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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으로 TV 보는 시대 열린다

세계 최초의 초소형 모바일 튜너 국내 개발

샐러리맨 K씨는 오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 바쁘다. TV 드라마 ‘올인’에서 주인공이 세계포커대회 결승에 참가하는 놓칠 수 없는 장면이 방영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근길이 막혀 집에 늦게 도착한 K씨는 결국 엔딩 타이틀밖에 보지 못한다. 주말에는 약속이 있어서 재방송을 볼 수 없는 K씨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방송시간을 맞추지 못해 놓치는 경우가 있다. 재방송이라도 하면 기회는 한번 더 주어지지만 시간을 맞춘다는 일이 번거롭기 마련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난 방송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가정에 초고속통신망이 깔려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더욱이 실시간으로 보지 않으면 김이 새버리는 TV 프로그램도 많다. 예를 들어 결과를 알고 나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경기를 보면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이런 불만이 모두 사라지리라 예상된다. 휴대전화와 PDA(개인용 휴대정보단말기, Personal Digital Assistants) 같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가정에서처럼 자유롭게 TV를 볼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기술을 최근 세계 최초로 삼성전기에서 개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TV 전파를 수신하는데 사용되는 초소형 모바일 튜너다.

30cc에서 1.8cc로 줄어든 튜너


동영상을 보여주는 휴대전화의 액정화면. 여기에 모바일 튜너를 장착하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TV를 시청할 수 있다.


바보상자라는 비난을 거세게 받지만 TV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가를 보내는데 유용한 문명의 이기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요즘에는 수개 채널에 불과한 공중파 방송뿐 아니라 수십개 채널을 보여주는 케이블 방송까지 등장해 시청자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TV방송이 본격화되면 우리 생활을 더 윤택하게 만들리라 예상된다.

지난 2월 21일 삼성전기가 개발했다고 발표한 초소형 모바일 튜너는 새로운 TV 개념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언제 어디서나 움직이면서도 TV를 시청하는, 즉 모바일 TV 개념을 실현시키는 첨단기술이다. 여기서 튜너란 전파신호 중 자신이 원하는 전파를 고르는데 사용되는 핵심부품을 말한다. 즉 TV로 특정 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은 튜너가 공중에 떠다니는 여러 TV 방송전파 중 특정 신호를 뽑아 전파를 가공해주기 때문이다.

현재 TV방송을 수신하는데 사용되는 튜너는 가로 50mm, 세로 40mm, 높이 16mm로, 부피로 환산하면 32cc에 해당한다. 사실 TV 자체의 부피가 크기 때문에 튜너 크기는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휴대전화나 PDA와 같은 모바일 기기가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기기에 달린 액정화면을 TV 시청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모바일 튜너는 가로 30mm, 세로 20mm, 높이 3mm로, 부피로 환산하면 1.8cc 크기에 불과하다. 커다란 지우개만 하던 것이 아주 얇은 칩 형태로 부피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더욱이 1/20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면서도 공중파 TV방송은 물론 1백81개 케이블 채널까지 수신할 수 있다.

물론 케이블 채널을 수신할 수 있다는 말이 당장 케이블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은 공중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유선으로 방송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케이블 방송 채널에 해당하는 주파수 영역까지 수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반면 일반 튜너나 Car TV라 부르는 차에 장착되는 튜너들은 크기도 크고 공중파 방송에 한정된다.

여기서 잠깐 휴대전화로 TV를 보는 일은 이미 가능한데 하며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올해 2월경부터 KTF와 SK텔레콤, LG텔레콤 등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모바일 TV라 부르면서 공중파 TV와 케이블 방송을 부가서비스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TV의 방송전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최근 서비스되고 있는 모바일 TV는 VOD(맞춤영상정보, Video On Demand) 종류로 소비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이동통신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동통신회사에서 TV 방송을 휴대전화 전파에 담아 쏘아주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동통신회사측에서는 데이터를 보내는데 비용이 들고 결국 가입자가 이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TV 방송을 보는 동안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상태와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반면 모바일 TV 튜너는 방송사에서 발사한 공중파 방송전파를 직접 잡아서 휴대전화로 보여준다. 기존에 떠다니는 방송전파이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 TV를 본다고 해서 휴대전화 통화료를 더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계 시장 진출 노리고 개발돼


PDA는 손안의 컴퓨터라 할 만큼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은 도로정보를 이용하는 모습.


놀랄 만큼 작으면서도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는 모바일 튜너를 자세하게 살펴보자. 모바일 튜너는 0.8mm 두께의 다층기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판을 PCB(인쇄회로기판, Print Circuit Board)라 부르는데,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소형화를 위해서 PCB에는 전자회로가 4개층에 걸쳐 인쇄돼 있다. 인쇄된 회로의 패턴을 따라 전파신호가 이동하면서 처리되는 것이다.

모바일 TV 튜너는 기능에 따라 크게 튜너부와 복조부 두분으로 나눠진다. 튜너부는 방송전파인 RF(방사주파수, Radio Frequency)를 받은 후 전파를 골라 IF(중간주파수, Intermediate Frequency)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사용한 RF는 수천만Hz 대역의 고주파이다.

원하는 채널의 방송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안테나에 잡힌 RF신호가 발진회로에서 만들어진 발진 전파와 혼합회로에서 만나 특정 IF신호로 바뀌기 때문이다. 채널 선택과 관련되는 발진회로는 다양한 주파수의 전파를 만드는 장치다. 특정 TV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발진회로에서 만들어진 전파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복조부는 튜너부에서 보내는 IF신호를 받아 구체적인 영상과 음성신호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바일 튜너는 5V의 단일전원에서 구동이 가능하다. 소비전력은 최대 0.75W에 불과해 낮은 전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모바일 기기의 특성을 만족시키고 있다.

외국에서 TV 수상기를 우리나라로 가져올 경우 방송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나라마다 방송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우리나라 TV 방송에 사용되는 NTSC방식뿐 아니라 유럽의 PAL방식과 일본의 방송방식(JAPAN CABLE)도 수신하는 여러 모바일 튜너 모델을 함께 선보였다. 전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제품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PDA와 휴대전화는 경쟁중인 상태다. 과학자 중 일부는 PDA에 휴대전화 기능이 들어갈 것이라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휴대전화에 PDA가 들어갈 것이라 주장한다. 삼성전기 권시영 선임연구원은 “얼핏 똑같은 결과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양쪽 연구진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연구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번에 개발된 모바일 튜너는 양쪽 연구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도 지닌다”고 말했다. 개발부터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PDA와 휴대전화에 사용될 것을 모두 고려했다는 의미다.

디지털 방송용 차세대 개발중

세계 최초로 초소형 모바일 튜너를 국내에서 개발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IT산업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권시영 선임연구원은 “일본 휴대전화 시장에서 수위를 달리는 마쯔시다(브랜드명 파나소닉)와 산요 등 경쟁기업을 제치고 먼저 개발에 성공했다”면서 “1등이 된 만큼 유리한 입장에서 앞으로 이 분야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기에서 초소형 모바일 튜너 개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불과 약 3개월 시간 동안 소형화를 달성하기 위해 연구팀은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PCB를 한면만 쓰지 않고 여러층을 이용했고, 튜어에 사용되는 공심 코일의 크기를 줄이고, 최신 납땜기술로 이 코일을 칩에 장착하는데 성공했다. 대부분 부품들이 기존의 튜너와 다른 새로운 종류들이어서 방송전파 제대로 수신하게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삼성전기가 이같은 성과를 이룬데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쌓아온 튜너 분야의 노하우가 한몫했다. 삼성전기는 1973년부터 현재까지 31년 동안 3억2천만개의 튜너를 생산했는데, 튜너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권 선임연구원은 “1년 전만 해도 튜너가 이렇게 작아지리라는 꿈도 꾸지 못했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힘을 모으면 불가능이 없다는 기술의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바일 튜너의 소형화는 이미 종착역에 도달했다고 평가된다. 더이상 크기를 줄이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예상외로 안테나와 배터리다.

가정에 있는 TV만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욱이 모바일 튜너의 사용자는 걷거나 움직이는 차안뿐 아니라 방송전파가 약한 산간지역에서도 TV 시청을 원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좋은 화질을 제공하기 위해서 안테나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배터리 또한 사용자의 편의와 관련된 문제다. 모바일 TV를 보다가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배터리의 사용을 1분이라도 연장시기 위해서 사용 소비전력을 낮추는 연구에도 개발력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기는 이번에 개발한 초소형 모바일 튜너를 올해 내에 상용화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종류의 모바일 튜너를 1세대로 명명하고 벌써 2세대 개발에 뛰어들었다. 1세대는 아날로그 방송에 사용되지만, 2세대는 앞으로 방송시장을 주도할 디지털 방송을 보여주는 모바일 튜너다.

전세계 IT기업은 현재 치열한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 개발된 초소형 모바일 튜너는 인류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IT기술이어서 더욱 각광받으리라 전망된다. IT강국의 면모를 또한번 보여준 초소형 모바일 튜너가 앞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펼칠 활약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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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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