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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밝다

광공해에 병드는 청계천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이렇게 시작하는 유행가가 있다. 얼마 전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지금 홍콩의 밤거리에서 과연 별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53년이니까 그때만 해도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휘황찬란한 야경이 홍콩의 관광명물이 된 요즘도 과연 그럴까.
 

화려한 도시와 야경은 꺼지지 않는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진은 홍콩의 관광명물이 된 야경.


생태계 파괴하는 빛 고문

몇 년 전 미국 클램슨대 연구팀은 높은 탑이나 건물의 번쩍이는 불빛을 피해 이동하던 철새가 탑에 부딪쳐 떼죽음을 당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귀소본능이 있는 연어와 청어가 인공 불빛 때문에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불빛 근처로 몰려들었다가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조명에 생태계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학술 용어로 ‘광공해’(light pollution)라고 한다.

원래 광공해는 야간조명에 의한 밤하늘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천문학에서 사용되던 말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너무 강해 밤에 하늘의 별을 보기 어려워지면서 점점 천체관측시설을 교외로 이전해야하자 천문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광공해가 소음공해처럼 일반적인 공해로 인식된 것은 동식물과 사람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광공해의 영향^야간 조명이 생태계에 미치는 해악이 알려지면서 빛이 공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최근 광공해는 소음, 대기, 수질공해와 함께 환경을 위협하는 공해의 하나로 떠올랐다.


부화한 바다거북이 밝은 조명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고 바다로 가는 대신 뭍으로 이동하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불법 이민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조명탑이 스라소니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자 전문가들은 광공해의 위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이 불빛 아래에서 교대로 근무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0%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밤낮으로 밝은 빛에 노출되면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들어 그런 것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인천공항 고속도로 주변 농민들이 가로등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벼, 콩, 깨, 팥, 조, 옥수수 같은 작물은 일사량이 하루 12시간 이하여야 제 때 영그는데, 가로등 때문에 밤낮 없이 강한 빛을 받다 보니 개화가 늦고 웃자라게 되면서 계속 흉년이 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서울 시청 주변 야경. 대형 전광판과 가로등, 전구로 뒤덮인 가로수에 자동차 불빛까지 어지럽게 섞여 서울의 밤은 꺼질 줄 모른다. 독일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고 했다는데.


빛 홍수로 청계천이 넘친다

인간이 야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화려한 야경은 권력을 상징한다. 소위 ‘도시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야경만큼 좋은 것이 없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치안을 목적으로 오후 9시 이후에 도로 쪽으로 난 창에 불을 켜두게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어두운 거리가 밝고 안전하게 느껴져 획기적인 조명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루이 14세의 치세는 ‘빛나는 파리’와 ‘빛나는 시대’로 불리며 야간 조명은 유럽의 다른 도시로 퍼졌다.

현대에는 특히 공산국가에서 독재자들이 홍보 효과를 위해 도시의 야경을 적극 장려했다. 밤이면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빛들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중국 상하이의 야경은 대표적인 예다.

한국은 밤의 빛에 관대한 편이다. 연말연시에는 장식조명으로 거리를 알록달록 꾸미고, 시내 중심가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가게들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번쩍거리는 쇼핑몰이 밀집해 있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조명으로 치장하는 경우도 늘었다. 1887년 경복궁 내 건청궁 향원정 앞뜰에서 최초의 야간 조명이 시작된 뒤 120년 동안 한국의 밤은 점점 낮처럼 밝아지고 있다.

지난해 복원된 청계천에도 경관조명이 빠지지 않았다. 청계천의 경관조명은 밤마다 서울시민의 발길을 이끌며 청계천을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청계천의 야간 조명은 광공해의 피해에서 자유로울까.

필자의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청계천의 경관조명에 대한 광공해 발생 여부를 측정해 분석했다.

광공해의 원인이 되는 빛은 크게 두 가지다. 조명기구에서 나오는 빛이 조명대상의 영역 밖으로 비치는 ‘새는 빛’과 새는 빛 중에서 빛의 양이나 빛의 방향 때문에 생기는 ‘장해광’이 그것이다. 건물 옥외 조명에 갓을 씌우지 않아 빛이 360도 모든 방향으로 퍼질 경우 새는 빛과 장해광이 모두 광공해를 일으킨다. 청계천은 청계천 자체 조명보다는 길을 따라 밀집해 있는 고층 건물과 쇼핑몰 등에서 나오는 새는 빛과 장해광이 문제가 됐다.

분석 결과 청계천을 시작점에서부터 오피스지역, 상업지역, 주거지역으로 나눴을 때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에서 광공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조명위원회의 기준에 따르면 건물표면은 야간활동이 많은 지역이라도 휘도가 25cd/㎡, 광고물은 1000cd/㎡를 넘을 수 없다. 그런데 동대문 주변은 건물표면이 평균 36.5cd/㎡, 광고물이 최대 2747cd/㎡까지 나타났다.

이 정도면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쇼핑몰들이 건물 자체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너무 밝고 자극적인 옥외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아직 광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오피스지역에 최근 청계천 특수를 노린 음식점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휘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부처의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몇 년 뒤 청계천의 대부분 지역이 광공해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비단 청계천뿐만이 아니다. 서울은 전체적으로 ‘빛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강 다리의 경우 조명이 교각이나 상판만 비추도록 해야 하는데 불빛이 운전자의 시야에 들어와 눈부심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도 일종의 광공해다. 건물 벽면이나 옥상에 설치된 대부분의 전광판은 휘도 기준값을 넘어 광공해를 유발한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에 경관조명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 4~5년 만에 옥외 조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조명시설이 곳곳에 무분별하게 들어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광공해를 줄이기 위해 태양전지와 저전력 냉음극램프, 축전지를 조합한 가로등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태양에너지를 사용해 밤에 필요한 최소한의 밝기를 확보하는 한편 광섬유를 이용해 조명의 범위를 조절함으로써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줄인 것이다.

나고야 시는 가로등의 조명기구만 교체해 광공해를 유발하는 상향광의 63%를 줄였고, 덤으로 전력까지 73%나 절약했다. 미국에서는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조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옥외조명 조례를 제정했다.
 

한강에 설치된 교량 중에는 경관조명용 투광등에서 나오는 빛이 차량 운전자의 눈을 자극해 운전에 불편을 주는 것도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갓 하나만 씌워도 효과 만점

한국은 아직 광공해에 대한 기본 개념이나 인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광공해 대처 방안도 전혀 없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한국 대부분의 도시에서 본격적으로 야경을 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이라도 제도만 잘 정비한다면 광공해를 처음부터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제적인 광공해 방지 기준 제정을 주도하는 국제다크스카이협회(IDSA)는 조명을 아래로 향하게만 해도 광공해의 50~90%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부터라도 필요 없는 불은 끄고, 등에 갓을 씌우는 작은 일부터 해보면 어떨까.

결국 광공해는 빛 자체가 문제가 있어서 생긴 공해라기보다는 우리가 빛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생긴 공해니까 말이다.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세계의 야경, 푸른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광공해 유발 지역이다. 자연상태의 밤에 비해 휘도가 10%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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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태 교수
  • 진행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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