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에 근무하는 32세의 김 모 씨는 ‘모범 맨’이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할 때도 평소 상식에 따라 헬스클럽을 찾아 1주일에 3회, 매회 30분 이상 운동을 한다. 그가 이 룰을 지킨 지 어느 덧 2년. 그런데 이상하다. 도통 살이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2년 전 74kg의 체중은 중간에 0.5~1kg 정도 떨어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74kg 그대로다.
그는 “그래도 살이 안 찐 게 어디냐” “심폐기능이 좋아졌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말한다. 하긴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갑자기 살이 찌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김씨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살을 빼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면 실패한 셈이다.
문제는 그의 생활습관에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1주일에 두 번 정도 술자리를 갖는다. 식사량을 조절하는 법도 없다. 짧게 운동하면 효과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10분 운동할 바에 아예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없어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박 모 씨의 경우다. 그는 헬스클럽 대신 아침, 저녁 출퇴근 길에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약 10분 되는 거리를 걷고, 12층에 있는 사무실까지는 늘 계단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게 만만찮다. 걷는 빠르기나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조금만 올려도 숨이 차오르는 것이다. 박씨는 지금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10분 3회, 효과는 30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법을 물었을 때 십중팔구는 ‘일주일에 3일, 매회 30분 이상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다. 간헐적으로 하거나 30분을 채우지 못하면 효과는 별로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박 씨는 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운동은 ‘제대로 하거나 아니면 안하거나’(All or nothing)로 양자택일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운동의 개념이 바뀌어 ‘안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낫다’(Something is also good 또는 Something is even better)의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 스포츠의학회(ACSM)는 2002년 “동일한 시간을 운동한다면 여러 번으로 쪼개나 한 번에 이어 하나 운동효과는 같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인 남녀를 ‘한 번에 30분 운동을 하는 그룹’과 ‘10분씩 쪼개서 3회 운동하는 그룹’으로 나눠 6주 동안 관찰했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양쪽 그룹의 체지방량이 똑같이 늘어나지 않은 것. 산소 흡입량은 오히려 ‘10분 운동 그룹’이 더 많았다. 이 연구결과는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믿는 사무직과 같이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Good news for sedentary persons who believe they have no time to exercise)이란 제목의 기사로 전 세계에 타전됐다.
많은 의학자들은 이 결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10분을 5분, 다시 1분씩 쪼개 운동해도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 나왔다. 바로 ‘게으른 다이어트’의 출발이 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박씨는 이미 게으른 다이어트법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으른 다이어트의 이론적 근거는 또 있다. 1분간 운동을 30회로 쪼개서 하는 사람과 단 한 번에 30분을 이어서 운동하는 사람의 소비열량이 같다는 것이다. 당연히 체중감량 효과도 동일하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포도당이 먼저 쓰이기 때문에 이어 30분을 운동하는 쪽이 체지방 소비량이 더 많다. 즉 게으른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보면 ‘운동’이란 이름에 크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자주 움직이면서 활동량을 늘리면 소비되는 열량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10분 운동할 때 소비되는 열량 따로, 30분 운동 할때 소비되는 열량이 따로 있지 않다는 말이다.
게으른 다이어트 촉매제 ‘50%의 저녁’
활동만 늘린다고 게으른 다이어트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먹는 패턴을 바꿔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다만 먼저 충분히 활동하는 습관을 들이고, 그 뒤에 식사량을 조절해야 한다. 식사량부터 줄이면 “피곤하다” “힘이 없다” 등의 이유를 대며 몸을 움직이기 싫어진다. 당연히 다이어트 실패 위험이 커진다.
무조건 굶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몸은 외부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도록 설계돼 있다. 2~3일만 식사를 하지 않아도 우리 몸은 ‘비상사태’를 선포해 ‘긴축운영’에 들어간다. 영양소를 저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 상태에서 며칠 후 다시 식사를 하면 살이 찐다. 우리 몸이 새로 들어온 음식을 여전히 저장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평소 저녁 식사량의 50%를 줄이는 ‘하프 디너’(half dinner)를 시도하는 게 좋다. 다만 조급하게 처음부터 50% 룰을 지킬 필요는 없다. 80% 수준에서 시작해 3~4개월 동안 꾸준히 줄여 50%에 이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하루 세 끼의 식사를 4~5회로 나눠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 매 끼니 식사량은 평소의 40~50% 정도로 제한한다. 이 룰만 정확히 지키면 식사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식사법은 매 끼니의 80%만 먹는 것이다.
게으르게 먹는다?
먹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한국인의 식사시간은 너무 짧다. 느림과 여유를 만끽하며 식사를 하면 건강해진다. 즉 게으르게 먹자는 말이다.
먼저 배가 고플 때의 몸을 들여다보자. 간과 근육 등에 저장돼있던 지방인 ‘유리지방산’이 혈관으로 흘러들어간다. ‘유리지방산’이 증가하면 뇌 시상하부의 ‘공복(空腹) 중추’를 자극한다. 공복중추는 ‘밥을 먹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음식물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유리지방산’은 더 이상 혈관에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그 대신 음식이 분해되면서 혈액 속의 포도당 수치가 높아져 ‘이제 그만 먹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어 시상하부의 ‘포만(飽滿) 중추’가 ‘그만 먹지 그래?’라고 명령을 다시 내린다.
이 정상적인 메커니즘은 식사를 빨리 하면 깨져 버린다. 보통 음식을 먹었다는 정보가 뇌에 전달되기까지는 5~7분이 소요된다. 그제야 포만중추는 ‘그만 먹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식사를 빨리 하면 포만중추가 인식하기도 전에 음식물이 배 안에 쌓인다. 이런 상황이 오래 되면 공복중추와 포만중추가 뒤엉켜 식탐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남들보다 빨리 많이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기대하기란 무리다.
우리 전통 식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과 찌개를 먹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고깃국을 먹을 때는 급하게 국물을 ‘후루룩’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건더기를 먼저 먹고 국물은 나중에 먹자는 말이다. 고기를 많이 넣을수록 일반적으로 맛이 짙고 고소한데, 이 맛에 함정이 있다. 짙고 고소한 맛의 근원이 바로 고기에 포함돼 있는 지방이기 때문이다. 보통 고기에 들어있는 지방의 90% 이상이 고스란히 국물 속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깃국의 고소한 맛을 고기의 영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개념이다. 단백질은 고기에 그대로 남아있고 지방만 빠진 게 국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식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식사량보다 초과한 열량을 그 이후 2~3일에 나눠 천천히 소비하면 된다.
탄수화물 보다 단백질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고 단백질을 많이 먹는 것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밥과 국을 주로 먹는 G씨와 그릴에서 구운 쇠고기스테이크와 채소를 자주 먹는 H씨가 있다. G씨의 식단은 탄수화물 위주이고 H씨의 식단은 단백질 위주다. G와 H씨가 500g의 똑같은 양을 먹고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고 가정할 때 누가 더 살이 찌기 쉬울까? 정답은 G씨다.
단백질은 많은 부분이 인체의 장기를 구성하는 성분으로 쓰이는 반면 탄수화물은 거의 대부분이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소비해야 할 열량이 더 많다는 얘기가 된다.
게으른 다이어트의 가장 큰 장점은 따로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도 다른 다이어트와 다른 점이다. 다만 다이어트 성공의 책임이 누구에게도 핑계를 댈 수 없는 ‘본인’의 몫이다. 또 게으른 다이어트는 정말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바빠서, 업무에 치여서, 시간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건강한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나의 생활 패턴과 소비열량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고 퇴근한 뒤에는 소파에 누워 있다시피 하는 사람이 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퇴근한 뒤에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두 명의 하루 소비열량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이 경우 대체로 600~1000kcal 정도 차이가 난다. 30분간 트레드 밀(러닝 머신)에서 열심히 달렸을 때 소비열량은 250~300kcal 정도. 활동만 꾸준히 해도 열심히 운동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의 열량을 소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80kg의 남성 이 씨가 쉴 새 없이 온 몸으로 1시간 응원했다고 치자. 이때 소비열량은 무려 720kcal에 이른다. 또 다른 예로 50kg의 주부 김 씨를 따라가 보자. 김 씨가 장바구니를 들고 1시간 장을 보고, 1시간 동안 요리를 한 뒤, 애완견을 데리고 30분 산책을 했다. 마지막으로 30분간 훌라후프를 돌리고, 방청소를 30분간 하면 739kcal를 소비한 것과 같다. 열심히 달리기를 했을 때와 비슷한 열량이 소비된다. 또 마르고 움직임이 적은 사람의 하루 활동대사량에 거의 맞먹는 수준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 패턴으로부터 소비되는 열량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