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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인은 살아있다

발해 덮은 黃史를 걷어내고

지난 2002년 8월 시베리아 야생호랑이를 소재로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달랑 지도 한 장만 들고 연해주 소수민족인 우데게를 찾아 ‘크라스노야르’라고 불리는 시베리아 오지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우데게족은 야생호랑이를 ‘암바’, 즉 타이가 밀림의 가장 힘센 산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바로프스크 방향으로 500여km를 달렸다. 도중에 ‘루체고르스크’라는 소도시를 지나면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좁은 타이가 숲에서 길을 물어가며 가야했다. 초행길이라서 그런지 이틀에 걸친 고된 여정이었다.

그곳에서 제작팀은 우데게 전통을 그린다는 어느 민속화가를 만났다. 초면이건만 그는 우리에게 ‘야보다’(생선조림)와 ‘쟉타’(흰죽)를 대접했다. 우리는 잔존하는 만주족의 현실과 토속신앙인 샤머니즘, 그리고 야생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질 무렵 그는 나에게 정중한 몸짓으로 말을 건넸다.

“‘모헤’이고 ‘쥬르젠스키’인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핏줄이다. 우리는 함께 ‘보하이’라는 나라의 주인이었다.”

당시는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모헤’는 말갈을, ‘쥬르젠스키’는 여진을, ‘보하이’는 발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연해주의 소수 민족인 우데게족과의 만남은 햇수로 5년째 접어든다.
 

우데게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마을 어른들.


크라스노야르의 우데게族

연해주에는 현재 우데게, 나나이, 에벤키, 골디, 타즈이, 니브히 등 여러 소수 부족이 살고 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동북아시아의 19세기를 기점으로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그들은 두만강, 우수리강, 비긴강, 송화강, 흑룡강 등 만주의 젖줄을 무대로 살아온 만주-퉁구스 계통으로 농경보다는 수렵과 어로가 주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가운데 고대국가 발해의 옛 터전에 당시의 발해인처럼 수렵과 어로로 연명하며 그 후손임을 자처하는 전형적인 소수 만주부족이 바로 우데게다.

우데게를 주축으로 17종족이 모여 사는 크라스노야르는 연해주 비긴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비긴’은 우데게 말로 ‘곧바로’라는 뜻으로 영어의 ‘Straight’에 해당한다. 물길이 깊지 않으며 여러 갈래로 길게 뻗어 흐르는 강의 모양을 살펴본다면 비긴강이라는 이름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원래 비긴강의 우데게는 마을을 이룰 정도로 모여 살지 않았다. 우데게는 강과 숲 그 자체를 자신의 집으로 여기며 살던 자연인이다. 그들은 길게 이어지는 비긴강가에 서로 거리를 둔 채 띄엄띄엄 몇 채씩 작은 군락을 이루며 살았다.

20세기 초 연해주의 새로운 정복자 러시아는 행정 관리상 편의와 불결한 우데게의 위생문제를 해결한다는 빌미로 우데게를 현재의 크라스노야르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러시아의 실제 목적은 중국령인 만주에도 산재했던 우데게(중국명 ‘에륜춘’)와 러시아령의 우데게 사이의 구별을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우데게를 통제해 그 지역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였다.

우데게는 밀려드는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통방식에 매달렸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몽매한 구습에 얽매여 불결하게 보였던 그들을 위해 러시아 감독관은 새로운 형태의 가옥을 지어줬다. 얼마 후 마을을 다시 찾은 감독관은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은 어렵게 지어 놓은 러시아식 목조건물의 지붕을 뜯어내고 집안 가운데 원시형태의 화덕을 다시 설치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겉은 러시아 근대식 집이었지만 내부는 여전히 원시형태의 화덕을 차려놓은 크라스노야르 우데게만의 독특한 취락형태로 복귀시킨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연해주 고려인들이 서둘러 러시아정교로 개종하고 신문물에 적응하려 했던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매년 8월 마지막 주에는 흥겨운 전통축제가 열린다.


족보 추적은 남아 있는 숙제

2002년 만난 우데게 민속화가와는 친구가 됐다. 그는 1952년생으로 이름은 ‘이반 이바노비치 둔까이’다. 이 이름은 러시아식 명칭인데, ‘이반’은 이름을, ‘이바노비치’는 그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이반’이였다는 것을, ‘둔까이’는 집안의 족보를 나타내는 ‘성’(姓)이다.

그렇다면 둔까이의 근원은 어디일까.

참고로 근세기 러시아인의 행정통제는 소수 만주족의 족보체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우데게와 러시아 행정관 사이에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에 살고 있던 우데게의 주소지 혹은 개인의 별칭이 성으로 기록되는 착오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둔까이’의 경우 뒷자리 ‘까이’를 제외하면 남는 ‘둔’자가 그의 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단음인 ‘성’ 뒤에 ‘집’(家)을 의미하는 ‘가이’ 혹은 ‘까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인의 경우에도 ‘리가이’(李家) ‘오가이’(吳家) ‘허가이’(許家) 등으로 불리는 일이 많았다.
 

잦은 통혼으로 순수한 우데게가 사라지고 있다. 크라스노야르의 혼혈 어린이들.


그러면 우데게 둔까이의 족보를 찾기 위한 문제의 열쇠는 ‘둔’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우데게는 러시아 알파벳 이외에 한자나 이두로는 그 음을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령 만주 지역이나 그 이남에 살고 있을 동족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족보를 통해 20세기 이전 우데게의 조상을 되짚어 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글이나 한자를 모르는 고려인의 경우에도 이 같은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연해주 소수 만주부족 ‘따즈이’ 중 일부도 그렇다.

이반에게는 남동생이 둘 있다. 둘째는 ‘미샤’로 사냥꾼이며 막내 ‘와샤’는 제사장(샤먼)이다. 미샤는 “사냥꾼인 나에게 필요한 건 성냥 한 개비와 총알 한 방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밀림 속에서 모닥불을 지필 때는 성냥 한 개비만 있으면 충분하고 사냥감을 좇을 때는 총알 한 방이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벙어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 없지만, 그는 ‘한 개비의 성냥’으로 우데게 사냥꾼의 자부심을 말해준다.

막내 ‘와샤’ 또한 우데게 사냥꾼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 마을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90세 가량의 노파가 제사장을 맡았다. 그녀가 죽은 뒤 한동안 우데게 샤먼의 대가 끊어졌는데, 평소 그녀와 영적으로 교우하던 젊은 와샤가 후임이 됐다.

와샤는 우데게 대표로 시베리아 저 멀리 바이칼 호수 울란우데의 샤먼과 아무르강 북쪽 야쿠츠의 샤먼과 교통하며 공동 의식을 통해 그들이 한 핏줄에서 태동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이반은 두문불출 집안에 틀어박혀 ‘발해’라는 테마로 미술전을 준비하고 있다. 발해 관련 사서의 고증에 골몰하며 발해라는 미지의 실체를 구상하고 있는데, 오는 여름이면 대강 준비가 끝난다고 한다. 화가, 사냥꾼, 그리고 샤먼. 그 가족은 발해의 구성원으로 말갈이고 여진이며 지금은 우데게라고 불리고 있다.

그들을 통해 발해인의 생물학적 특징을 추적할 방법은 없을까.

지금 연해주에서는 발해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우데게들이 사라지고 있다. 남아있는 순수 혈통의 우데게는 어림잡아 750명 정도다. 다른 민족과 통혼이 잦은데다 현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해 그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반은 비긴강가에서 곧잘 그림을 그린다. 그는 '발해'를 주제로 오는 여름 미술전을 열 계획이다.


한국인과 30% 닮아

지난해 8월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팀과 함께 비긴강을 찾았다. 우데게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 한국인 집단과의 관계를 유전학적으로 밝혀보기 위해서였다. 조사를 통해 우데게의 기원과 한국인 집단과의 유전학적인 관련성을 규명해보겠다는 제안에 러시아 행정관도 흔쾌히 승낙했다.

김 교수팀은 혈액이나 머리카락에 비해 추출이 쉽고 거부반응이 적은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 교수팀이 미토콘드리아DNA(mtDNA)와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우데게는 한국인 집단과 적어도 30%의 유전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우데게는 몽골인, 시베리아인과 유전적으로 아주 가깝다”면서 “우데게가 한국인 집단 형성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인 집단에게서 유입된 유전자가 우데게의 유전자풀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우데게의 유전자 분석 작업은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다. 이로써 우데게의 기원을 찾고 발해의 후손을 추적하는 작업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이 연구는 앞으로 더 밝혀질 인문과학적인 사료와 함께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해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반이 그린 샤먼. 각 부족의 샤먼들은 공통 의식을 통해 그들이 한 핏줄임을 확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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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효종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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