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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과학자 무인도 서바이벌 실험노트

잡동사니로 만들어낸 라디오·사진기·비누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날짜를 잊지 않기 위해 해가 질 때마다 표시를 했다.그러나 과학자들은 라디오를 만들어 오늘의 날짜와 세상 소식을 들었다.다섯명의 과학자들은 무인도에서 다양한 과학실험을 벌였다. 그들의 기발한 실험 노트를 펼쳐보자.

영국 BBC방송과 오픈 유니버시티는 물리학, 화학, 바이러스학, 해양생물학, 민족식물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과학자 다섯명을 지난해 가을 지중해의 외딴 섬으로 보내 특이한 실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과학자들은 기본적인 공구와 잡동사니들로 라디오, 사진기, 비누 등을 만드는 '러프 사이언스'(Rough Science)라는 TV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것. 5월 10일부터 4회에 걸쳐 방영된 이 시리즈는 2백만명이 시청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으며 곧 미국 PBS방송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무인도에 도착한 과학자들은 나무판자, 돌맹이로 이 섬의 위치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첫째주: 시간을 알아내다

무인도의 경도를 알기 위해서는 기준점인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 조나단 해어는 라디오를 만들어 BBC의 시보를 듣기로 했다. 라디오파는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우리 주위를 초당 30만㎞의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다. 전자기파와 전류는 항상 서로 변환될 수 있다. 그래서 전등 스위치를 끄거나 켤 때 라디오에서 딸깍 하는 소리를 듣는 것. 해어는 전선줄로 만든 안테나로 라디오파를 잡아 코일을 감은 원통막대에 연결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잡은 전류는 끊임없이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바로 헤드폰으로 들을 수 없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전류를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검파기. 다이오드나 방연광(方鉛鑛)과 같은 결정이 사용된다. 해어는 암석에 흔하게 포함돼 있는 방연광 결정을 사용했다. 또 냄비를 잘라 만든 동조 축전기를 이리저리 이동시켜 서로 다른 전압의 라디오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해어는 BBC방송을 듣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스위스의 한 방송국이 보내는 국제방송을 듣고 그리니치 시간을 확인했다. 한편 이날 화학자 마이클 벌리반트와 민족식물학자 안나 르윙턴은 로즈마리로 방충제를 만들었다. 이들은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킨 다음 이를 로즈마리를 말린 통에 통과시켰다. 이증기를 식히면 아래에는 물이, 위에는 로즈마리 아로마 층이 생긴다. 과학자들은 이 아로마를 올리브 열매 기름에 녹여 방충제로 사용했다. 이 아로마는 방충효과뿐 아니라 원기를 회복하는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제작된 라디오…

2차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의 군인들은 방연광 대신 석탄을 때고 나오는 코크스를 이용해 라디오를 만들었다. 또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미군은 포로수용소에서 헤드폰을 만들었다고 한다. 리차드 루카스라는 이 포로는 못에 코일을 감아 만든 전자석을 이용했다. 전자석은 전류의 흐름에 따라 맞붙여 놓은 얇은 깡통에 붙었다 떨어지면서 소리를 냈다. 안테나로는 포로수용소 주변의 철조망을 이용하거나 수용소 내의 전선을 이용

했다. 밤에는 모든 전원을 차단하기 때문에 수용소 전체에 퍼져 있는 전선들이 훌륭한 안테나 역할을 한 것.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사는 앨런 찰턴은 새끼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볼펜 심 한쪽에 구리선을 깎아 채우고 또 다른 한쪽에는 구리선을 불에 그을려 만든 산화구리 가루를 채워 다이오드를 만들 수 있다고 알려왔다.

둘째주: 기록을 남기다

과학자들은 카메라를 만들어 조난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과학자들은 은판 사진기를 만들기로 했다. 1839년 프랑스의 다게르는 요오드화은을 입힌 은판사진기를 만들었는데, 빛과 반응한 부분의 요오드화은은 검게 변하고 영상이 맺혀 빛이 통과하지 못한 곳은 하얗게 된다. 요오드화은은 해양생물학자 바네사 그리피스가 차고 있던 은팔찌와 해초를 전기분해시켜 합성했다. 전지는 바닷물을 담은 유리병을 전선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이것은 레몬이나 감자에 전극을 꼽아 만든 전지와 같은 형태. 마지막으로 해초 추출물을 넣은 물 속에 연필심으로 (+)극을, 은팔지를 (-)극으로 하면 요오드화은이 가라앉는다.

과학자들은 트레이싱 페이퍼를 요오드화은 수용액에 적셔 필름을 완성했다. 이 필름에 열쇠를 올려놓고 햇빛에 두자 빛이 닿은 곳은 검게, 열쇠가 있던 곳은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실제 촬영은 실패했다. BBC방송팀의 촬영스케줄 때문에 햇빛에 노출시키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 필름은 화학자 마이클 벌리반트와 해양생물학자 바네사 그리피스가, 카메라는 물리학자 조나단 해어가 만들었다.

한편 바이러스학자 마이클 리히와 식물학자 안나 르윙턴은 각종 식물의 열매와 뿌리로 조난자들의 깃발을 염색했다. 염료가 섬유에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해서는 풀 역할을 하는 매염제가 필요하다. 보통 산과 염기, 특히 금속원소를 포함한 염기가 결합된 염류가 많이 사용된다. 무인도의 과학자들은 대신 오줌을 끓여 그 속에 들어있는 요산염, 수산염, 인산염 등의 염류를 매염제로 사용했다. 식물학자 르윙턴이 처음부터 오줌을 한 물통에 눌 것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으로 밝혀졌다.

독자의 편지

from 마이크 웰치
우선 구리와 아연 동전에 각각 전선을 연결한 다음, 오줌을 담은 병에 넣는다. 오줌은 전해질 용액이 돼 구리에서 아연으로 전류가 흐르는 전지가 만들어진다. 다음에는 해초를 으깬 물을 모래로 채운 병에 흘려 요오드 용액을 얻는다. 이 용액을 물과 섞어 다른 병에 채운다. 전지의 전선을 은팔지와 금속판에 연결한다음이병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은팔찌에서 은이온이 나와 요오드와반응해 요오드화은을 발생시킨다. 요오드화은은 (+)극이 되는 금속판에 달라붙게 돼 자연스럽게 필름이 만들어진다.

이 필름을 바늘구멍사진기 안에 넣고 촬영한다. 영상이 맺힌 필름을 조개껍질 가루와 오줌을 한데 섞어 만든 용액 위에 두면 암모니아 증기에 의해 영상이 더 선명하게 착상된다. 이것은 무인도의 과학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필름 현상에 대한 아이디어다.

셋째주: 전기를 발생시키다

무인도의 과학자들이 각종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전기가 절실해졌다. 과학자들은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 발견한 전자기유도법칙을 이용하기로 했다. 즉 코일에 자석을 갖다대면 코일에 전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석을 그대로 두고 코일을 움직여도 같은 전류가 발생한다.

바이러스학자 마이클 리히는 고교 졸업 후 한동안 기계공으로 일했다가 26살에야 다시 대학에 들어가 바이러스학을 전공했다. 그는 예전의 경험을 되살려 코일을 자석 주위로 회전시켜 전기를 발생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직류를 바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일을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또다른 동력원이 필요했다. 리히가 사용한 동력은 증기였다. 증기는 필름과 방충제를 만들 때 사용한 커다란 두개의 금속 물통을 사용했다. 그는 물을 끓인 뒤 가느다란 관으로 증기를 보내 코일에 연결된 회전축 날개에 분사시켰다. 반면 물리학자 조나단 해어가 만든 발전기는 자석을 돌려 교류를 발생시켰다. 자석을 돌리는 힘은 풍차를 만들어 조달했다

발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과학자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그동안 다른 과학자들은 무인도에서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것이 드러났고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성과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발전기는 제대로 작동했을까. 불행히도 물리학자의 풍차는 바람에 부서졌고 전직 기계공의 회전축 날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천천히 돌았다. 다른 과학자들은 발전기를 포기하고 화학전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자의 편지

from 마라 프리왯
아연이 많이 든 동전, 바닷물을 적신 천, 구리가 많은 동전순서로 쌓는다. 계속 동전과 천의 층을 쌓아가면 전지가 완성된다. 전선을 아래위로 연결하면 아래가 (-)극이 되며 위가 (+)극이 된다. 아연이 이온화되는 경향이 구리보다 높기 때문에 전자를 더 잘 내놓기 때문이다. 1880년 볼타가 만든 최초의 전지도 아연과 은(구리 대신) 사이에 소금물을 적신 종이를 끼운 것을 반복한 형태였다.

만약 우리나라 동전 전지를 만든다면? 겉보기와 달리 구리가 제일 많이 든 1백원이나 5백원짜리 동전(구리 75%, 니켈 25%)을 (+)극으로, 100% 알루미늄인 1원짜리 동전을 (-)극으로 하면 된다. 1원이 없다면 알루미늄 호일로 대신한다. 참고로 5원과 10원짜리 동전은 구리 65%, 아연 35%가 든 황동으로 만들어졌으며 50원짜리는 구리 70%, 아연 18%, 니켈 12%이다.

넷째주: 비누를 만들다

과학자들은 무인도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건강 문제에 신경을 써야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청결 문제가 대두됐다. 그래서 화학자 마이클 벌리반트는 비누를 만들기로 했다. 유지를 알칼리용액과 반응시키면 글리세린과 비누가 얻어진다. 벌리반트는 바닷물 속에 들어있는 염화나트륨(NaCl)을 추출한 다음 물에 녹여 염화나트륨 수용액을 만들었다. 이 수용액을 전기분해하면 알칼리인 수산화나트륨(NaOH) 용액이 만들어지는 것. 그러나 마이클 리히의 증기 발전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조나단 해어의 풍력발전기 역시 강풍에 부서지는 바람에 전기를 얻지 못해 수포로 돌아갔다.

벌리반트는 대신 나뭇재를 물에 녹여 만든 수산화칼륨(KOH)용액을 사용했다. 이 용액을 올리브 열매에서 짜낸 기름과 섞은 뒤 가열해 비누를 만들어냈다. 식물학자 안나 르윙턴은 여기에다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를 첨가해 좋은 향이 나도록 했다.

러프 사이언스 시리즈는 일군의 남녀들이 외딴 곳에서 생활하며 참가자끼리 매번 투표로 한사람을 추방시키는 미국 CBS방송의 '서바이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는 인기투표와 가학적인 상황설정이 판치는 여타의 방송과 달리 러프 사이언스는 어렵게 여겨지던 과학을 가깝게 했으며 각자의 창의성에 바탕을 둔 협력이 큰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줬다. 무인도의 과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모래로 얼굴 씻은 클레오파트라

로마 신화에 따르면‘사포’(Sapo)라는 산에서는 동물을 태워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제물로 바친 동물의 기름이나 제사에 쓰인 유지로 만든 촛농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나뭇재와 섞이게 돼 비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강으로 흘러온 비누를 사용하게 된 사람들 이 사포산에서 온 것이라 해서‘soap’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그러나 비누는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클레오파트라도 비누를 쓰지 못하고 고운 모래로 얼굴의 불순물을 닦고 식물의 에센스 오일을 바르는데 그쳤다.

비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후 1세기경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의‘박물지’에 나오는데, ‘(지금의 프랑스를 일컫는) 골지방의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데 사용하기 위해 발명한것’이라고 적혀 있다. 플리니는 비누의 제조법도 함께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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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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