘일찍이 헤라클레스의 기둥 서쪽에 하나의 섬이 있었다.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섬으로, 이 섬과 맞닿아 있는 다른 섬들을 통해 대서양에 둘러싸여 있는 반대편 대륙으로 갈 수 있었다. 이 섬은 주변 섬들과 리비아, 이집트, 유럽의 티레니아 근처까지 복속시킨 거대한 제국의 심장이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와 크리아티스’에서 아틀란티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이 찬란한 문명은 어느 순간 바다 속으로 영원히 가라 앉아버렸다. 잃어버린 도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 지질학자들은 지금도 해저 지역을 조사하고 있다. 아틀란티스의 위치를 알려주는 해저 지도는 없을까.

붙고, 합치고, 떨어지고

지구에서 바닷물을 쫙 빨아낸다고 하자. 그러면 육지와 해저가 연결된 거대한 땅덩이가 나타날 것이다. 해저도 육지만큼 지형이 복잡하다. 평야가 있는가 하면 산이 있고 계곡과 절벽도 있다. 이를 토대로 해저 지도를 그리면 된다. 문제는 해저 지형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육지가 지진과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해저는 끊임없이 조수와 해류의 영향을 받는다.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바닷속은 발칵 뒤집힌다. 따라서 해저지형은 지속적인 탐사를 통해 변화를 추적하고 파악해야 한다.

이런 끊임없는 변화가 바닷속에서만 일어났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그래서 어떤 지형은 젊고 활기찬 반면 어떤 곳은 늙고 안정돼 있다. 어떤 부분은 큰 땅덩어리가 오래된 부부처럼 함께 붙어있고, 어떤 경우에는 땅덩어리 하나가 여러 조각으로 흩어지거나 멀리 떨어져 있던 땅덩어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최근 10년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는 크게 세 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 현재 한반도를 구성하는 작은 땅덩어리들은 원래 서로 멀리 떨어져있었다(선캄브리아기~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작은 땅덩어리들은 물 위를 떠돌다가 드러나기도 하고 물 속에 잠기기도 하면서 조금씩 이동했다.

그러다가 이들이 하나의 땅덩어리로 합쳐졌다(중생대 쥐라기~신생대 전기). 이때는 지금의 한반도와 지리적, 지형적으로 많이 달랐다. 한반도는 중국에 붙은 하나의 땅덩어리였고, 일본열도는 바다에 잠겨 한반도의 동쪽에 붙어있었다. 차츰 한반도와 주변 해저는 대보운동(중생대 쥐라기)이나 불국사운동(신생대 초) 같은 강력한 조산운동을 받으면서 접히고, 찢어지고, 융기하고, 침강하는 복잡한 변형과정을 거쳤다.

결국 한반도에서 일본열도가 분리되면서 지금의 동해가 형성되고 한반도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신생대 중기~현재). 화산활동으로 백두산과 한라산이 생기고 동해에서 울릉도, 독도가 생긴 것도 이 때다.

한반도가 진화하면서 주변의 해저 지형도 함께 진화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국과의 사이에 황해가, 남쪽으로는 일본과의 사이에 남해로 불리는 한국해협이, 동쪽으로는 러시아, 일본과의 사이에 동해가 있다.
 

동해 사면사태 단면^동해 울릉분지의 해저지형과 퇴적층서 보여주는 탄성파 층서단면. 수심이 급격하게 증가하면 사면과 울릉분지의 편평한 심해평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면에는 급격한 사면사태를 보여주는 무너짐 구조가 번번하게 관찰된다.


바닷물이 지형 만들어

황해는 최대 수심이 100m를 채 넘지 않는다. 평균 55m 깊이로 뚜렷한 지형 변화 없이 넓고 편평한 대륙붕이 차지하고 있다. 황해의 서쪽 해안은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양쯔강과 황하삼각주가 특징이며, 한국 쪽에는 섬이 매우 많고 광범위하게 펼쳐진 조간대가 발달해 있으며 해안선과 비스듬히 발달한 모래사구가 독특한 지형을 이룬다.

남해는 제주도와 쓰시마섬 사이에 있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서남부 사이의 좁은 바다를 가리킨다. 수많은 섬들과 만으로 이뤄진 한반도 남쪽 해안은 남쪽으로 갈수록 깊어지며, 부산과 쓰시마섬 사이에서 수심이 200m로 가장 깊어진다. 낙동강과 섬진강에서 퇴적물이 많이 공급되어 삼각주가 발달했다.

황해와 남해는 한반도가 진화하는 동안 급격한 구조운동이나 큰 규모의 해수면 변동으로 물 위로 노출되고 잠기기를 반복해왔다. 해양퇴적물로 이뤄진 해저표면은 일반적으로 물 위로 노출되면 깎여나가 편평해지는데, 황해와 남해 역시 약 1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 거의 전 지역이 노출돼 지형이 편평해졌다. 여기에 해수면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면서 새로운 퇴적물이 공급되고 기존의 퇴적물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황해는 주로 조수가, 남해는 조수와 강한 해류가 복합적으로 해저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동해는 황해나 남해와 사뭇 다르다. 동해는 신생대 올리고세 이후 아시아대륙에서 일본열도가 분리되면서 형성됐다. 황해와 남해는 수심 200m 미만의 얕은 바다지만 동해는 평균 수심이 약 1350m로 깊은 곳은 3700m에 이른다.

동해의 해저 지형은 크게 깊은 퇴적분지 3개와 이들 분지 사이에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은 지형적 고지대 3개로 나뉜다. 퇴적분지는 울릉분지를 비롯해 야마토분지, 일본분지며 지형적 고지대는 한국대지, 오키뱅크, 야마토릿지로 불린다.

이중 한국에 인접한 지형이 울릉분지와 한국대지다. 울릉분지는 동해 남서부에 있는데, 북쪽으로는 한국대지, 서쪽으로는 오키뱅크를 경계로 일본분지, 야마토분지와 구분된다. 서쪽으로는 경사가 가파른 한반도의 대륙사면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완만한 일본열도와 접하고 있다.

이러한 해저지형들은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태평양판, 오호츠크판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됐다. 해양판이 확장되면서 북동쪽에 있는 일본분지가 먼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올리고세), 빠른 속도로 침강하면서 활발하게 확장됐다(~중기 마이오세).
 

울릉분지 형성과정


울릉분지는 심해에 펼쳐진 평원

울릉분지와 야마토분지는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분지가 확장되자 북동 일본열도가 남동쪽으로 400km 이상 이동하면서 동해의 동쪽 경계면을 따라 오른쪽 전단운동이 일어났고, 동시에 남동 일본열도는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지각이 팽창하면서 얇아졌고 울릉분지와 야마토분지가 생긴 것이다.

한편 울릉분지나 야마토분지가 일본분지처럼 해양판이 확장되면서 생성됐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울릉분지는 깊은 수심에 평탄한 지형을 보이는 해저지형이다. 수심이 2000m 이상인 곳에 편평한 땅이 있는 심해평원인 것이다. 심해평원에는 거의 수직으로 솟아있는 울릉도와 독도 화산이 있다. 독도는 신생대 제3기 플라이오세에 형성됐고, 울릉도는 이보다 늦은 후기 플라이오세에서 신생대 제4기에 생겼다. 크기로는 울릉도가 형이지만 나이로는 독도가 형인 셈이다. 이외에 울릉분지에는 바다에 잠겨있지만 1000m 높이 이상의 해저화산 몇 개가 더 있다.

한국대지는 울릉분지에 비해 수심이 비교적 얕다. 하지만 울릉분지보다 지형이 복잡해 여러 개의 해산, 해저골, 해저산맥 등이 있다.

울릉분지와 한국대지라는 지명은 오랫동안 사용돼 왔으며 지난해 11월 국립해양조사원이 해저지형 명칭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이 중 울릉분지는 최근 해저지명 등재로 일본과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물론 해저 지형 및 지질 연구 성과가 해저지명이나 영토에 대한 문제에 일차적인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연구의욕과 투지를 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경계할 것은 이 연구 성과를 섣불리 영토나 해저지명의 문제에 논거로 사용하려는 태도다. 울릉도나 독도가 지질학적으로 한국에 가까운 지 아니면 일본에 가까운 지는 영토문제 해결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일본열도 한가운데에 한국이 오랫동안 지배해왔고, 한국인이 현재 살고 있는 작은 산이 있다면 그 산은 분명히 한국 땅인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울릉분지에서 화산활동으로 생긴 한국의 화산섬일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탐사선인 '탐해2호'에 실린 탄성파생성기. 보통 '에어건'이라고 불르는데 물 속에서 공기를 쏘아 탄성파를 만든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바닷속 우리 땅을 찾아서
1. 한반도 주변 속살 벗겨보니
2. 바닷속 우리 땅 우리 이름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권이균 선임연구원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 해양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