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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6월 미국의 법곤충학자 버나드 그린버그 박사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의뢰를 받아 9살짜리 소녀 버니타의 유괴 살인사건 조사에 나섰다.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의 주인은 살인, 강간, 무장 강도 혐의로 지명수배 중인 올턴 콜먼이란 남자였다.

소녀가 유괴된 29일 밤 집을 비웠던 것으로 나타난 콜먼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만 털어놨을 뿐 그가 정말 버니타를 살해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수사관들에겐 소녀가 29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 사이에 사망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린버그 박사는 콜먼의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체 주변에서 발견된 엄청난 파리 떼에 주목했다. 그가 현장에서 번데기를 채취해 사육장에서 부화시키자 한달 뒤 검정파리가 나타났다.

그린버그 박사는 검정파리 알이 성충이 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걸리며 곤충의 생장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기상관측소에서 수집한 기온 정보를 토대로 검정파리가 부화한 시점을 생장 공식에 따라 계산했다.

그 결과 파리가 알을 낳은 시점은 범행 추정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6월 30일이었다. 소녀가 살해된 뒤 몰려든 파리 떼가 진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린버그 박사의 증거는 받아들여졌고, 배심원들은 콜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영국 작가 리처드 플랫이 쓴 ‘범죄의 현장’에 소개된 사례다. 이 책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범죄수사의 숨겨진 면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콜먼의 사례나 유명한 O. J. 심슨 사건처럼 세상을 놀라게 한 굵직한 범죄 사건을 중심으로 법과학과 과학수사의 진면목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신발자국과 타이어자국 분석, 치아와 컴퓨터 안면복원을 통한 신원확인, 핏자국과 독물학을 이용한 증거분석 등 범죄의 동기와 범인의 신원을 알아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 보면 주변의 곤충, 핏자국 하나에도 많은 정보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타원형 핏자국은 핏방울이 비스듬하게 튀었음을 보여준다. 표준공식을 사용해 부딪힌 각도를 계산한다. 피 웅덩이는 피해자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 있었음을 의미한다.”

폭발물의 잔해나 독극물의 흔적을 이용한 첨단 수사기법은 의학과 심리학, 물리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합 과학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찰흙과 컴퓨터를 이용해 두개골에서 원래 얼굴 모습을 복원하는 기술은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할 만큼 정교하다.

각 사례마다 소개된 풍부한 사진자료는 평소 범죄수사나 법의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깔끔하게 풀어준다.

심장이 약하다면 몇몇 페이지는 건너뛰어도 좋다. 부검에 사용하는 메스, 소형 톱, 골 절단기 등을 소개하는 사진이나 총상, 칼로 생긴 상처, 교살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목은 생생하다 못해 조금 섬뜩할 정도다.
 

번죄의 현장^ 리처드 플랫 지음, 안재권 옮김(해나무, 144쪽, 2만5000원)
 

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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