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로봇 물고기가 탄생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김용환 교수팀은 최근 물고기의 생김새와 운동을 모방한 수중 로봇을 개발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동해와 서해를 넘나들며 한반도 해역을 든든히 지켜줄 ‘로피’를 소개한다.
내 이름은 로피
‘로피’(ROFI)라는 이름은 로봇 물고기를 뜻하는 영어(Robot Fish)에서 땄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 로피는 버전 1.3이다. 로피 1.1은 버전 1.3의 모태가 됐다. 1.1의 특징은물밖에서 리모콘으로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센서를 달지 않아 스스로 장애물을 피할 수는 없다. 초기 형태의 로봇으로 생각하면 된다. 로피 1.2는 움직임 테스트를 하기 위해 만든 더미 모델이다. 로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일부러 골격을 드러냈다.
로피 1.3은 음파탐지기를 달아 물 속에서 헤엄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방향을 바꾼다. 미로찾기도 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의 첫 로봇 물고기인셈. 길이 94cm, 무게 12kg으로 로피 1.1보다 1.5배 가량 커졌다.
로피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물고기의 해부학적구조를 그대로 모방해 몸통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선진국에서 개발된 로봇물고기는 대부분 몸통이 두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꼬리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위 별로 동력원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몸통을 나눈 것.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로봇 물고기 ‘찰리’나 2001년 MIT 드레이퍼연구소가 개발한 로봇 물고기 ‘드레이퍼 참치’ 등이 모두 그런 경우다.
반면 로피는 진짜 물고기처럼 몸통을 하나로 이었다. 이를 위해 고안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철사를 이용하는 것. 몸통의 중심이 되는 등뼈의 각 뼈마디를 철사로 이은 다음 동력장치를 이용해 철사를 잡아당기면 몸통이 좌우로 움직인다.물고기가 헤엄칠 때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관절을 움직이고, 그 관절의 움직임을 이용해 몸통을 움직인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한반도해역 지킬 파수꾼
김 교수는 “부품이 2000여개나 들어간 MIT의 찰리 1과 비교해도 로피가 성능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이디어 하나로 복잡한 움직임을 간단히 해결한 셈이다.
그간 세계적으로 로봇 물고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왔다. 미국은 수중 기뢰를 탐지하는등 로봇물고기를 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해군이 대학, 연구소등에막대한예산을지원하고있다.
일본에서는 1999년 미쓰비시가 수족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실러캔스를 4억년 전 모습과 똑같이 재현했다. 제작기간만 4년, 비용은 100만달러(10억원)가 들어간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최근에는 다카라, 아쿠아로이드 등 기업을 중심으로 수cm 크기의 교육용 장난감 물고기 로봇개발이 활발하다.
로봇 물고기를 개발하는 이유가 뭘까. 김 교수는 “로봇 물고기가 미래에 무인 잠수정을 대체할 강력한 후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해저 바닥에 묻힌 수중 기뢰를 탐지하는 등 군사 목적으로는 로봇 물고기가 적격이다. 요즘 수중 기뢰는 바닥에 묻혀 있어 배나 잠수함의 음파 탐지기만으로는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로피도 한반도 해역에 묻힌 수중 기뢰를 탐지하게 될까. 김 교수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군사용으로 대형 로봇 물고기와 나노기술을 활용한 교육용 소형 로봇 물고기를 모두 개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난제는 연구 인력과 연구비 부족이다. 김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로봇 물고기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수억원을 쓰는 것이 보통”이라며 “로피는 자체 추진 기능을 갖고 있고 음파탐지기까지 달고 있으면서도 제작비는 훨씬 적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항공기항법 기술도 접목
로피가 탄생하는 데는 학부생의 역할이 컸다. 곽상현(조선해양공학과 4년) 씨는 지난해 가을 학부 졸업논문 주제로 로봇 물고기를 선택한 것이 계기가 돼 이번에 로피까지 만들게 됐다. 평소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 곽 씨는 형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어 ‘집안 내력’ 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곽 씨와 함께 이희범(조선해양공학과 3년), 안양준(조선해양공학과 2년) 씨가 한 팀을 이뤄 로피 개발을 도왔다. 로피 1.3은 현재 좀 더 정교한 수중 테스트를 남겨 놓고 있다.
로피 2.0의 개념설계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미 기본적인 모델링은 끝났다.“ 로피 2.0은 1.3에 비해 기술적으로 한 단계 발전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1.3은 아직 물 속에서 수평으로 헤엄치는 정도지만 2.0은 기계적으로 더욱 복잡한 모델을 이용해 진짜 물고기처럼 위아래로 헤엄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이를 위해 움직임을 3차원으로 제어할 수 있는 항공기의 항법 기술을 접목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물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로봇 물고기의 특성상 방수가 가장 큰 문제다. 미국의 경우 축 하나도 생산되는 크기가 다양하고 방수가 되는 것까지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부품을 구할수없다. 작은 부품도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한다.
김 교수는 “로피 1.3 까지는 방수를 위해 발포실리콘을 발랐지만 앞으로 이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방수 재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